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러시아를 가다 6. 러시아 자동차점유 1위 현대기아자동차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러시아 방문기 여섯 번째 글을 쓰는 지금도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 사흘 째 되는 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방문했던 이야기는 저번에 썼다.

사흘 째 점심 때 러시아 문화부 장관과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양국 교류 증진에 관한 업무협약 체결식에 참여했고, 오후에는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대학원에서 물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터라 현대자동차 공장 방문에 기대가 컸다.

북방외교의 원조는 노태우 전 대통령

한-러 문화부 장관 MOU 협약.

한국과 러시아는 1990년 9월 수교했다. 올해가 30주년이다. 한ㆍ러 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으로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사실 한ㆍ러 관계 개선을 비롯한 북방외교 정책 추진의 일등 공신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한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신군부를 몰아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진영의 분열로 12ㆍ12쿠데타의 주역이자 5공 정권의 후계자인 민정당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야권의 분열로 당선됐기 때문에 대선 직후 1988년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질 정도로 노태우 정부는 여당 지지세가 약했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으로 눈을 돌렸고, 탈냉전 분위기와 맞물려 러시아와 중국에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1988년 24회 올림픽은 냉전체제의 상징인 소련(소비에트연방)과 미국이 동시에 참가했고, 사회주의권에선 중국과 베트남을 물론 동유럽 등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참여해 IOC 회원국 가운데 대부분인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로 치러졌다.

1990년 한ㆍ러수교는 이듬해 한ㆍ중수교로 이어졌다. 한국 경제의 중요한 상대국이자 협력 국으로 부각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은 노태우 정부의 공이 크고, 인천항과 인천공항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서 출발한다.

여하튼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시장 다변화를 위해 새로운 북방정책, 신 북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러시아ㆍ벨라루스ㆍ카자흐스탄ㆍ아르메니아ㆍ키르기스스탄)은 올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예정인데, 핵심은 러시아다.

한ㆍ러는 문화부 장관은 문화 분야에서도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2020~2021년 2년을 ‘한국-러시아 상호 문화 교류의 해’로 정하고, 지난해 11월 MOU를 체결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번 두 번째 기사에 썼으니 이번에는 안 다룬다.

러시아 취재 중인 한국 기자단은 MOU 체결 취재를 위해 간 게 아니라, 디플로마티트 교육 일환으로 방문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정이 맞아 떨어졌다. 박양우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블라디미르 메딘스키(Vladimir Medinsky) 러시아 문화부 장관은 2019년 11월 1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쥐미술관에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기자단 중에선 대표로 몇 명만 갔다.

표트르 1세가 요새로 건설했다가 자신이 잠든 곳

상트페테르부르크 피터폴(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대신 남은 기자단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Петропавловская крепость) 일원을 구경하며 놀았다. 이 요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랜드마크 중 하나로 네바 강변에 위치해 있다. 건너편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에르미타쥐궁이다.

표트르 1세는 스웨덴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요새를 지었다. 요새를 짓기 전에는 주변에 습지가 많아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는데, 이 요새를 짓는 것을 계기로 신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요새 안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성당은 1712년부터 1733년까지 지었다. 종탑의 높이는 123.2m이다. 1720년부터 러시아 군대가 주둔했으나, 나중에 정치범의 수용소로 이용됐고, 지금은 제정러시아 표트르 1세부터 알렉산드르 3세까지 러시아 황제의 시신이 매장돼 있다.

1917년 10월 혁명 당시 볼세비키 지도자인 트로츠키는 이 요새에서 혁명군을 지휘하며 에르미타쥐궁으로 대포를 날리고, 카데트(입헌민주당) 주도의 임시정부를 무너뜨렸다. 2월 혁명에 의해 로마노프 왕조의 제정러시아가 붕괴됐다면, 10월 혁명으로 볼세비키 중심의 소비에트(노동자, 농민, 군인위원회)로 권력이 집중됐으며, 백군과 적군의 내전을 거쳐 1922년 소련이 탄생했다.

점심은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함께 한다고 해서 네바강변에 위치한 선상 식당에서 했다. 소개를 하면서 인천에서 온 기자라고 하니, 박 장관이 인천을 잘 안다고 했고, 박남춘 시장과도 친하다고 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같은 테이블에서 장관과 같이 밥 먹을이 몇 번이나 될까 싶어 인천과 관련한 질문을 했다. 한ㆍ러가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2020년을 ‘한-러 상호 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교류행사를 확대한다고 했으니, 지자체까지 확대할 것을 요청하고, 계획을 물었다.

지자체까지 확대할 계획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계획에 대해선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당시 답변에 따르면 올해 2월 지자체까지 확대해 준비회의를 한다고 했었는데, ‘코로나 9’ 사태 탓인지 아직까진 들리는 얘기가 없다.

러시아 시장 점유율 1위 현대차, 괜히 으쓱해지는 기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공장 전경

점심을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갔었고, 그 얘기는 지난번에 썼다. 사흘 째 날 마지막 일정은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공장 방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 시내에는 정말 현대, 기아자동차가 흔하게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2019년 10월 기준 러시아 시장점유율 23.7%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고,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현대자동차 러시아공장은 상트페테르부크르 북서쪽 카멘카(kmenka) 지역에 있다. 면적은 약 200ha이다. 현대자동차는 약 5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2008년 8월 착공해 2010년 9월 준공했으며, 2011년 1월 첫차 솔라리스를 생산했다. 착공식과 준공식, 첫차 생산 현장에 푸틴 대통령이 모두 참여했다.

