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러시아를 가다
1. 러시아를 가게 된 2019년의 우연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전경 일부.

한ㆍ러 수교 30주년, 러시아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한국과 러시아는 1991년 8월 수교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소비에트연방(소련) 해체 후 개방을 가속화한 러시아 정부의 대외 개방정책이 공산권ㆍ사회주의권으로 인식되던 러시아와 수교로 이어졌다.

한국과 러시아는 내년에 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두 나라 정부는 내년과 2021년을 상호 방문 교류의 해로 정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의 다양한 교류ㆍ협력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인천은 러시아와 관련이 많고 깊다. 특히, 러시아 문화ㆍ예술과 교육의 수도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이하 페테르부르크)에는 ‘인천광장’이 있고, 인천항 연안항에는 ‘페테르부르크광장’이 있다.

러일전쟁 중 러시아 바르야그 군함이 인천 앞 바다에서 침몰했고, 그 함대의 깃발을 인천시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민선5기 송영길 인천시장이 러시아에 임대해 전시하면서 인천시와 페테르부르크시의 관계가 긴밀해졌다.

러시아 국민소득은 한국보다 적지만, 세계 강대국이자 한반도 정세와 무척 관련이 많은 나라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남ㆍ북ㆍ중ㆍ미ㆍ일ㆍ러) 당사국이며, 북한과 접경하고 있고, 냉전 해체 후 한국 정부는 남ㆍ북ㆍ러 협력을 꾸준하게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과 다양한 경로와 관계로 인연을 맺고 있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라에 속한다. 인천에 올해 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 다녀갔고, 인천 연수구에 고려인(이하 재러시아 동포) 후손들을 비롯해 러시아 사람들이 대거 정착하고 있지만 말이다.

러시아의 중요성을 알지만 러시아를 잘 모른다. 마침 러시아를 알아볼 기회가 생겼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한ㆍ러 수교 30주년을 대비해 2019년 KPF(=korea press foundation) 디플로마 과정으로 러시아 전문가 과정을 공모했다.

국내 기자들 중에 러시아를 알고 싶은 기자를 선정해 국내에서 러시아의 정치ㆍ외교ㆍ군사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종교 등을 배우는 연수를 한 뒤, 13박 15일간 러시아를 다녀오는 과정이다.

디플로마 전문가 과정은 지역신문 기자만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 신문과 방송사 기자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경쟁률이 높다.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발표를 기다렸다. 그동안 남ㆍ북ㆍ러 물류 활성화, 동아시아 5개국 고속철도망 구축,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가, 인천ㆍ남포ㆍ페테르부르크 협력을 주제로 한 기사를 썼고, 앞으로도 계속 조명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신청서를 썼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하기 마련이다.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에 결과가 떴다. 바라는 대로 기자단에 선정됐다.

러일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북해를 나와 한반도 향하던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앞에서 회항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내 러시아 전함.

고려인이 아니라 재러시아 동포로 불러야

남ㆍ북ㆍ러를 잇는 물류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은 이전부터 기사화한 주제이지만, 연해주 독립운동가의 대부 최재형 선생 이야기는 올해 초 우연히 최용규 인천대학교 법인 이사장으로부터 책 ‘독립운동가 최재형(문영숙 저)’을 받아 읽으면서 알았다.

최 이사장은 연해주 일대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 발굴이 거의 안 돼있다며 그 중요성을 알려줬고, 그들의 후손이 현재 만주와 연해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또, ‘고려인’과 ‘조선족’이라는 표현은 차별을 담고 있다며 재미동포ㆍ재일동포처럼 재러동포와 재중동포로 고쳐불러야 한다고 알려줬다.

최 이사장의 이야기는 러시아 연해주와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더욱 갖게 했다. 최재형 선생의 5대 손 일리야최(19) 씨가 올해 모스크바공대 입학을 접고 인천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재러동포 후손의 인천 정착 얘기는 또, 올해 3월 새얼아침대화에 나갔다가 거기 참석한 류재경 인천건축사회 회장으로부터 인천의 전문직단체협의회(의사협회ㆍ치의사협회ㆍ변호사회ㆍ건축사회, 인천시민재단)가 연수구 소재 재러동포 후손들을 돕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알게 됐다. 모두 2019년에 일어난 우연이다.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일이 내게 남겨졌다.

