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인천투데이 공동기획]
인천 시민문화 활동 현장을 찾아서 ⑩
커뮤니티씨어터 우숨의 ‘이웃 다큐’

인천투데이=이승희 기자ㅣ 

<편집자 주>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시민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투데이는 인천문화재단과 협력해 이 지원사업 공모에서 선정된 사업(단체) 13개의 취지와 의미, 활동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한다.

나는 나와 비슷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이웃을 얼마나 알고 있고, 그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얼마나 노력하며 살고 있을까? 이웃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 도우며 사는 공동체적 관계가 서로 좋고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건 도시 생활에서 어려운 일이다.

이웃에게 다가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거기에 문화 예술적 요소가 가미되면 흥미를 유발하고 마음의 경계를 푸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웃 다큐-이웃, 누가 누구’라는 제목으로 이웃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영상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찾아가 봤다.

이웃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이기

김병균 커뮤니티씨어터 우숨 대표.
김병균 커뮤니티씨어터 우숨 대표.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인천 동구 배다리(금창동)에 있는 주점 ‘개코막걸리’에서, ‘이웃 다큐’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총괄하고 있는 김병균 씨를 11월 5일 만났다.

그는 ‘이웃 다큐’를 주최하는 커뮤니티씨어터 ‘우숨’의 대표이자 개코막걸리의 주인이다. 개코막걸리를 오랫동안 운영해온 노부부가 힘에 부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넘겨받아 3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의 본래 직업은 연극 연출가다. 서울에 있는 극단 한강에서도 일했고, 지금은 인천에 있는 극단 동이에서 연출을 맡고 있다. 최근에 공연된 극단 동이의 연극 ‘GHOST(고스트)’도 그가 연출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올랐는데, 그는 <한겨레신문> 기자가 쓴 인천의 무연고 사망자들과 관련한 기획기사를 보고 ‘도시의 소란에 묻혀 애도되지 못하는 죽음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웃에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는 ‘이웃 다큐’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런데 연극 연출가가 영상제작 프로젝트를 총괄한다니, 좀 의아했다.

“물론 연극을 하는 것과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5년째 직장인 연극동아리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이 연극 한 편을 공연하려면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도 대여섯 달 걸린다. 일반 시민이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는 게 쉽지 않다. 반면에 영상제작은 훨씬 더 참여하기 쉽다. 그리고 나는 총괄 프로듀서 역할을 하는 거라 연극이랑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촬영이나 편집은 촬영감독과 음악감독이 맡는다. 시민문화프로그램이나 축제ㆍ행사도 기획하고 진행해봤기에 어려움은 없다.”

이번 ‘이웃 다큐’는 ‘우숨’이 2017년과 2018년에 진행한 프로젝트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의 연장선에 있다.

“우선 ‘이웃’을 강조하는 것은 ‘시민’보다 ‘이웃’이 더 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에선 주로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을 했다. 자기 이야기를 어떻게 스토리텔링하고 영상으로 담아낼 것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기획하고 촬영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배우면서 영상을 만들었다. 이번 ‘이웃 다큐’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이웃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작업이다.”

얼굴을 고스란히 내어주는 데는 오랜 만남과 소통 필요

커뮤니티씨어터 우숨이 2018년에 진행한 프로젝트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 촬영 장면.
커뮤니티씨어터 우숨이 2018년에 진행한 프로젝트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 촬영 장면.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애초 계획이 많이 변경됐다. 스텝과 참여 시민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한 뒤,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하려 했는데, 한 공간에 모일 수 없어 못했다.

‘내 삶 속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 마음을 흔든 인물 4명을 정해 초대한다. 단, 그들을 직접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보고 생각한 나를 이야기하는, 내가 초대 손님의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다른 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를 이야기해본다. 이것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이렇게 기획한 워크숍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

워크숍은 못했지만 이웃과 그 이웃의 이야기들을 채집했다. 일상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안에 뜻하지 않은 삶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었다.

