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인천대, 기록 미비한 독립운동가 발굴해 2376명 서훈 신청
“독립운동가 발굴은 후손의 책무... 연구ㆍ지원 절실”
"반제국주의 활동 앞장선 조봉암 선생 8월 서훈신청예정"

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독립운동가와 의병은 개인을 위한 삶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나라를 되찾자고 싸운 사람이다. 그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가족은 해체되기까지 했다. 모르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들이 그들의 후손으로서 책무를 느껴야한다.”

수십 년간 의병과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있는 이태룡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의 말이다. 인천대학교는 국내 대학 최초로 독립운동사연구소를 설치해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있다.

이태룡 소장은 연구 책임자로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4번에 걸쳐 독립유공자 2060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서훈신청했다. 또, 연구소는 오는 2월 16일 독립유공자 316명에 대한 서훈을 신청할 예정이다. 모두 합하면 2년 여 만에 총 2376명을 신청하는 셈이다.

이는 국내 기관과 대학·연구소 등을 합쳐 1년에 500명도 안되게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다.

이렇듯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발굴해 공적 기록에 힘쓰는 이 소장을 지난 9일 만나 인터뷰했다.

이태룡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태룡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

기록 미비한 독립운동가 2300여 명 발굴해 서훈신청

이 소장은 재판 기록 등을 분석해 서훈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인천과 경기, 서울 등에 판결문이 있음에도 서훈을 받지 못한 이들의 공적을 총 정리해 서훈을 신청한다고 했다.

특히,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1916년 애국창가집을 제작·배포한 ‘한영서원 창가집’ 사건과 용유도 3·1만세의거 주도자로 징역 1년 6개월 옥고를 겪은 조명원 지사를 비롯한 강화·덕적·영흥도 출신 독립운동가 발굴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 소장은 “용유, 덕적, 영흥도 등 섬에서도 3·1만세의거가 일어났었는데, 서훈 신청이 많이 안 돼 있어 이번에 신청했다”라며 “특히, 경기도 개성이 한국전쟁 후 행정구역이 남에서 북으로 바뀌면서 이들의 공적을 찾아줄 사람이 없었다. 이에 지난해부터 개성사람들의 공적을 총정리해 이번에 서훈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역사상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송도고등보통학교 출신 73명에 대해 이번에 서훈을 신청했다”라며 “송도고보 출신 독립운동가는 총 97명이다. 한 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온 경우가 없어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라고 덧붙였다.

연구소에 따르면, 독립운동가 추정 누계인원은 의병 30만 명, 3·1만세의거 202만 명, 독립군·광복군 10만 명, 국내·외 반일행적 2만 명 등 242만 명이다. 이 중 10만여 명이 서훈 신청 대상이지만, 지난해 3월 기준 포상(서훈)자는 1만5931명에 불과했다.

이 소장은 서훈 신청이 어려운 이유로 재판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고, 국가기록원이 그나마 남아 있는 재판기록마저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일부만 공개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지난해 3월 기준 국가기록원은 판결문, 형사사건부, 수형인명부 등 6만3907건을 소장하고 있지만, 이중 1만8736건(29.31%) 만 공개하고 있다.

이 소장은 “3·1만세의거 때 구속된 사람이 약 5만 명인데 이중 재판기록이 공개된 게 3000여 명”이라며 “그만큼 많은 사람이 투옥되고 순국했는데 전반적인 기록들이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다. 기록이 있는 사람들만이 서훈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인천대 연구소는 기록미비로 서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들의 서훈신청에 앞장섰다. 해당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연구소에 감사했다.