그렇게 11월 13일 출국해 26일 귀국하는 일정으로 러시아를 다녀왔다. 내심 TSR를 탈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차는 별로 안 탔다.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를 각각 5일 정도 일정으로 다녀왔다. 러시아를 처음 방문하는 것에 설레면서 춥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매우 추웠고, 늦가을 옷을 챙겨간 게 낭패였다.

연방 주체 85개와 민족 126개가 구성한 나라

모스크바 붉은광장 바실리 성당.

러시아를 가기 전 연수를 했다. 러시아는 연방국가로 현재 연방 주체 85개(공화국 22개, 주 46개, 지방 9개, 자치주 1개, 자치구 4개, 연방시 3개)로 구성돼있다. 소련이 해체하면서 러시아가 탄생했지만, 1991년 소련 해체 후 탄생한 독립 국가를 제외해도 러시아는 여전히 거대한 연방국가다.

러시아를 구성하는 민족은 슬라브족을 포함해 한민족과 유대족 등 소수 민족까지 치면 126개다. 중국이 50여 개라고 했을 때 두 배가 넘는 소수 민족이 러시아에 살고 있고, 이를 연방제 국가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 있긴 하지만. 푸틴의 지지율은 70% 안팎에 이른다.

슬라브족이 주를 이루는 러시아가 유럽 무대에 등장한 것은 약 9세기 무렵이다. 그 전까지는 유럽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변방이었다. 한민족의 역사 기원이 고조선의 만주 일원이라면, 러시아의 기원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 통한다.

러시아는 9세기 무렵 동로마제국으로부터 동방정교를 수용했다. 러시아의 국교에 해당하는 러시아정교가 동방정교인 까닭이다.

현재 러시아인을 비롯한 슬라브족의 문자를 키릴문자라고 하는데, 이 또한 동방정교와 관련이 깊다. 동방정교의 선교사 성 키릴로스(치릴로)와 그의 형인 성 메토디오스(메토디오)가 슬라브족에게 포교하기 위해 그리스 문자를 바탕으로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블라디보스토크 독수리 전망대에는 이를 기려 두 형제 성인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물론 최근에는 키릴 형제의 문자 창제론에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키릴문자는 초기 키릴문자에서 갈라져 나왔고, 이 문자는 글라골문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기에 그 전부터 존재했던 문자를 키릴 형제가 다듬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더라도 두 성인의 문자 창제 기여는 사라지지 않는다.

10세기 무렵 동슬라브는 키예프(현 우크라이나수도)를 중심으로 한 키예프대공국이 건설되며 통일됐다. 그러나 13세기 초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고, 당시 모스크바공국(1340~1547년)은 몽골 지배 아래에서 루스(=러시아)가 납부하는 세금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뒤 15세기 무렵, 킵차크한국의 지배를 벗어나 러시아 통일을 추진했다. 모스크바대공국은 이반 3세(1462~1505년) 때 차르를 자칭했다. 그리고 17세기 초 로마노프 왕가의 러시아 제국(1613~1917년)이 수립됐다.

표트르 1세(재위 1682~1725년) 때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17세기에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했고, 19세기엔 카프카스를 합병해 유라시아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갖는 유럽의 막강한 일원이 됐다.

러시아는 2015년에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해 서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다. 독일도 이 제재에 참여하고 있는데, 러시아에서 독일로 가는 가스관은 탈 없이 가동되고 있다.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 낀 나라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인데,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는 고달프기 마련이다. 폴란드와 러시아 관계는 한ㆍ일 관계와 비슷하고, 우크라이나는 최근 친러 정부가 들어서며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에 있다.

극동에서 유럽으로, 다시 유럽에서 극동으로

러시아는 광활하다. 러시아 안에서만 시차가 무려 11시간대에 이른다. 이번 여정은 페테르부부르크를 먼저 방문한 뒤, 모스크바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는 서울보다 6시간 느리고, 블라디보스토크는 1시간 빠르다.

11월 13일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로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페테르부르크인데, 페테르부르크 직항 노선은 3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만 운영하기에 모스크바에서 환승해야했다.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행 비행기를 환승하는데, 연착한 데다 출입국과 통관 절차가 너무 오래 걸렸다. 출입국 심사가 까다롭진 않았으나, 심사 창구를 좀 더 열면 편할 텐데 좀 답답했다. 페테르부르크 숙속에 도착하니 13일 밤이었다.(다음호에 계속)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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