<주변에서 “살 좀 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들은 한 청년이 다이어트를 위해 제물포역 앞에 있는 권투도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시설도 좋고 젊은 회원도 많은 그럴싸한 도장이 아니라, 허름하고 낡은 도장이다.

거기다 문도 제때 안 연다. 권투를 가르쳐주는 관장은 노인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찾아갔는데, 그 청년에겐 권투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 도장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이다. 이 도장에 오는 사람들은 두 부류인데 하나는 ‘경찰’이고 다른 하나는 ‘건달’이라는 것, 관장이 과거에 세계챔피언을 지낸 홍수환 선수를 키웠다는 것….>


김병균 대표가 한 문화단체에서 하는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만난, 그 단체에서 일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김 대표가 여러 번 설득해 그 청년을 중심으로 권투도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기로 했다. 촬영은 차성민 촬영감독이 맡고 있다.

현재 작업 중인 또 하나의 다큐 주제는 ‘오래된 이웃’이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온 오래된 세탁소나 이발소에서 오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다. 김진형 촬영감독이 맡아 진행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만약 이러저러한 이유로 당신의 삶과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겠다고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민다면, ‘그래, 그러마.’ 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흔쾌히 보여줄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일하는데 성가시게 구는 걸 누가 좋아하겠나. 계속 찾아가고 이발이라도 하면서 말을 거는 등, 많은 품을 팔아야 성공할까 말까 한다.”

김 대표의 말처럼 카메라 앞에 자신의 얼굴을 고스란히 내어주는 데는 오랜 만남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김 대표와 스텝들이 하는 기획회의에선 당초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다루려했다. 학교 밖 청소년이기에 받는 사회적 편견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학교 밖 청소년들도 우리가 만나야할 우리의 이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마침 학교 밖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잘 알고 있는 스텝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 얼굴이 나오는 걸 거부해 결국 무산됐다.

코로나19 때문에 날아가 버린 아이템도 있다. 배다리 철교 밑 공터에선 오래된 물건을 파는 도깨비 장터가 매주 일요일에 열렸다. 3년째다. 자칭 화가에 경매사라는 사람이 중심이었다. 그의 이야기, 그가 바라보는 이웃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장터가 아예 열리지 못해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불편한 삶을 들춰내 공감하게 하는 게 예술의 역할

커뮤니티씨어터 우숨이 2018년에 진행한 프로젝트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 영상 회의 장면.
커뮤니티씨어터 우숨이 2018년에 진행한 프로젝트 ‘이웃과 함께 만드는 영화’ 영상 회의 장면.

‘이웃 다큐’ 상영회는 12월 5일 미림극장에서 열린다. 상영할 다큐는 4편 정도로 예상된다. ‘권투의 신(神)’과 ‘오래된 이웃’에다 한 청년이 배다리 등 근대도시 풍경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곳을 찾아 영상으로 담아내고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로 만든 작품, 그리고 ‘코로나19와 일상’이다.

‘코로나19와 일상’은 시민 참여 영상 프로젝트다. 코로나19로 바뀐 일상과 일상을 바꾼 이웃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공유하는 게 목적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들이 각자의 일상을 담은 영상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이번 ‘이웃 다큐’ 프로젝트에서 보이듯 김 대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주변 이웃들의 삶을 들춰내려 애쓴다. 앞서 언급한 연극 ‘고스트’도 그렇고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다룬 그의 연극 ‘사과는 잘해요’도 그렇다.

김 대표는 “예술은 즐거움과 재미도 있어야겠지만,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쇼를 보고 먹고 떠들고 하는 엔터테인먼트도 필요하지만, 주변의 불편한 삶을 들춰내 공유하고 공감하게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당초 계획이 변경되기도 하고 작업이 늦춰지기도 했다”며 “내년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활동을 어떻게 중단하지 않고 지속할 것인가가 모든 예술인의 고민일 것이다. 예술인과 단체, 문화재단 등이 머리를 맞대고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