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인천투데이 공동기획|
인천 시민문화활동 현장을 찾아서 ②
동인천탐험단의 도시읽기 프로젝트 - 산곡동 영단주택

인천투데이=이승희 기자ㅣ 

<편집자 주>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시민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투데이는 인천문화재단과 협력해 이 지원사업 공모에서 선정된 사업(단체) 13개의 취지와 의미, 활동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한다.

동인천탐험단. 단체 이름을 듣고선 동인천을 탐험하는 이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중구 신흥동에 이어 올해는 부평구 산곡동을 탐험한단다. 생각이 짧았다. 활동 거점이 동인천이지, 탐험 대상지를 동인천으로 한정하진 않는다.

이들의 ‘탐험’은 탐험 대상지를 조사ㆍ연구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대상지의 역사ㆍ문화적 가치와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고 그걸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게 탐험 목적이다. 이들이 지난해 조사ㆍ연구해 기록한 신흥동과 올해 그렇게 하려는 산곡동엔 공통점이 있다. 재개발 대상지라는 것과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집들이 많다는 것이다.

신흥동 일곱 주택

지난해 중구 신흥동 재개발 지역 조사활동에 나선 동인천탐험단 단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제공ㆍ동인천탐험단)
지난해 중구 신흥동 재개발 지역 조사활동에 나선 동인천탐험단 단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제공ㆍ동인천탐험단)

‘신흥동 일곱 주택’. 동인천탐험단이 지난해 신흥동을 조사ㆍ연구하고 기록한 것을 담은 책이다.

일본에서 재생건축을 공부한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가 신흥동 재개발 지역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적산 가옥 중, 당시부터 현재까지 생활문화상을 보여줄 수 있는 집 일곱 채를 선정해 각 주택의 도면을 그리고 해설을 붙였다. 오석근, 노기훈, 카마다 유스케 씨가 사진과 영상을 담당하고, 김수환 시각예술가는 그림을 그렸다. 고경표 큐레이터는 문헌조사를 담당했다.

오석근, 고경표, 김수환 씨는 ‘복숭아꽃’이라는 프로젝트 팀으로 7~8년 전부터 함께 활동해왔다. ‘국가의 환영’이라는 제목으로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 폭격으로 희생당한 원주민들, 강화도 양민 집단학살, 피란민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인천에서 태어난 일본인 이야기도 다뤘다. 고경표 큐레이터 주도로 1960~90년대 인천의 음악 역사를 ‘비욘드 레코드’라는 이름으로 조사ㆍ연구하기도 했고, 인천 내항 살리기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이들과 이의중 씨는 재개발로 사라지기 전에 도시와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었다. 프로젝트 기간에 진행한 현장답사에선 근대건축 연구자이자 전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인 도미이 마사노리 씨가 일제강점기 지도를 바탕으로 신흥동과 재개발 지역 적산 가옥들을 해설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도 신흥동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역사, 도시 구조와 특징 등을 들려줬다. 이 내용들 역시 ‘신흥동 일곱 주택’에 실려 있다.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조사ㆍ연구와 기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신흥동에 처음 들어갈 때는 주민들이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신문에 보도되고 외부에 알려지면서 태도가 변했다.

이의중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천부윤관사 등 신흥동이 갖고 있는 역사자원이 많은데, 새로운 건물을 올려 생기는 개발이익을 위해 앞으로 물려줄 수 있는 미래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인천시 근대건축자산조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해서도 이런 주장을 펼쳤다.

동인천탐험단의 중구 신흥동 재개발 지역 2차 투어에서 근대건축연구자인 도미이 마사노리 씨가 적산 가옥들을 해설하고 있다.(사진제공ㆍ동인천탐험단)
동인천탐험단의 중구 신흥동 재개발 지역 2차 투어에서 근대건축연구자인 도미이 마사노리 씨가 적산 가옥들을 해설하고 있다.(사진제공ㆍ동인천탐험단)

부윤관사를 인천시가 매입하는 등, 시정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얼마 후 경인방송 피디와 시의원, 인천도시공사 본부장, 인천시립박물관 관장과 학예사 등이 현장을 찾아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다른 분야 예술인들도 이 프로젝트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데 참여했다. 예를 들면, 무용가가 안무로 풀어낸 것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이렇게 주목을 받다보니 재개발 조합원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경찰에 신고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재개발 사업에 차질이 생길까봐 그러했으리라.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조사 작업을 정리했다.

처음부터 책을 발간할 생각은 없었다. 이 프로젝트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예술로 기획 사업)’으로 지난해 5월부터 진행했다. 현장 답사 프로그램 운영비와 책 제작비는 지원 항목에 없었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기록한 것들을 다 끄집어내어 서로 같이 보고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익혔지만 이것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지를 고민했고, 책으로 내기로 했다.

조사한 대상지 전체를 담을 수는 없었다. 신흥동 건축물이 대부분 주택인데, 주택 유형이 몇 가지 있었다. 유형별로 주택을 하나씩 정해 그 집을 통해 마을 전체, 도시 전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했다.

