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인천투데이 공동기획]
인천 시민문화활동 현장을 찾아서 ⑦
창조예술공간 더율의 블라인드 낭독콘서트 ‘숨듣명’

인천투데이=이승희 기자ㅣ 

<편집자 주>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시민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투데이는 인천문화재단과 협력해 이 지원사업 공모에서 선정된 사업(단체) 13개의 취지와 의미, 활동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한다.

경인전철 제물포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 쪽으로 1분 가량 걸어가면 있는 다복빌딩. 승강기를 타고 11층으로 올라가 내리면 복도 없이 바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전문예술단체 ‘창조예술공간 더율(대표 윤두율)’의 공간이다.

왼쪽은 사무실, 가운데는 응접실과 작업실들, 오른쪽에는 ‘제물포마을극장’이 있다. 극장 내부는 작고 아담하다. 이곳에서 8월부터 10월까지 셋째 주 목요일 저녁마다 색다른 콘서트가 열렸다. 바로 청각으로 즐기는 블라인드 낭독콘서트 ‘숨듣명(숨어서 듣는 내 작가의 명작)’.

최소한의 빛만 남긴 채

8월 20일 열린 첫 번째 낭독콘서트에서 석재원 작가가 자신이 쓴 에세이를 낭독하고 있다.(출처ㆍ네이버 TV-제물포마을극장)
8월 20일 열린 첫 번째 낭독콘서트에서 석재원 작가가 자신이 쓴 에세이를 낭독하고 있다.(출처ㆍ네이버 TV-제물포마을극장)

“‘청각으로 즐기는 낭독콘서트’라는 꾸밈말에서 드러나듯 관람객이 안대를 차고 청각에만 의존해 낭독콘서트를 즐긴다. 요즘 오디오북을 구독할 수 있는 어플이 많아졌는데, 그것을 현장에서 라이브로 좀 더 생생하게 즐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숨듣명’이라는 제목은 유명한 유튜브 채널인 SBS 웹 예능 ‘문명특급’의 대표 시리즈 ‘숨어서 듣는 명곡 콘서트’에서 따왔다.”

더율의 박보민 매니저가 들려준 ‘숨듣명’ 기획 배경이다.

눈을 가리는 건, 청각으로만 즐기기 위한 것이 다가 아니다. 박 매니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떠한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때, 겉모습으로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즐겨보자는 또 하나의 취지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객 모두 눈이 가려진 환경에서 시각장애인은 좀 더 편안하게 문화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고, 비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의 문화콘텐츠 소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관객이 극장에 입장할 때 안대를 나눠준다. 안대가 필요 없다는 사람도 있는데, 시각장애인이다. 관객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안대를 쓰면 조명이 꺼진다. 악기 연주자들이 악보를 볼 수 있는, 초대 작가가 낭독할 글을 볼 수 있는 최소한의 빛만 남긴 채.

청년들의 삶, 결국엔 혼자다?

제물포마을극장 입구. 관객들에게 나눠줄 안대가 놓여있다.
제물포마을극장 입구. 관객들에게 나눠줄 안대가 놓여있다.

8월 20일, 첫 번째 낭독콘서트엔 ‘결국엔 혼자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쓴 석재원 작가가 초청됐다. 이 에세이집은 작가가 자신이 쓴 글을 엮어 직접 출판한 독립서적이다.

박 매니저는 “20대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독립출판 플랫폼에서 정보를 얻어 섭외했다”고 했다.

“요즘에 같이 밥을 먹기보다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혼술, 혼밥, ‘나 혼자 산다’처럼 혼자 사는 삶을 관찰하는 TV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혼자 사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보고 싶었다. 형이 최근에 화분을 하나 준 적이 있다. 처음에는 파릇파릇하게 잘 자라던 식물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말라 죽어 있었다. 물도 안주고 관심을 하나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보면서 내 내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겉으로는 밝은 척하고 웃으면서 사람들과 잘 만나지만, 속으로는 참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는 화분이 내 모습이 아닐까. 그걸 글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석 작가가 이 책을 쓴 배경이다. 석 작가는 책에 실린 에세이들 가운데 몇 편을 골라 낭독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퍼거슨과 클래식기타, 대금 연주 소리는 차분하게 낭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석 작가가 첫 번째로 낭독한 글은 이랬다.

