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를 발자취를 하얼빈에서 느끼다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1월 19일,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1879~1910년, 향년 30세) 의사 기념관이 개관했다.

2013년 6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 방문 때 시진핑 주석에게 기념비 설치를 제의했고 이후 중국 정부가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사진제공 안중근 의사 기념관)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사진제공 안중근 의사 기념관)

2014년 1월 19일 중국 정부는 하얼빈역에 표지석보다 더 큰 규모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 내부의 설명판은 중국어 뿐아니라 한국어도 적혀 있다.

중국이 일제 침략의 역사를 한국과 공유하고 다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갈등이 일어난 후 일본과 관계가 틀어지자, 중국 정부가 세운 친한반일 정책 일부분의 영향일 것으로 추측됐다.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대북 문제, 동북공정 등 외교 갈등이 있었지만, 안 의사 기념관 개관으로 항일무장투쟁역사 인식을 한중이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에 한중 양국이 공조해 일본을 압박하려는 외교적 포석도 있었다.

하얼빈역에 가면 안 의사 현판과 기념 표지석을 볼 수 있다. 현판에 적힌 중국어의 한국식 독음은 '안중근격폐이등박문사건발생지'(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사건 발생지)이다.

기념관 개관으로 안 의사의 서거 당시 현장을 후대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순국 후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 순국 후 동생인 안정근(1885~1949년)과 안공근(1889~1939)이 유해를 인수하기 위해 일제 당국을 찾아갔지만, 일제 당국은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한민족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 했다.

이에 일제는 온갖 트집을 잡으며 유해를 끝끝내 넘겨주지 않았다. 학계는 안 의사의 유해가 뤼순 감옥 인근 죄수 묘지에 묻혔거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중근 의사를 연출한 장면. (국가보훈부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중근 의사를 연출한 장면. (국가보훈부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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