러시아 공장의 특징은 부품생산부터 조립에 이르는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모든 공정을 갖춘 공장이라는 점이다.

2013년 러시아 내 해외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러시아연방 정부가 수여하는 ‘2013년 러시아 국가품질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솔라리스(=아반떼급)와 크레타(=소형SUV), 리오(기아차) 세종류를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생산라인을 점차 넓혀갈 예정이라고 했다.

크레타는 2017년 올해의 차에 선정됐고, 솔라리스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연속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올해의 차는 러시아 소비자 100만여 명이 직접 투표로 선정하는 상이다.

러시아공장의 생산능력은 시간당 45.5대이고, 연간 23만대를 생산할 수 있으며, 2019년 10월 기준 누적 생산량은 195만대에 달한다.

현대자동차가 러시아공장에 파견한 이는 약 30여명이고, 러시아공장이 직접 고용한 현지인은 2300여 명이다. 현대자동차는 러시아공장에 투자하면서 협력업체를 같이 데려갔는데,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전체 고용인원은 8000여명에 이른다.

솔라리스는 현대자동차가 국내 시판 중인 아반떼와 액센트 중간에 있는 준준형세단이다. 러시아에선 국민차로 통한다. 크레타도 소형 SUV에 속한다.

소나타와 그랜저, 제네시스, 싼타페 등에 대한 수요도 있는데 이는 아직 수입해서 판매 중이라 했다. 현대자동차는 러시아의 경제발전 추이와 러시아 국민들의 소득성장 추이를 봐가면서, 차종을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라고 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 물류는 ‘로망’ 현실은 해운 물류

현대자동차 러시아공장 생산 준중형세단 솔라리스.

개인적으로 대학원에서 물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현대자동차 물류에 관심이 많았다. 현대차는 러시아에 협력업체를 같이 데리고 갔기 때문에 부품을 현지에서 생산하지만, 일부는 또 한국과 중국, 인도 등 국제 공급사슬(SCM)망을 활용해 조달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역시 철도 물류는 ‘로망’이었고, 현실은 해운이었다. 현대자동차는 2018년 8월 시베리아횡단철도(TSR) 활용한 부품 운송을 처음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1월 운송을 중단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부품의 이동거리는 부산항 기준 해운물류의 경우 총 2만1900km에 42일이 소요되고,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경우 해운(부산항~블라디보스토크)과 철도(9583km) 운송을 포함해 총 1만629km에 22일이 결린다. 철도를 이용하는 게 기간이 짧기 때문에 비싼 부품이 철도에 적합하다. 하지만 자동차 부품은 충격과 진동에 민감하기 때문에 현재는 운송을 안 하고 있다.

사실 철도가 빠르긴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비용이다. 한국에서 러시아나 동유럽 등으로 물자를 보낼 때 TSR이나 TCR(중국횡단철도)를 이용하는 방안을 떠올릴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지도 속의 얘기이고 현실에선 비현실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문제다. 배를 이용하는 게 저렴하다. 부산항 기준 '해운+철도' 복합운송 22일과 해운 42일을 비교했을 때 배가 훨씬 저렴한데, 굳이 20일을 앞당기기 위해 화주 입장에선 비싼 철도를 이용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철도를 통한 화물운송을 현실성 없지만 여객열차는 가능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역.

한반도 철도를 중국과 러시아와 연결해 물류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그닥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낙후한 북한 철도 인프라도 문제지만 당장 남한 철도가 문제다.

철도가 일반적으로 경제성을 지니려면 화물열차 1편성에 컨테이너가 약 70개 정도 실려야 한다. 20피트 컨테이너 70개만 그냥 1열로 나열해도 길이가 200미터가 넘는다. 그런데 한국 철도 노선 중에 이 200미터짜리 컨테이너를 싣고 달리다가 여객열차한테 비켜주기 위해 정차 대기 할 수 있는 구간은 커녕, 100미터 구간도 없다.

두 번째는 러시아 등 과거 소비에트연방에 속했던 나라의 철도는 여전히 광궤(철도 궤도폭 1524mm)이고 중국과 한국, 서유럽 등은 표준궤(1435mm)를 사용한다. 즉, 부산항이나 인천항을 출발한 기차는 중국은 갈 수 있어도, 러시아는 못 간다. 방법은 환승인데, 물류의 가장 큰 비용은 환승 비용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철도 대신 중국과 러시아 항만을 이용해 철도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나, 이 또한 화물은 싣고 내리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비용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통관해야하는 절차도 복잡하고, 열차 신호체계도 다 다르다. 여러모로 배가 합리적인 이유다.

그렇다고 남북한과 동북아시아를 연결하는 철도를 포기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여객열차는 다르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라선항(라진ㆍ선봉지구)까지 철도를 깔았다. 동해선과 연결하면 부산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기차로 갈수 있다.

중국은 더 편리하다. 중국은 남한, 북한과 같이 동일한 표준궤를 쓰고 있다. 신호와 통신 체계를 통일하면 길은 열린다. 게다가 중국 고속철도망은 굉장히 촘촘하기 때문에, 중국 단동만 진입하면 상하이이와 광저우까지 갈 수 있다. 즉, 단동에서 신의주를 지나 평양과 개성을 거쳐 서울까지 고속철도를 남북중이 합작으로 연결하면 부산발, 목포발 고속열차가 베이징까지 가는 길이, 베이징발 고속열차가 부산과 목포로 가는 길이 열린다. 화물 철도는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여객열차는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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