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운동과 러시아는 긴밀해…공동연구 합시다”
“한국 독립운동과 러시아는 긴밀해…공동연구 합시다”
  • 김갑봉 기자
  • 승인 2020.01.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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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러시아를 가다
3.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유럽 최초 한국어교육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조지아 음식’

첫날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내 한국관 개장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갔다. 호텔 조식을 빼면 러시아에서 첫 끼니다. 가이드 선생이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조지아 식당으로 데려갔다.

조지아는 코카서스 지역에서 흑해와 접한 곳이다.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며, 코카서스 사람들은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식당에서 호박스 프와 한 국 만두 같은 킨칼리(khinkali), 배 모양을 한 빵 가운데 들어있는 치즈와 계란을 잘 섞은 후 빵의 바깥부분부터 뜯어서 찍어 먹는 아자리안 하차푸리, 바비큐 요리 샤슬릭과 비슷한 쯔바디를 먹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이젠 보드카보단 맥주와 와인을 좋아한다. 조지아 와인이 유명한데, 역시 맛있다.

왼쪽부터 킨칼리, 쯔바디, 하차푸리, 와인.
왼쪽위부터 반시계 쯔바디, 킨칼리, 하차푸리, 와인.

화학주기율표 만든 멘델레이프, 보드카도 표준화해

이튿날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갔다.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로 1724년에 표트르대제(1세)가 설립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총리가 이 대학 출신인데,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이 대학 출신 정관계ㆍ재계 주요 인사들이 러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교육과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출신이고, 레리흐라는 작가이자 철학자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혁명을 일군 레닌과 화학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이프도 이 대학 출신이다.

지난해는 멘델레이프 탄생 185주년이자 화학주기율표를 만든 지 150년 된 해였는데, 멘델레이프는 보드카 알코올 도수를 표준화하기도 했다. 너무 높은 도수의 술은 몸에 해롭고 낮은 도수는 밍밍하다는 의견을 고려해 40도가 가장 적정하다고 제시했다. 그에 따라 보드카 알코올 도수는 40도에 맞춰졌다.

안드르쉰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부총장.
안드르쉰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부총장.

“페테르부르크대ㆍ김일성종합대 협력관계…남ㆍ북ㆍ러 협력 가능”

세르게이 안드르쉰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대외협력부총장을 만나 이 대학의 역사와 전통, 출신 인사, 국제협력사업, 한ㆍ러 교류사업 등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이 하는 일이 참 많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세계 기관ㆍ대학ㆍ기업 약500개와 협력하고 있다. 교육부 통제를 받지 않기에 중국 교육부와 헝가리 외교부 등 해외 정부부처와도 직접 협력하고 있다. 한국은 서울대ㆍ서울시립대ㆍ인천대 등과 협력하고 있다. 삼성과도 협력관계에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는 한ㆍ러 대화(KRD, Korea-Russia Dialogue) 러시아 사무국이기도 하다. KRD는 2008년 9월 한ㆍ러 정상회담 성과로 설립했고, 한ㆍ러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협력 채널이다.

안드르쉰 대외부총장은 남ㆍ북ㆍ러 대학 간 3각 협력채널도 열려있다고 했다. 그는 “201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KRD 때 우리 총장이 남ㆍ북ㆍ러 삼각협력 관련한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예를 들어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과 한국에 있는 대학, 그리고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과 협력해 남한에서 북한으로 학생들이 대장정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있었다”고 말했다.

안드르쉰 부총장은 또, “우리 총장이 제안한 또 하나는 ‘사전’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남북한만 협력해 만드는 게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까지 함께 참여해 만드는 프로젝트였다”라며 “이밖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과 김일성종합대학은 파트너십이 맺어져 있기에 학술분야 남ㆍ북ㆍ러 삼각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쿠루바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한국학과 학과장.
쿠루바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한국학과 학과장이 자신이 쓴 이범진 공사에 관한 책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크르대학, 1897년 유럽 최초로 한국어 교육 시작

상트페테부르크대학은 유럽 최초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안드르쉰 부총장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이 러시아 최초이자 유럽에서 최초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20년 전 이미 한국어와 한국학 교육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1897년에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아관파천’이 발생한 1896년 2월 이듬해붙어 한국어 교육이 러시아에서 시작됐다.

