|기획취재| 에너지민주주의 없인 ‘정의로운 전환’도 없다 ①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꼴찌 원전은 최고수준 ‘역행’
주민수용성 없는 재생에너지 확대정책 탄소중립에 발목
3면 바다 해상풍력 잠재력 뒷받침 제도 미비 사업자 부담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기후위기가 가속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충에 분주하다.

더불어 세계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규모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해 기존 산업의 노동자·소상공인·농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은 꼴찌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를 낮추고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며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 각국은 2050년을 목표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며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국내 곳곳에선 수년째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이 큰 이유다. 에너지민주주의는 실종됐고, 정의로운 전환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자말>

덴마크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발전단지.
덴마크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발전단지.

지난해 7월 영국 에너지그룹 BP(British Petroleum)가 발표한 ‘2022년 세계에너지 통계’ 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한국의 전체 발전량 중 원자력 발전 비중은 26.3%(158.0TWh)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6.7%(40.2TWh)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이는 OECD 평균(17.0%)뿐만 아니라 비회원국 평균인 10.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출범부터 탈원전과 탄소중립을 국정과제로 삼았던 지난 문재인 정부는 2021년 10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안’을 확정했다.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3.9%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2%로 높이는 게 골자다.

하지만 그동안 가보지 않은 길이었던 탓인지 말도 탈도 많았다. 주민수용성 문제다. 신재생에너지 확충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는 있을지 몰라도,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입지하는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은 현저히 낮아 국내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해상풍력 잠재력 충분한데 국내 곳곳 갈등 여전

한국의 경우 좁은 육지와 부족한 풍량으로 인해 육상풍력발전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국토 3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해상풍력 자원은 풍부하다. 이에 따라 인천을 비롯해 충남·전북·전남·경남·경북 등 바다를 끼는 지역에선 대규모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시도되고 있는데, 갈등으로 인해 답보상태다.

인천에선 2020년부터 해상풍력발전 사업으로 인해 어민과 주민들의 반발이 지속되고 있다.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대상구역이 주요 여객선 항로와 겹치고, 어민들의 생계와 직결된 어장과 중첩된다는 이유이다.

올해 3월 기준 인천 영해와 EEZ 영역에서 해상풍력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자만 20개다. 이 사업자들이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에 앞서 설치하는 풍황계측기의 유효면적은 4240㎢으로 서울시 면적(605㎢)의 7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라남도의 경우 지역주민 반발과 더불어 지자체간 갈등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영광군은 올해 2월 전남도에 해상풍력 송전선로 예정지 변경을 요구했다. 송전선과 철탑 66개가 영광 핵심 관광지를 통과하고 자연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이다.

어민들이 인천 연안항 물양장에 일방적인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반대하며 현수막을 게시한 모습.(사진 독자제공)
어민들이 인천 연안항 물양장에 일방적인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반대하며 현수막을 게시한 모습.(사진 독자제공)

잇따라 발표한 재생에너지 정책, 정부·지자체 역할 ‘조언’ 수준

정부의 역할은 지자체와 민간사업자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산업부는 2020년 7월 ‘주민과 함께하고, 수산업과 상생하는 해상풍력 발전방안’, 지난해 11월 ‘재생에너지 정책 개선방안’ 등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올해 4월엔 또 ‘주민·어업인과 함께하는 해상풍력발전 안내서’를 제정·배포했는데 동어 반복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초 권역별(전남서부권·전남동부권·동남권·중부권) ‘민관합동 해상풍력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활동은 전무하다.

현재 국회에는 김원이·한무경·김한정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해상풍력발전 촉진을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돼 있다. 계획 입지로 해상풍력발전 대상지를 선정해 무분별한 입지 선정을 막고, 주민수용성을 확보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해상풍력 잠재력 뒷받침할 제도 미비 사업자도 부담

어민과 주민들은 주로 절차문제를 지적한다. 발전소 건설·운영의 실질적 이해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돼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이 반발로 이어지는 경우다. 여기엔 지역상생과 이윤 분배를 도외시한 원인도 컸다.

이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에게도 부담이다. 2021년 재생에너지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신ㆍ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들은 사업 장애요인으로 주민 민원(67%)을 가장 많이 꼽았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제도는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개발사업자가 입지 선정부터 현장조사와 각종 인허가, 전력계통 조성까지 전부 책임지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주민수용성 확보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나 지원은 부족하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는 지역주민과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이는 공항·도로·도시개발 사업 등 사회간접자본(SOC) 입지 선정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는 것과 대비된다. 결국 사업자 입장에서도 불확실성을 높여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천 남동경기장 주차장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설비.(사진제공 인천햇빛발전협동조합)
인천 남동경기장 주차장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설비.(사진제공 인천햇빛발전협동조합)

재생에너지 선진국처럼 국내서도 ‘에너지민주주의’ 확보 시동

해외 에너지 선진국과 일부 국내 지자체들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주민수용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강국인 덴마크와 독일은 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구성해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지역상생과 이익공유제를 도입해 주민수용성을 확보했다. 해상풍력 구조물을 이용해 수산자원을 조성하거나, 해상풍력단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국내 지자체 중에선 제주도와 전남 신안군이 재생에너지 발전단지 조성사업에 주민참여와 이익공유를 보장하며 앞서나가고 있다.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태양광 발전 협동조합을 만들어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013년 생겨난 서울 삼각산고등학교와 상원초등학교의 햇빛발전소는 국내 최초 에너지협동조합 사례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태양광발전소만 50개 가까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에너지협동조합이다.

인천에선 최근 2년새 햇빛발전협동조합만 7개 새로 생겨 총 9개가 있다. 이 협동조합들은 연대와 협동을 목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활동하며, 태양광에너지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인식을 전환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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