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인천투데이 공동기획]
인천 시민문화활동 현장을 찾아서 ④
청소년놀이마당 - 갈산나빌레·청천극장

인천투데이=이승희 기자ㅣ

<편집자 주>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시민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천투데이는 인천문화재단과 협력해 이 지원사업 공모에서 선정된 사업(단체) 13개의 취지와 의미, 활동 내용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한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꿔놓았다. 갈수록 잦아지고 심해지는 폭염과 폭우, 대형 산불은 물론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감염병도 자연생태계 파괴와 지구온난화에서 기인한다.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을 자연환경 보전보다 우선한 탓이다. 큰 재난을 당했을 때만 설레발을 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기를 반복한 결과다.

자연은 공기와 물처럼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다. 둘은 깊은 공생관계에 있다. 도심을 흐르는 하천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 등 경제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 도시 하천은 심하게 오염됐다. 일부 하천은 콘크리트로 덮여 도로나 주차장이 됐다. 결국 하천이 지역사회와 단절됐다.

지금 우리에게 굴포천은 어떤 존재?
 

굴포천 일부 구간 모습.(사진제공ㆍ부평구)
굴포천 일부 구간 모습.(사진제공ㆍ부평구)

1990년대부터 자연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도시 하천을 개선하고 복원해야한다는 필요성과 요구가 쏟아졌다. 그 결과 국내 여러 도시에서 하천이 되살아났다. 그중 하나가 부평구에 있는 굴포천이다.

굴포천은 한강하류부 왼쪽에 위치한 지류로서 인천가족공원 내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해 부평미군기지 옆과 부평구청, 삼산동을 지나 경기도 부천시를 통과해 김포시 신곡 양ㆍ배수장에 이르는 지방 2급 하천이다.

길이 23.82km, 유역면적 133.8㎢로 인천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지방2급 하천인 청천천ㆍ계산천ㆍ귤현천ㆍ갈산천과 기타 하천인 세월천ㆍ목수천ㆍ산곡천ㆍ구산천 등이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굴포천은 부평에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공장폐수와 생활하수로 오염돼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공단 오염물질 유입과 건천화로 페놀 등 독극물 성분이 검출되고 심한 악취를 풍기는 등, 하천의 기능을 상실했다. 아울러 부평이 도시화되면서 인천가족공원 입구부터 부평구청 앞까지 복개됐다. 복개구간은 전부 주차장과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2000년부터 시민들이 굴포천 살리기에 나섰다. 2001년 6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인천여성문화회관(현 인천여성가족재단) 강당에서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주민 등이 참가한 가운데 ‘굴포천살리기운동시민모임’ 창립총회가 열렸다. 시민들의 하천 살리기 운동은 지방자치단체를 움직였다.

인천시는 2006년부터 굴포천 정비 공사를 시작했다. 부평구청부터 부천시 경계까지 굴포천 6.6㎞ 구간의 바닥을 준설했다. 부평구청 앞에 오수 차집시설을 설치해 복개구간 오수를 차집하게 했고, 서울 풍납취수장으로부터 한강 물을 끌어와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2008년 10월에 정비 공사를 완료됐다.

그 이듬해 겨울과 봄에 청둥오리가 날아들었고, 잉어 떼가 출현했다. 12월에는 흰뺨검둥오리 떼도 찾아왔다. 굴포천은 서서히 자연형 하천으로 변모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천 과정을 알면 굴포천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을 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변천 과정을 기억하는 주민은 줄기 마련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시민들이 만드는 ‘굴포천 환경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청소년놀이마당 ‘갈산나빌레’와 ‘청천극장’이다.

동네 청소년들이 놀면서 꿈을 찾는 곳
 

중학생 때부터 청소년놀이마당 갈산나빌레ㆍ청천극장에서 밴드 활동으로 꿈을 키운 대학생들이 박동현 대표와 사진을 찍었다.
중학생 때부터 청소년놀이마당 갈산나빌레ㆍ청천극장에서 밴드 활동으로 꿈을 키운 대학생들이 박동현 대표와 사진을 찍었다.

갈산나빌레(주부토로 275, 갈산동)와 청천극장(마장로 473번길 7, 청천동)은 동네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이다. 주로 밴드음악을 한다. 초등 5학년부와 6학년부, 중등부, 고등부가 있다. 40~50대 중년 밴드와 60~70대 실버 밴드도 있다. 실버 밴드는 낮 시간대에, 중년 밴드는 주말에 모여 연습한다.

갈산나빌레와 청천극장은 공간 위치만 다를 뿐 하나처럼 운영된다. 박동현(48) 씨가 양쪽 대표를 맡고 있다. 청천극장을 먼저 만들었다. 청천동 아이즈빌 아울렛 근처에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연맹(이하 화섬연맹) 인천지부 사무실이 있었다. 그쪽에 있는 동서식품과 현대페인트 등 화섬연맹 소속 노조 사업장이 있었다.

화섬연맹 사무실 앞에 동네 청소년들이 자주 모여 담배를 피우고 간혹 서로 싸우기도 했다. 화섬연맹 사람들과 어울렸던 박 대표는 당시 시민단체를 만들까, 고민했다. 그런데 동서식품노조에서 밴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화섬연맹 사무실 앞에 모이는 청소년들이 생각났다. 동서식품노조 밴드 연습공간을 청소년 밴드와 나눠쓰자고 요청했다. 2012년, 그렇게 만든 게 ‘청천극장’이다.

박 대표는 밴드음악을 잘 몰랐다. 공간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가르칠지 막막했다. 지하층에 있는 청천극장 위층에 술집이 있었다.

