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과 조선이 낳은 천재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487년 전인 1537년 1월 17일, ‘구도장원공(과거 시험에 9번 장원 합격)’의 천재이자 5천원권 지폐의 주인공 ‘율곡(栗谷)’ 이이가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의 아들로 태어났다.

율곡은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을 평생 신조로 삼았다. 그는 사람됨이 깨끗하고 마음이 넓었으며 솔직 담백했다. 가정에서는 항상 가족에게 사랑으로 대했고 일가친척 누구에게나 따스한 정을 베풀었다.

일가친척 중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는 서울에 있는 집을 팔아 고향 파주에 집 한 채를 장만하고서 모든 일가친척을 다 모아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 위치한 율곡 이이 동상 (사진제공 강릉관광개발공사)
강원도 강릉 오죽헌에 위치한 율곡 이이 동상 (사진제공 강릉관광개발공사)

율곡은 이런 사랑을 모든 이웃에게 미뤄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베풀기 위해 그는 정성을 다했다. 청주목사, 황해감사 등 지방 목민관이 되었을 때는 향약(鄕約, 지방 마을마다의 자치규약)을 만들어 지방 백성의 경제생활과 도덕관념을 향상시키는 데 노력했고 중앙의 높은 벼슬에 있을 때는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율곡은 청렴하고 능력이 뛰어난 행정가였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항상 공부하는 자세였으며 실질적인 효과를 얻는 행정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는 때를 아는 것이 귀중하고, 일은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政裳飾時 事要務寶, 정상식시 사요무보)'라고 했다.

율곡은 또 남을 위해 몸 바쳐 일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했기 때문에 청렴결백했다. 후세 학자들은 율곡을 실학(責學)의 실마리를 열어 준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에 있어 공리공론을 배격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추구했고 현실생활과 직결되는 정책수립을 늘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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