‘이번 생은 처음인지라 아쉬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렸을 때 악기 하나 배우지 않은 것, 태권도 학원을 다니지 않은 것, 학창시절에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도 늘 후회가 된다. (…) 처음 사는 인생이다 보니 늘 아쉬움이 남는다.

수많은 세월동안 내가 했던 선택을 되돌아보면 과연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항상 남는다. 마음에 남은 것이 후회인 것으로 보아 옳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뭐 어쩌랴. 되돌릴 수 없는 걸.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은 거다. 나를 가르치신 선생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항상 후회가 남는 것 같아요. 늘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좋은 선택이란 건 없어. 지금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선택에 맞게 온힘을 다한다면 그게 옳은 거야.”

(…)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지는 예측할 수 없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내가 한 선택에 온힘을 다하면 된다. (…) 방법은 나를 믿는 것뿐이다.’

스치기만 해도 눈을 떴다
 

9월 17일 열린 두 번째 낭독콘서트에서 손병걸 시인이 자신의 시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를 낭독하고 있다.
9월 17일 열린 두 번째 낭독콘서트에서 손병걸 시인이 자신의 시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를 낭독하고 있다.

9월 17일, 두 번째 콘서트의 주인공은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병걸 시인. 중도 시각장애인인 그는 그의 두 번째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로 관객들과 만났다.

그는 첫 번째 낭독 시로 시집 제목과 같은 ‘나는 열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를 들려줬다. 해금과 클래식기타 연주 음악을 배경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 믿지 않고 살아왔다 /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 두 눈동자를 굴렸다 / 눈동자는 쪼그라들어가고 / 부딪히고 넘어질 때마다 / 두 손으로 / 바닥을 더듬었는데 / 짓무른 손가락 끝에서 / 뜬금없이 열리는 눈동자 / 그즈음 나는 / 확인하지 않아도 믿는 / 여유를 배웠다 / 스치기만 하여도 환해지는 / 열 개의 눈동자를 떴다’

손 시인은 이 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삶의 질곡을 이 한 편의 시에 압축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열 손가락 끝의 촉각으로 세상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 뜻과 상관없이 세상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전환’ 같은 게 우리 삶에도 다가온다. 중도 장애를 겪는 많은 이가 ‘하필이면 왜 나일까’라는 부정으로 자신을 학대하고 삶을 정리하려는 오류에 빠진다. 점자를 읽다보니 손끝이 화끈거리고 짓무르더라. 그런데 어는 순간 한 발짝 한 발짝 일어서게 된다. 내 이야기만 하면 징징거리는 같아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스치기만 해도 눈을 떴다는 표현으로 긍정적인 세상을 담고 싶었다.”

세 번째 콘서트엔 소설 ‘그의 하얀 렌즈, 그녀의 붉은 렌즈’를 쓴 서동우 작가가 초청됐다. 남녀의 시각을 각각 다룬 소설인데, 실제 남녀 배우가 무대에 올라 소설의 몇 대목을 낭독했다. 이어 작가와 관객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 콘서트 영상들은 ‘네이버 TV’에서 ‘제물포마을극장’을 검색하면 다시 볼 수 있다.

공감과 상상 키우는 색다른 경험 지속했으면

블라인드 낭독콘서트 ‘숨듣명’을 기획한 박보민 매니저.
블라인드 낭독콘서트 ‘숨듣명’을 기획한 박보민 매니저.

첫 번째 콘서트가 끝나고 관객들이 소감을 나눴는데, 대부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했다.

“왜 굳이 안대를 써야하나, 마스크만으로도 답답한데. 왜 이렇게 불편하게 문화를 소비해야하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청각에만 집중하다보니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낭독하는 글이 내 경험과 겹칠 땐 공감하면서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 관객이 밝힌 소감이다.

박 매니저는 “인천문화재단 지원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며 “세 번으로 끝난 게 아쉽다. 더 다양한 작가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1, 2회 콘서트를 할 땐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때라 관객 모집이 어려웠다. 코로나 때문에 못 오겠다며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코로나가 끝나면 여기 무대가 아니라 독립서점들을 무대로 낭독콘서트를 진행해 독립서점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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