하루는 술집 사장이 ‘남편이 음악을 하는데 이야기해볼까?’ 했다. 박 대표는 속으로 ‘얼마나 하시겠어?’ 생각했다. 어느 날 그 남편이 청천극장을 찾아왔다. ‘돈 받고 가르쳐주는 거냐?’고 묻기에 ‘무료로 한다’고 하자, ‘그럼 나도 무료로 가르쳐 줘야겠네’ 하고 시작했다.

박 대표는 “김명수라는 분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당한 실력가셨다”라며 “‘논개’를 부른 이동기 씨가 이끈 밴드의 리드기타를 담당하셨고, 1980년대 MBC 음악프로그램 ‘영일레븐’ 기타 반주자로 활동하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대중음악계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청천극장’은 청소년뿐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개방됐다. 하루는 부평북초등학교 동문회가 청천극장에 와서 회의를 했는데, 갈산1동에도 이런 공간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갈산1동에는 초등학교가 부평북초교 하나밖에 없다. 박 대표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부평북초교 한 동문이 자기 소유 건물 지하공간을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로 제공했다. 문제는 밴드가 연습할 수 있게 꾸미는 게 만만하지 않다는 거였다. 그래도 찾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마침 인천문화재단이 ‘소금꽃’이라는 문화 공간 마련 지원 사업을 할 때였다.

그 지원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2013년 문을 연 게 ‘갈산나빌레’다. 갈산나빌레가 기반을 잡는 동안 김명수ㆍ이동열ㆍ김원복 강사와 심꽃네 활동가가 큰 역할을 했다. 공간 운영을 위해 부평북초교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갈산나빌레와 청천극장에서 밴드 활동을 하는 청소년은 각각 30명가량 된다. 통합학생회를 꾸려 연습공간과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한다. 6~7월 자체 콘서트와 11월 정기공연을 한다. 최근 3년간 ‘갈산동 밴드데이’ 행사를 1년에 한 번 정도 열었다. 부평구 청소년가요제에 나가 입상했다.

박 대표는 “학생들이 와서 음악을 배우고 즐겁게 놀고 성장하면서 꿈을 찾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꿈을 찾은 이들, 지역사회에 큰 보탬
 

박동현 대표와 청소년들이 9월 9일 저녁 9시 무렵 ‘갈산나빌레’에서 굴포천 환경축제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박동현 대표와 청소년들이 9월 9일 저녁 9시 무렵 ‘갈산나빌레’에서 굴포천 환경축제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청천극장에 처음 왔을 때 중학생이었던 이들이 이제 대학생이 돼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있다. 올해 대학생이 된 김시영(20) 씨는 중학교 2학년일 때 학교 밴드동아리 후배 소개로 청천극장에 왔다. 밴드 합주와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대학에 입학해 기타를 전공하고 있다.

서유현(21) 씨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청천극장을 다녔다. 예술대학에서 공연기획을 전공하고 있는데, 실용음악과로 편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했고, JTBC 음악프로그램 ‘히든싱어’ 사이 편에 나가 세 명이 남을 때까지 함께할 정도로 노래 실력을 갖췄다.

이동욱(23) 씨는 청천극장 1호 회원이다. 중학교 2학년일 때인 2012년에 어머니의 권유로 왔다. 기타를 배우고 싶을 때 어머니가 청천극장 홍보전단을 가져와 함께 가보자고 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공연기획을 전공하고 있으며, 곧 군대에 갈 예정이다.

이들은 굴포천 환경축제 기획 단계부터 박 대표를 돕고 있다. 전공을 살려 축제를 기획하고 인천문화재단에 설명할 파워포인트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이 기획한 굴포천 환경축제의 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약 20년 전 시민운동으로 오염된 굴포천을 자연형하천으로 만든 의미를 되살려 앞으로도 잘 가꿔 나가자는 메시지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초청 가수나 예술단체 공연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들고 참여하는 축제다.

시민이 만들고 참여하는 축제

박 대표와 대학생들이 마련한 기획안은 축제위원회에서 더 풍부해진다. 굴포천 정화활동을 벌이는 하천사랑모임, 굴포천살리기시민모임, 학교와 동 주민센터, 지방의원 등이 축제위원회에 참여하는데, 그동안 회의를 세 차례 진행했다.

축제를 크게 네 가지 행사로 구성했다. ‘갈산나빌레’와 ‘청천극장’에서 활동하는 밴드 5개 팀이 공연한다. 고등부와 대학생들은 환경을 주제로 한 곡을 찾아 공연하기로 했고, 중등부와 어른들은 지금 배우는 것도 벅차니 배우는 것으로 공연하기로 했다.

굴포천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굴포천 사진전도 연다. 자연형하천 정비 사업 전후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재활용물품을 활용한 작품 전시와 판매도 할 계획이다. 관련 단체를 수소문해 모집하고 있다. 초등학생 대상 굴포천 그림그리기 대회도 연다.

문제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진행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이다. 당초 10월 10일 대월놀이공원에서 열 예정이었는데, 10월 24일로 연기해뒀다. 그 때도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으면 무관중 공연을 촬영해 유튜브 채널로 공유할 계획이다. 그림그리기 대회도 공모전 형식으로 바꿔 학교에서 그림을 모아주면 심사해 시상하고, 부평구청 지하 갤러리에서 재활용물품 활용 작품과 함께 전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박 대표는 초교부터 고교까지 인천에서 다녔다. 굴포천은 그에게 추억이 서린 곳이다. 봄이면 쑥을 뜯으러 다녔고,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탔다. 얼음이 깨져 빠져 죽을 뻔도 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해 수질환경기사자격증을 땄는데, 그 덕에 굴포천살리기시민모임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굴포천 환경축제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천문화재단 등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이 그동안 전문예술인 지원에 치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민문화 활동을 지원해 고맙고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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