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인천투데이 공동기획|
인천 시민문화활동 현장을 찾아서 ③
공연창작소 지금 ‘우리동네 낭독극장’

<편집자 주>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시민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투데이는 인천문화재단과 협력해 이 지원사업 공모에서 선정된 사업(단체) 13개의 취지와 의미, 활동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한다.

인천투데이=이승희 기자│9월 6일 오전 11시 무렵, 한반도 남쪽 멀리서 북상하고 있는 태풍 ‘하이선’ 영향인지 하늘이 흐리다. 코로나19 재확산 탓인지 거리는 한산하다. 인천도시철도 1호선 부평시장역 1번 출구에서 부평구청 방향으로 1분 정도 걸으니 ‘복합문화공간 지금’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건물 입구 한쪽에 ‘우리동네 낭독극장’을 알리는 세로형 배너가 놓여있다.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여니 한 여성이 맞이한다. 극단 ‘공연창작소 지금’의 대표 이은선(54)씨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공연예술계 풍경

‘공연창작소 지금’이 운영하는 ‘우리동네 낭독극장’ 2기 참여자들이 낭독극을 연습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진서, 신경주, 홍시원, 박양숙 씨.
‘공연창작소 지금’이 운영하는 ‘우리동네 낭독극장’ 2기 참여자들이 낭독극을 연습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진서, 신경주, 홍시원, 박양숙 씨.

‘복합문화공간 지금’은 ‘공연창작소 지금’의 연습공간이다.

지난해 인천시의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에 선정되면서 각종 문화예술 공연ㆍ전시ㆍ교육장과 촬영스튜디오와 같은 다양한 용도로 대여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도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 조성 사업은 민간이 운영하는 작은 문화공간이나 공공시설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오아시스에 선정되면 시민 참여 프로그램 운영비와 강사료, 기획ㆍ연출비, 공간 수선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11시부터 하기로 한 낭독극 연습을 30분 정도 늦췄단다. 이 대표와 함께 극단과 공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오늘 모이기로 한 사람이 다 왔나보다. “이제 시작할까요?”라는 이 대표의 말에, 객석과 높낮이가 같은 무대에 여성 네 명이 자리를 잡고 대본 낭독을 시작한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연습이라더니, 각자 배역이 정해져있나 보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목소리에서 ‘연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피커에서도 목소리가 나온다.

집에서 온라인 화상캠을 이용해 참여한 사람의 낭독이다. 무대 맞은 편에 있는 컴퓨터 화면을 보니, 온라인 참여자는 두 명이다. 이번 낭독극에 모두 일곱 명이 참여하는데, 한 명은 사정이 있어 오늘 참여하지 못한단다.

연습에 앞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 영상기술도 배워야했고, 영상기기도 갖춰야했다”라는 이 대표의 말이 실감난다.

이 대표는 “한 도서관에서 예약된 공연을 온라인 생방송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막막했지만, 알아보고 배우니 할 수 있더라”라며 “공공시설도 운영이 중단된 상황에서 이러한 공간이 없는 단체는 얼마나 힘들고 서럽겠나?”라고 덧붙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만든다는 건

부평대로 부평시장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지금’ 입구 모습.
부평대로 부평시장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지금’ 입구 모습.

낭독극 연습이 1시간 넘게 걸린다고 했다. 중간 쯤 쉬는 시간에 참가자들을 인터뷰했다. 질문은 참여 동기와 참여한 후 소감.

“여기 근처 동네에 내걸린 현수막과 팸플릿을 보고 왔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연극반 활동을 했고, 스무 살 때 소극장에서 청소할 만큼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27년 전 일이다. 현수막을 보는 순간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얼른 신청했다.”(임진서, 1972년생)

“친구 소개로 이런 걸 한다는 걸 알았다. 연극 보는 것을 좋아한다.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을 나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처음엔 자신 없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나가보자는 마음으로 왔다. 하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고 뿌듯하기도 했다. 하고 싶었던 다른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난리인데 어딜 가느냐며 가족들이 반대한다. 코로나 걸리면 집 나가겠다고 우스갯소리 하고 나왔다. 그만큼 이게 좋다.”(신경주, 1967년생)

“여기서 가까운 곳에 산다. 지난해 요기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현수막을 보고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무렵에 와서 공연을 구경했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 모아 콩트를 하기도 했고, 중학교 다닐 때 학교 연극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살다보니 나와 상관없는 꿈이 돼버렸지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이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 이렇게 나와 활동하면 삶이 지루하지 않고 행복하다. 버킷리스트 중 다른 하나인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생긴다.”(홍시원, 1957년생)

“지난해 이곳에서 시민들이 연극하는 걸 봤다. 고등학교 시절 막연함 꿈이었는데, 나도 무대에 올라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내 말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게 연극의 매력이다. 지금 맡은 역할이 겉으론 거칠고 차가우면서 속으론 따뜻한 사람인데, 그걸 최대한 잘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게 참 신기하다. 남동구 소래에서 오는데, 남편과 아들딸이 응원한다. 나이 들어 뭔가 할 수 있다는 건 좋고 대단한 거라고. 코로나 때문에 관중 없이 공연할 것을 생각하면 아쉽다.”(박양숙, 1967년생)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연극