최태환 지사의 자녀 최영임 여사는 “부친은 6·10만세의거로 정읍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았다”며 “20여 년 전부터 서훈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에 이태룡 소장의 도움을 받아 서훈신청을 하게 돼 기쁘고, 한없이 감사하다”고 밝혔다.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 현판식의 모습.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태룡 소장.(사진제공 인천대)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 현판식의 모습.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태룡 소장.(사진제공 인천대)

“독립운동가 발굴은 후손의 책무... 연구ㆍ지원 절실”

이 소장은 독립운동가 발굴 연구는 국가와 후손의 책무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와 학자들이 나서서 연구해야하지만 지원이 없고, 연구가 미비해 독립운동가가 제대로 발굴되지 않았다고 통탄해했다.

이 소장은 “조국 광복을 위해 만주와 연해주 등에서 이름없이 죽은 사람도 있고, 일제에 체포된 사람도 많다”며 “이들은 나라를 위해 재산, 목숨까지 바쳤고, 개인을 위한 삶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그들의 후손인 셈이다”라며 “국가는 이 사람들을 발굴해 공적을 기려야 하고, 후손 한 명 한 명이 책무를 느껴야 한다. 이를 모르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이 소장은 올해 광복 76주년이지만,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발굴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학을 비롯한 학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소장은 “독립운동가 발굴과 서훈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보훈처는 인력이 부족하고, 연구 지원도 부족해 학자들이 나서지 않는다”라며 “한국에 대학이 400여 개, 대학원이 900여 개 있지만,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생긴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서훈을 신청하는 대학은 인천대학교가 유일무이하다”라며 “인천대학생들이 가장 자부심을 갖고,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게 이 연구소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 소장은 1986년부터 35년 간 의병연구를 했고, 이후 3·1만세의거와 독립군을 연구한 지 10년 됐다고 했다. 그는 인천대에 오기 전부터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서훈을 신청했고, 서훈을 신청한 독립유공자는 총 4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2015년 이후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재판 기록 공개가 중지됐고, 이 때문에 연구에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일본 기밀문서 속에 있는 판결문을 찾아내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하기 어려운 이유는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특히, 연구원들이 판결문에 ‘폭도수괴’라고 적혀있으면 독립운동가인지 정말 폭도였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독립운동가들이 연결돼있는 것을 못 보고, 단편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국가가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 뒤, “판결문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의병을 계속 연구하던 사람이 문서를 봐야한다. 흐름을 모르고는 발굴하기 어렵다”라며 연구 관련 문서공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태룡 소장이 이번에 서훈신청할 독립운동가 기록을 보고있다.
이태룡 소장이 이번에 서훈신청할 독립운동가 기록을 보고있다.

“조봉암 선생 8월 서훈신청예정... 국가가 나서 독립운동가 연구해야”

이 소장은 오는 8월 광복절에 맞춰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죽산 조봉암 선생의 서훈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봉암 선생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의 선구자이자 일제에 대항해 반제국주의 활동을 펼친 핵심인물이다. 그러나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매도돼 간첩혐의를 받았다. 죽산은 사형 선고 바로 다음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뒤 사형 집행 52년 만인 2011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서훈 추서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는 “조봉암 선생은 민족단합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사회주의 운동을 했고, 반제국주의 활동의 핵심인물”이라며 “역사적 공적을 크게 남긴 조봉암 선생은 광복 이후 공산주의자로 매도돼 아직까지 서훈 추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조봉암 선생은 반제국주의 활동을 주도한 상징적인 역사로 기록돼야한다”라며 “그와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한 이동희, 이재유 선생은 서훈을 받았는데, 조봉암 선생만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지 못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부연했다.

이 소장은 앞으로도 계속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계속 연구해 서훈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혼자서는 불가능하며, 국가와 대학이 나서 연구에 힘써야한다고 했다.

그는 “광복 76주년이지만,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앞으로도 최대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공적이 제대로 기록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일생동안 10만 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들을 혼자 발굴하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학과 국가가 나서서 독립운동가 발굴에 더 힘써야한다”며 “아울러 연구소가 국가보훈처와 협업해 연구지원을 받고, 능통한 연구원을 추가로 배치해 제대로 독립운동가 연구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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