당시 민영환 초대 주러시아 특명전권공사를 수행한 김병옥 서기관이 잔류해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고, 교재로 춘향전을 사용했다.

한국학과장인 세르게이 올레고비치 쿠르바노프 교수는 한국어와 한국학에 학생들의 인기도가 높다고 했다. 해마다 학생 15명가량이 입학하는데, 교육과정이 굉장히 정교하다.

교육방식에 러시아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돼있다. 학생은 교수한테 1:1 교육을 받고, 해마다 논문을 쓴다. 교육과목이 굉장히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전문적인 시험도 보고, 한국어는 물론 한국 지리를 배운다. 아울러 영남과 호남, 충청, 강원의 정서까지도 배운다.

한국 독립운동과 러시아는 긴밀해 “공동 연구합시다”

쿠르바노프 교수는 한ㆍ러 관계를 강의할 때 오랜 시간을 들여 초대 러시아 상주 공사 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인 이범진 선생을 학생들한테 소개한다고 했다.

이범준 공사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100년 정도 지나면서 한국에서도 잊힌 존재가 됐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선 매해 학생들에게 이범준 공사를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페테르부르크 대한민국총영사관이 이범준 공사와 그의 아들 이위종(=헤이그 밀사 3명 중 1명) 지사를 기리는 작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범준 공사와 이위종 지사 이야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오기 전 총영사관 관저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다음에 쓸 예정이다.

쿠르바노프 교수는 한국 독립운동과 러시아의 관계에도 관심이 많았고 해박했다.

그는 “2.8독립선언서를 보면, 러시아 10월 혁명에 대한 서술이 있다. 이 기록을 보면 러시아도 한국 독립운동에 영향을 줬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는 ‘사회주의’계열이라는 낙인이 찍혀 한국에서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다.

쿠루바노프 교수는 자신이 쓴 이범진 공사에 관한 책을 소개하면서 “시베리아에서 한국인들이 이범진 공사를 만나러온 기록이 있고, 이범진 공사 장례식 때 모스크바 내 한인공동체와 드에르 한인공동체도 조화를 보냈다. 그만큼 한인이 많이 살았다. 내가 보기에는(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난 뒤에도 한인이 많았다. 한일강제병합 이후 확실하게 러시아 내 한인공동체가 많이 생겼다”라며 “어떻게 독립운동을 안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아무도 아직 찾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쿠루바노프 교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고문서 보관소, 공산당 고문서 보관소에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한 자료와 인물 사료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장기교육 출장으로 연구 인력을 보내 러시아 내 한국 독립운동을 함께 연구하자고 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접근해야

쿠루바노프 교수를 면담하고 나오는 길에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죽산 조봉암은 여전히 독립운동과 건국 유공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약산 김원봉 역시 사회주의 계열에서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버림받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쿠루바노프 교수는 ‘지금의 잣대로 독립운동을 바라보면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1930년대를 연구하면서 보면, 특히 중국 독립운동사를 보면 좌익(공산당)과 우익(국민당)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 배경과 흐름을 보면 그때 김원봉 선생이 좌익이 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왜냐면 1930년대 사회주의 개념은 20세기 중반 스탈린과 20세기 말 고르바초프의 사회주의 개념과 달랐다. 1930년대 사회주의는 학문적 개념이었다. 그때 약산은 중국에 있으면서 사회주의가 아주 멋있게 보였을 것이다. 그 당시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하면 소련이 될 줄 누가 알았고, 북한 같은 사회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나. 그래서 독립운동가를 연구하려면 우선 배경을 살펴야한다. 그때서야 김원봉 선생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다. 미래에서 과거를 평가하면 안 된다. 연구자가 김원봉 선생이 살았던 시대배경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김원봉 선생을 보면 평가가 완전히 다르게 나온다.”

※이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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