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지역언론 지원사업] 정전협정 70주년 ⑨
인천, 수도권·접경지로 인한 이중규제 ‘불편 가중’
9.19 합의 파기, 접경지 인천에 가장 큰 ‘영향’
접경지 거주 실향민, 이구동성 “고향 가고파”

인천투데이=김현철·이재희 기자│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국제연합군 대표인 윌리엄 해리슨(William K. Harrison) 미국 육군 중장과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을 중지하는데 교전 양측이 합의한 ‘한국정전협정(Korean Armistice Agreement)’을 위해서다.

이 협정의 정식명칭은 ‘국제련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Agreement between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 on the one hand, and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ommander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on the other hand, concerning a military armistice in Korea)‘이다.

정식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미국 육군 대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김일성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이 협정에 서명한 주체이다.

미 육군 중장 해리슨과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 만나 3자가 합의한 협정서를 교환했으며, 합의 12시간 후인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를 기해 발효됐고, 이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기본 규범으로 남아있다.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정전협정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이다. 그리고 서해는 한반도의 가장 큰 화약고로 불린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인천의 모습을 취재과정에서 돌아봤다. <기자말>

강화군 접경지 검문소.(사진제공 강화군)
강화군 접경지 검문소.(사진제공 강화군)

접경지 강화·옹진군, 수도권 유일 낙후지역 30% 포함

서울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한 난개발 방지와 도시기반시설 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1991년부터 시행한 수도권정비계획법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목표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 등에 대한 기존 정책목표를 달성했지만, 같은 규제를 받는 인천 일부 지역은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 특히 접경지역으로 분류하는 강화군과 옹진군이 국내 최악 수준 낙후도를 보인다.

이 같은 주장은 인천연구원이 지난 2022년 발표한 ‘인천지역 수도권 규제의 역사적 흐름과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볼 수 있다.

보고서가 인용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2019년 기준 옹진군 지역총생산(GRDP)는 국내 접경 기초자치단체 15곳 중 꼴찌이다. 강화군은 경기 연천군·동두천시, 강원 인제군·철원군·고송군보다 적었다.

옹진군과 강화도는 각각 백령·대청·소청·연평도와 우도 등 서해5도가 소재한 곳이다. 서해5도는 접경지로 분류돼 접경지에 관한 규제도 함께 받는 곳이다.

연평도 등 서해5도 모든 해변과 바다는 군사안보를 이유로 일출과 일몰 전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북쪽을 향해 창을 낼 수도 없다.

연평도에서 만난 박태원 서해5도평화운동본부 대표는 “군부대 탄약고가 섬 곳곳에 있어 건물 하나 맘대로 짓지 못한다”며 “수산물 가공을 위한 공장 건립도 군사기지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난 뒤, 북한군 병사들이 비무장지대 내 GP 감시소를 설치하고 있다.(사진제공 국방부)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난 뒤, 북한군 병사들이 비무장지대 내 GP 감시소를 설치하고 있다.(사진제공 국방부)

9.19 남북군사합의 사실상 ‘파기’

지난 5월부터 취재를 시작했고, 취재를 마무리하던 10월 22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9.19 군사합의 제1조 3항 효력을 정지했다.

뒤이어 북측도 23일 9.19 군사합의의 완전 무효를 선언하고 군사분계선 지역에 군사장비 등을 배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엔 우발적 군사충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에서 우발적 군사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장소로 인천이 꼽힌다. 이미 인천은 연평해전과 연평포격 등 국지적 군사도발을 경험했다.

이 상황을 가장 불안해하며 지내는 이들은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거주하는 서해5도 주민이다. 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에 명시됐지만, NLL은 정전협정문 어디에도 없다. 주한미군사령관 한 사람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선일뿐이다.

취재 중 만나 인터뷰를 한 김국래 국제관계학 박사는 “민간과 군에 모두 적용한 선이지만, 남측에 대해 북측을 향한 행위 금지 명령이다. 남측 내부를 대상으로 한 경계선이기 때문에 북측과 협의할, 통보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8년 남북의 9.19 군사합의로 상황이 바뀌었다. 북측이 NLL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 군사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한다’고 합의했다.

박태원 대표는 9.19 합의 파기가 거론되던 시점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당시 서해5도 실향민은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까 희망에 부풀었다. 남북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괴해선 안 된다.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실향민의 아픔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강하구 교동도에서 바라본 북녘 땅.
한강하구 교동도에서 바라본 북녘 땅.

지척에 둔 ‘고향 땅’ 밟을 수 있을까

강화군은 배를 타고 접근해야 하는 곳이 대부분인 옹진군보다 사정이 조금 낫다. 지척에 북측 땅이 보이는 ‘강화 교동’도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황해도 인근이 고향인 실향민들의 이주 비율과 방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취재 중 교동에서 만난 실향민 장영호, 최재옥, 최봉열씨는 하나같이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얘기한다. 강화도에 계속 거주하진 않지만, 타 지역과 오가며 교동에 사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최근 부쩍 많아졌다.

이들은 “주문·아차·볼음도 사람들이 교동도와 연백평야 사이 뻘에서 잡은 꽃게를 연백에서 팔며 교류했던 옛날이 그립다. 죽기 전에 부모님 묻힌 곳을 찾고 싶다”며 교류를 바랐다.

강화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김영애 (사)우리누리평화운동 대표은 “강화 교동만큼은 평화의 섬으로 지정해 남북간 교류의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1조 5항은 ‘한강하구 중립수역은 남측과 북측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민간 선박의 항행을 허용한다’고 규정했다.

민간 선박이 서로 항행하며, 서로의 땅에 발만 딪지 않고 교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NLL에 가로막혀 불가능하다.

김영애 대표는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한강하구인 인천 교동 앞바다를 남북이 함께 활용해 공동으로 이용한다면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가장 최근 북측의 군사 도발로 피해본 인천은 한반도 정세 변화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이다. 인천이 평화로웠을 때 한반도 역시 평화로웠다.

인천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곧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인천이 진정한 ‘평화도시 인천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 이 기획기사는 2023년 인천광역시 지역언론 지원사업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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