이의중 씨는 “우리라도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해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결과물을 내오기는 쉽지 않았다. 인천문화재단이 답사 프로그램과 책 발간을 지원해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로 얻은 게 많다고 덧붙였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도시를 기록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물어도 봤다.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공감하지만, 그런 일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회사 대표로서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투자를 한 건데, 느낀 것이 많다. 특히 이 활동으로 ‘지역에 인프라가 없고 이쪽 전문가가 없어 못한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지역이 품고 있는 전문가, 기존 학술적 기록보다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조사ㆍ연구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개인적으로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오석근 씨는 동인천탐험단 활동을 하면서 사진작가와 기획자로서 도시를 볼 수 있는 역량을 키웠고, 각자의 전문성을 서로 공유하면서 상식으로 보편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감각과 이론의 결합이 필요하다. 어떤 건축물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을 이(의중) 대표가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면,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는 과정, 다른 사람들이 느낀 것을 나도 느끼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더 잘 전달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인천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도시의 역사를 알면 도시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산곡동 영단주택으로

동인천탐험단이 올해 조사ㆍ기록할 부평구 산곡1동 영단주택 일대 모습.(사진제공ㆍ부평구)
동인천탐험단이 올해 조사ㆍ기록할 부평구 산곡1동 영단주택 일대 모습.(사진제공ㆍ부평구)

이들은 도시를 읽고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더 확장하고 싶었다.

신흥동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곳은 산곡동 영단주택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후 서울의 인구 급증은 심각한 주택난을 초래했다. 그러자 일제는 1941년 조선주택영단을 설립해 주택 보급에 나섰다. 이렇게 조선주택영단에서 지은 집을 영단주택이라고 했다. 영단주택은 중·하류층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일본식에 한국식 온돌을 가미한 평면형태를 취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영단주택인 부평구 산곡동 소재 인천육군 조병창 노동자 사택은 901호 규모의 연립주택단지였다.

부평구 산곡동 87번지 일대에 위치해있는데, 조병창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했다. 광복 후에는 부평미군기지 관련 종사자들이 머물렀고, 이후 부평수출공단이나 한국베어링, 대우자동차 등 공장 노동자들이 자리를 채워갔다. 부평의 여러 노동자주택지 가운데 건설 당시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면서 규모면에서도 국내에서 큰 곳에 속한다.

동인천탐헌단은 6월에 이곳을 답사해 기초조사를 했다. 지금은 문헌자료를 모으고 있다. 신흥동보다 범위가 넓고,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기초조사를 더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9월까지 조사를 마무리하고 10월에 시민 대상 답사 프로그램을 3회 운영한 뒤, 그 기록물들을 모아 연말 연초에 책자로 낼 계획이다.

영단주택 조사ㆍ기록엔 지난해 참여자 5명에 1명이 더 붙는다. 드로잉을 하는 백인태 씨다. 작가는 아니지만 같이 하고 싶다는 사람이 몇 명 더 있다. 이의중 씨는 “올해 같이 해보고 서로 뜻이나 지향이 맞으면 내면에 정식 멤버로 들어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책이 도시를 좋게 바꿀 수 있다”

오석근(왼쪽) 사진작가와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가 중구 개항로 7-1에 있는 커뮤니키 공간 '빙고'에서 산곡동 영단주택 조사 작업을 논의하고 있다.
오석근(왼쪽) 사진작가와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가 중구 개항로 7-1에 있는 커뮤니키 공간 '빙고'에서 산곡동 영단주택 조사 작업을 논의하고 있다.

이의중 씨와 오석근 씨의 인터뷰는 인천시의 도시재생 정책 이야기로 옮겨갔다.

“인천에는 근대건축물 등 유산이 많다. 그래서인지 애경사와 같은 산업유산을 철거하면 안 된다는 데 공감은 하는데, 그것과 관련한 정책은 없다. 역사자원이 인천만큼 많은 곳이 국내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천에서 허물어버리는 건축물 중에 다른 지역에 있으면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게 많다. 인천에선 100년이 다 된 건축물이 2시간이면 없어진다. 다른 지역은 재정을 투입해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만들려고 난리를 친다. 인천은 있는데도 안 한다.”

이 씨의 말을 오 씨가 거들었다.

“사유재산이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는 것은 공공의 목적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도시의 유산을 지키는 일이고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적산 가옥이나 한옥이 한 채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이 집을 팔든지,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재건축해야한다. 선택지는 같다.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다. 이걸 보존한다면 세금 감면 등,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줘야한다. 그래야 선택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래야 내 집이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 있는 집이라는 자긍심도 느낄 것이다. 장기적으로 혜택을 줘야한다. 정책이 도시를 바꿀 수 있다.”

이 씨는 못 고칠 수 없는 목조주택은 없다고 했다. 무조건 철거하고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일부라도 남겨 마을 역사관이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이제 드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 주거환경이 좋은 곳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단지에서 바라본 하늘은 사각형에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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