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러시아를 가다
4. 러시아 IT인재들이 모인 곳, 러스소프트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혁신포럼.

구글ㆍ얀덱스ㆍ텔레그램…탄탄한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러시아 탐방기 3편을 탈고하고 나서야 사단이 난 줄 알았다. 3편에 이튿날 방문한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을 소개했는데, 첫날 간 두 곳을 미처 다루지 않은 걸 알았다. 이제라도 첫날로 돌아갈 수밖에.

첫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중앙도서관 내 한국관 개관식을 본 뒤 조지아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마카로프발렌틴 ‘러스소프트(RUSSOFT)’ 회장을 만나러갔다.

러스소프트는 컴퓨터 소프트웨어(OS)를 개발하는 러시아 IT기업들의 모임으로, 1999년 9월 9일 설립했다. 사이버보안ㆍ교육ㆍ미디어ㆍ금융ㆍ항공(드론)ㆍ텔레콤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소프트웨어 기업 164여개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회원사 중에는 세계적인 안티 바이러스 기업인 ‘카스퍼스키 랩’, 최고의 항공사진 전문 업체인 ‘지오스캔’, 지능형 문서처리 솔루션 분야의 세계적 선두 주자 ‘아비(ABBYY)’ 등이 포함돼있다.

러시아ㆍ벨라루스ㆍ동유럽ㆍ영국ㆍ인도ㆍ미국 등지에서 러스소프트와 관련한 일을 하는 엔지니어는 약 6만5000명이다. 이들은 주로 러시아 정부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해외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러스소프트는 러시아에서 프로그래머를 양성하는 데도 인정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경기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경기도는 첨단 원천기술을 보유한 러시아 기업과 경기도 내 기업의 제휴를 연결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스소프트와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했다.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 IT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러시아도 경제위기를 겪어, 기업에 줬던 정부 혜택이 줄었다. 그 뒤 IT기업들이 다시 대통령한테 IT산업에 지원을 요청했고, 푸틴 대통령은 특별한 관심을 두고 육성하고 있다.

“러시아 IT인재는 수학ㆍ과학에 문학까지 겸비”

러시아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이나 개발자들의 장점은 탄탄한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수학과 과학에 기초해 양질의 고급 교육을 받은 인재가 풍부하다.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브린은 러시아 출신 미국 시민권자 기업인으로서 래리 페이지와 함께 ‘구글’을 창립했고, 동구권과 중앙아시아에서 유명한 포털사이트 ‘얀덱스’는 프로그래머인 일리야 세갈로비치가 설립했다. 한국인이 많이 사용하는 클라우드 기반 온라인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도 러시아에서 개발했다.

마카로프 발렌틴 회장은 “한국의 여러 산업분야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자동화시스템이라든가 자동차 제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 등, 다른 해외 기업이 할 수 없는 것들이 러시아에 많다”라며 “소프트웨어는 수학ㆍ과학 분야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 못하면 과제를 수행하기 매우 어렵다. 아울러 과제를 수행하는데도 멘탈이이나 기업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포함되는데, 러시아 인재들은 수학ㆍ과학에 문학까지 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보통신기술이 한국에서 유명해 진 것은 2015년 본격화한 ‘텔레그램으로 디지털 망명’ 때부터다. 러시아 소프트웨어가 유명해진 것은 바로 보안시스템 덕분이다.

발렌틴 회장은 “모든 프로그램의 중요한 공통점은 보안성이다. 그래서 러시아 개발기업들이 중점을 두고있는 부분은 어떻게 하면 우수한 보안플랫폼을 갖출 것인가이다”라며 “AI라든가 빅데이터, 무인자동차시스템 등을 실행할 수 있는 보안플랫폼 개발이 가장 큰 과제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IT기술과 보안시스템은 미국과 대립하는 구도에서 자체 보안시스템을 개발해야하는 필요성에서 발달했다. 그게 보안플랫폼을 보다 정교하게 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러스소프트의 목표는 자신들이 개발한 보안플랫폼을 수출하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혁신포럼.

러시아(인)에게 한국은 ‘의리’를 지킨 나라

발렌틴 회장은 러스소프트 회원사들이 관심을 두는 곳은 동남아시아 등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국가들이라고 했다. 중국과 인도에는 이미 러스소프트 지사가 나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동남아는 물론 한국도 2019년 가을에 방문했을 때 지사를 설립할 만한 충분한 조건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러스소프트를 비롯한 러시아 기업과 러시아인들은 한국과 한국 기업에 굉장히 우호적이고, 한국인에 대해 무척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한국에 우호적인 배경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한국 기업이 보여준 의리다.

한국이 1997년 IMF 경제 불황을 겪을 때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러시아에 진출해있던 지엠을 비롯한 초국적 기업들이 철수했는데, 현대자동차와 삼성은 자리를 지켰다. 현대차와 삼성도 어려웠지만 국내로 돌아가도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러시아에서 버텼다.

이게 나중에 러시아에 ‘의리’로 통했다. 현대기아차는 2019년 기준 러시아 자동차시장에서 점유율 약 24%로 1위가 됐고, 삼성은 러시아인들이 사랑하는 볼쇼이극장에서 유일하게 전자제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있다.

두 번째 의리는 ‘대러 제재’ 불참이다. 러시아는 2015년에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이 일로 미국과 서유럽은 대러 제재에 돌입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 당사국이 모여 있는 동북아시아의 특수 상황을 설명한 뒤 동참하지 않았다. 러시아정부와 기업은 이를 굉장히 고맙게 여긴다.

또 하나는 한국의 발달한 산업이다. 러시아를 방문하기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 국내 연수에서 <로시야가제트>(=러시아 기관지에 해당하는 언론) 한국지사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는데, 러시아인들은 한국의 모든 가정집에 로봇청소기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한국의 응용산업기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마지막은 한류 열풍이다. 러시아에서도 한류는 뜨겁다.

발렌틴 회장은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외교ㆍ정치적으로 러시아와 주변국들과 마찰이 없는 국가로 향후 10~15년 러스소프트에 한국은 가장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기술ㆍ비즈니스ㆍ파이낸싱 파트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응용기술과 러시아 원천기술 만나면 시너지”

발렌틴 마카로프 러스소프트 회장.

러스소프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의 응용산업기술과 러시아의 원천기술이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국 제조업체들도 러스소프트에 관심을 보이면서 최근 기술제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의료기기 분야에서 관심이 많다고 했다.

2017년에 모스코바에서 열린 국제 의료기기 박람회에 참여한 한국 기업이 12개였는데, 이듬해는 24개로 늘었다고 했다. 그리고 스콜코보(=국내 판교밸리 같은 곳) 같은 곳에 한국 의료기관이 진료실이나 병원 조성을 타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의료기기 분야도 프로그램 개발과 시스템 구축이 관건인데, 비용 측면에서 러시아 기술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좋다고 했다.

“러시아는 한국 기업과 공동개발 준비돼있다”

러스소프트는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은 아직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와서 물건을 팔고 박람회에서 소개하고 파는 정도에서 멈추지 말고, 러시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과 협력해 초기단계부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를 희망했다.

발렌틴 회장은 “한국 방문과 한국과 공동세미나를 통해 LGㆍ삼성ㆍ현대 말고도 굉장히 흥미로운 기업이 많고, 우리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재밌는 프로젝트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러시아는 공동개발과 협력에 준비돼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한국 기업은 기술을 응용해 무엇이든 사업화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도 사물인터넷과 에너지 분야 사물인터넷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라며 “한국의 산업화 기술과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IT분야의 원천기술과 경험이 만나면 시너지를 발휘해 지금보다 훨씬 더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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