‘공연창작소 지금’이 지난해 ‘노작 홍사용 문학관(경기도 화성)’ 초청으로 낭독극 ‘우연한 빵집’을 공연하고 있다.(사진제공 공연창작소 지금)
‘공연창작소 지금’이 지난해 ‘노작 홍사용 문학관(경기도 화성)’ 초청으로 낭독극 ‘우연한 빵집’을 공연하고 있다.(사진제공 공연창작소 지금)

이들이 연습하는 낭독극 내용은 이들의 삶과 닮았다. 낭독극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어느덧 세월이 한참 흘러 40대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 연극반 활동을 같이 한 동기들이 모여 연극을 다시 배운다.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애환을 그린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작품 제목은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다. 이 대표가 만들었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연극동아리에서 재미 삼아 활동하다가 졸업 후 극단에 들어갔다.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고 40대가 돼서 연극동아리 동기 7~8명이 모였다. 연극을 다시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2008년에 ‘공연창작소 지금’을 창단했고, 이듬해 이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7월에는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웃으며 안녕, 이난영 작, 이은선 연출)을 했다. 이 대표를 제외한 창단 멤버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이 대표는 “극단 고유번호증이 나오고 사업자등록증이 나오고, 해마다 지원사업 신청하고, 창작극 공연과 연극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정신 차리니 10년이 흘렀다”며 “10년 동안 연말마다 이 걸 계속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이제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이 들어 다른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걸 계속 해야 하는가보다 하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강사풀과 수익구조를 만들고 준비하니 코로나19가 닥쳤다”고 덧붙였다.

낭독극, 연극의 문턱을 낮추다

‘공연창작소 지금’은 창단할 때 창작극 중심으로 활동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2010년에 지금 사용하는 공간을 빌려 꾸몄다. 그동안 창작극 10편 정도를 무대에 올렸다. 2013년부터 5년간 베트남과 국제문화예술 교류도 했다. 방식은 하나의 작품을 두 가지 언어로 하는 ‘이중 언어 연극제’였다.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 국립극단 ‘청춘’과 교류했는데, 9월에는 ‘청춘’이 한국에 와서, 11월에는 ‘지금’이 베트남에 가서 같은 작품을 공연했다. 베트남에선 한류와 한국어 공연 인기가 좋았다. 600~700석이 관객들로 꽉 찼다. 이 대표는 베트남의 공연예술과 생활문화예술이 한국보다 30년 정도 앞서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공연창작소 지금’의 배우와 스텝을 합치면 10명 정도 된다. 대부분 연극영화과를 나오고 배우 활동을 하는데, 3~4년 주기로 교체된다. 이 대표는 창작극 공연만으로는 극단 운영이 어렵다고 봤다. 단원들 생계도 걱정됐다.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연극교육학을 공부했고, 창작극 공연에 연극교육 활동을 접목했다.

‘우리동네 낭독극장’ 2기 참여자들이 이은선 ‘공연창작소 지금’ 대표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동네 낭독극장’ 2기 참여자들이 이은선 ‘공연창작소 지금’ 대표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3~4년 전, 한국연극협회 공인 예술강사팀을 꾸려 1년에 연극교육프로그램 5~6개를 작업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하는 청소년 대상 ‘상상학교’와 군인 대상 문화예술체험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공연창작소 지금’은 국가자격증인 문화예술교육사 실습처로도 등록돼있다. 국내에 10곳밖에 없고, ‘공연창작소 지금’이 인천에서 유일하다. 문화예술교육사 교육기관인 인하대학교와 연계해 ‘청소년 낭독극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습교육 4회를 받으면 8학점을 딴다.

‘우리동네 낭독극장’은 인천문화재단의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으로 진행된다. 연극의 문턱을 낮춘 낭독극에 시민들이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기획했다.

8월에 1기 활동이 끝났다. 주로 20~30대 여성이 참여했다. 원작 ‘우리들의 에그타르트(김혜정 저)’를 각색한 낭독극을 연습하고 무관중 상태에서 공연했다. 1기 참여자 A씨는 “연극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낭독극은 몸짓 같은 걸 배제하고 목소리를 우선한다고 생각해 도전했다”며 “내가 연기할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인지 생각하면서 대본을 읽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B씨는 “처음엔 시(詩) 같은 걸 낭독하는 건가, 생각했다. 재미없고 심심할 것 같았다. 겪어보니 재미있었고, 연극을 간접 체험하는 것 같았다”며 “음향효과를 넣어서 생각보다 풍부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참여자들이 서로 평가하고 조언해주는 것도 아주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동네 낭독극장’은 3기 활동이 10월에 끝나면, 각 기수의 공연을 촬영한 영상물 시사회를 11월에 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코로나19가 잠잠해져 시사회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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