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인천투데이 공동기획|
인천 시민문화활동 현장을 찾아서 ⑥
시민 창작 뮤지컬 ‘소우주환상곡 5’

<편집자 주>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시민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투데이는 인천문화재단과 협력해 이 지원사업 공모에서 선정된 사업(단체) 13개의 취지와 의미, 활동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한다.

인천투데이 = 조연주 기자 | ‘삶이 예술’이라고 하지만, 삶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상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가끔은 내가 누군지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 삶에 더 가깝지 않던가. ‘예술로 살기’를 잊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서 소중하다.

‘소우주환상곡 5’ 시민 배우들이 9월 26일 부평역사 ‘모두노라존’에 모여 안무 연습을 하고 있다.
‘소우주환상곡 5’ 시민 배우들이 9월 26일 부평역사 ‘모두노라존’에 모여 안무 연습을 하고 있다.

우리네 삶, 내가 직접 춤으로 노래로

‘소우주환상곡’은 2016년, 창립 20주년을 맞은 ‘예비사회적기업 (주)문화바람’(당시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회원들이 전문 예술인과 함께 만든 시민창작뮤지컬이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인천시민합창단 평화바람’ 회원들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각색했다.

취업준비생, 백수, 가정주부, 보험설계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공연을 준비하는 게 내용이다. 어쩌면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공연에는 직장과 가정, 꿈, 사람들 등,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동아리 정기공연을 앞두고 좌충우돌하는 일상이 담겨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우주(小宇宙)를 갖고 있다’는 말에서 시작한 ‘소우주환상곡’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우주를 발견하는 순간과 그 순간을 향해 채워가는 일상에 대한 예찬이다. 뮤지컬이 으레 선보이는 화려하고 극적인 장치 대신, 서글픈 가사노동이나 직장에서 겪는 서러움 같은 사소한 에피소드로 이뤄져있다.

내용은 아주 사실적이다. 예컨대, 극중 이들이 뒷풀이를 가는 장소는 그냥 술집이 아니라 실제 동아리 회원들이 자주 찾는 백운역 인근 포차인 ‘원대포’를 가져왔다. 아는 사람만 알 것 같은 디테일을 솔직하게 풀어놓을 때, 관객도 자신만의 ‘원대포’를 떠올릴 수 있다.

뮤지컬 넘버만 봐도 일상을 예술로 만들겠다는 기획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제자리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 같지만 차오르면 조금씩 올라가는 ‘그네’, 함께 호흡을 맞춰야 놀 수 있는 ‘시소’, 정글짐 같은 일상을 빗댄 ‘놀이터’ 등,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에 의미를 새긴 노래들이다.

이상미 씨는 2017년 '소우주환상곡 2'에 처음 출연한 뒤 매해 함께 하고 있다. 
이상미 씨는 2017년 '소우주환상곡 2'에 처음 출연한 뒤 매해 함께 하고 있다. 

현실과 무대를 넘나드는 이야기

배우가 바뀌면 이야기도 바뀐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뮤지컬이다 보니 시즌마다 출연배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기공연을 위한 시민 동아리의 이야기’라는 큰 틀은 유지하고 출연진의 아이디어를 얻어 그때그때 맞게 조정한다.

올해 공연에는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인물이 추가됐다. 영화배우를 꿈꾸는 고등학생인 ‘서희’ 역이다. 이 인물을 연기하는 이서이(17) 학생이 새로 합류했기 때문인데, 실제로 영화배우를 꿈꾸는 이서이 학생은 지난해 ‘소우주환상곡’에 출연한 엄마의 추천으로 함께하게 됐다. 이렇듯 ‘소우주환상곡’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무대와 현실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달라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소우주환상곡’은 1회 공연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 덕분에 초연한 2016년 송도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김제동 토크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올랐다. 2017년에는 거창국제연극제에 초청받는 등, 굵직한 무대에 연달아 오르며 존재감을 이어왔다.

‘일반시민’들이 만든 뮤지컬이라 해서 수준이 낮을 것이라 예상한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소우주환상곡’ 총괄기획자인 최진숙 문화바람 생활문화팀장은 “전문예술인이 직·간접적으로 참가자들을 이끌어 완성도 높은 창작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며 “아마추어들의 공연이라고 해서 욕심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시민의 배우화, 일상의 뮤지컬화, 나아가 삶의 예술화를 이뤄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관객들만큼이나 참여하는 배우들의 만족도가 컸다. 수많은 사람이 보는 무대에서 내 이야기를 내가 직접 전하는 것. 경험해본 사람만 그 희열을 안단다. 이상미 씨는 2017년 이후 지금까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한때 배우를 꿈꿨지만 가족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던 이 씨는 우연히 접한 ‘소우주환상곡’을 직접 연기하면서 자신의 우주를 만난다고 했다.

이 씨는 “‘소우주환상곡’에 오를 때만은 어딘가에 소속된 누구가 아니라 오롯이 내 자신일 수 있었기에 극중 합창단원들처럼 연습시간만 기다렸다”며 “지금까지 공연을 여러 번 했는데도 매번 노래와 대사 속에서 위로받고 있다. 이 위로가 관객에게도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다”고 말했다.

긴장과 기대 속에서 10월 4일 ‘소우주환상곡 5’ 첫 촬영을 마쳤다.(사진제공ㆍ문화바람)
긴장과 기대 속에서 10월 4일 ‘소우주환상곡 5’ 첫 촬영을 마쳤다.(사진제공ㆍ문화바람)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새로운 도전

올해 ‘소우주환상곡’은 새로운 도전을 해야만 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무대 공연을 포기하기로 했다.

최진숙 기획자는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이라면 자신 있지만, 무관중 공연을 하자니 공연이라는 느낌이 살지 않고, 생전 처음 공연을 촬영해 온라인으로 보여주자니 너무 막막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무관중 무대공연을 녹화하는 것과 영상화(영화화)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시나리오를 조금 바꾸고 영상에 필요한 부분들을 각색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안무, 노래 연습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높고 선명했던 9월의 어느 날, 프로필 촬영을 위해 배우들이 부평역 광장에 모였다. 처음엔 카메라 앞이 어색한지 약간 머뭇대다가 이내 이런 저런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단체 점프 컷을 찍을 때는 다소 앙큼한 자세를 취해보이는 배우들도 생겼다. 이날 촬영한 프로필은 포스터와 리플릿에 쓰인다.

프로필 촬영을 위해 거듭한 요청에도 배우들은 힘든 내색 없이 뛰고 또 뛰었다.
프로필 촬영을 위해 거듭한 요청에도 배우들은 힘든 내색 없이 뛰고 또 뛰었다.

‘배우 못지않다’는 말은 실례다. 서툴지언정 이미 배우이기 때문이다. 프로필 촬영 이후, 부평역사 ‘모두노라존’에서 강연하 안무 감독이 지도하는 춤 연습이 이어졌다. 방역지침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벗지 않고 숨을 고르며 안무를 익혔다. 매일 만나 합을 맞춰볼 수는 없으니 군무 완성도는 배우들의 평상시 연습량에 달려있다.

10월 4일, ‘소우주환상곡 5’ 첫 촬영을 끝마쳤다. 최 팀장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나온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머지 촬영을 곧 마무리한 뒤 상영할 예정인데, 상영일은 10월 31일,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한다.

최 씨는 “영상이든 공연이든 ‘소우주환상곡’이 하고 싶은 말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 관객들이 극장을 나오면서 ‘내 얘기도 저렇게 재미있을까’ 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술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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