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러시아를 가다
5. 러시아 초대 상주공사 이범진과 헤이그 밀사 이위종

대한제국 초대 러시아 상주공사이자 독립운동가 이범진

이범진 초대 러시아 상주공사(사진제공 외교부)

러시아를 지난해 11월 보름 일정으로 다녀왔는데, 글은 아직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심지어 아직도 방문 첫날이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에서 접한 얘기를 다 전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러시아 방문 일정을 복기해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이튿날에 갔다. 첫날 오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내 한국관 개장식에 들른 뒤 오후에 ‘러스소프트’를 방문했다. 저녁엔 권동석 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의 식사 초대로 총영사관저를 방문했다.

식사를 하기 전 총영사가 우리나라 초대 러시아 상주공사(현재 대사)를 아느냐고 물으며 관저 꼭대기에 꾸며놓은 이범진 초대 상주공사 기념실로 안내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정러시아의 수도였기에, 당시 대한제국 공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우리나라 초대 러시아 공사는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분개해 자결한 민영환 공사였지만, 민영환 공사는 프랑스에 머물며 프랑스 공사와 러시아 공사를 겸임했기에 초대 러시아 상주공사는 독립운동가 이범진 선생이다.

이범진 공사의 차남 이위종 지사가 헤이그 밀사 3명 중 1명이며,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이위종 지사의 손녀가 이범진 공사와 이위종 지사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이범진 공사의 외증손녀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범진 공사는 185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1년 1월, 경술국치(1910년)로 국권이 상실되자 일제에 항거하는 뜻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결했다. 그에 앞서 1899년 대한제국의 러시아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 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돼 190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왔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근무했다.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이범진 공사는 귀국해야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고 러시아에 남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가 러시아에 머물 수 있게 러시아 황실이 비공식적으로 지원했으며, 대한제국의 지원은 끊겼다.

그는 자결하면서 모든 재산을 정리해 독립운동자금으로 기부했다. 초대 러시아 상주공사이자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일군 선구자다.

이 공사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지사와 이범윤 지사 등이 연해주에서 항일의병단체 ‘동의회’를 조직(1908년)할 때 1만 루블을 자금으로 제공했고, 한인 동포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한민학교를 설립(1909년)할 때 1000루블 냈다.

총영사관이 이범진 공사 묘역과 초대 공사 관저 발굴

이범진 초대 러시아 상주공사 순국비

이범진 공사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이 러시아와 1990년에 수교하기 전까지 러시아는 소련(소비에트연방)이라는 나라로, 반공이 국시였던 한국에 금기의 나라였기에 교류가 거의 없었다.

한국 외교부는 2002년 한ㆍ러 수교 12주년을 기념해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르골로보 3번지 세베르나야 클라드비쉐(북방 묘지) 8구역에 이 공사의 충절과 독립운동 행적을 기록한 순국비를 세웠다.

이 공사는 1911년 자결 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병원 부속교회에서 장례를 치른 뒤 당시 우스펜스키 묘지 8구역에 묻혔다. 1958년 우스펜스키 묘지가 북방묘지로 이름이 바뀐 후 1975년 연고자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이후 정확한 위치 확인이 불가능해졌으며, 한국 외교부가 우스펜스키 묘지 8구역의 현재 위치를 고증해 순국비를 건립했다. 지금은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이 방문하면 참배하고 가는 게 공식 행사가 됐으니, 총영사가 참 잘한 일이다.

이 공사가 자결한 곳, 그러니까 상주했던 공사관은 현재 공사관이 아니다. 당시 목조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로 변했다.

이 공사가 상주했던 곳은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페스텔랴거리 5번지다. 한국 외교부는 한ㆍ러 수교 12주년을 기념해 옛 공사관 건물에 ‘이 건물에서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이범진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초대 상주공사가 집무했습니다’라는 표지석을 설치했다.

총영사는 이범진 공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건물 일부를 매입해 대한제국 공사 기념관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하지 않다고 했다. 10억 원 규모로 추산하는데, 국가보훈처와 기획재정부를 설득 중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정부 예산 편성에 실패했다. 올해가 한ㆍ러 수교 30주년인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총영사는 말했다.

대한제국 공사 기념관 건립이 총영사의 목표

현재 총영사 관저 5층에는 총영사가 모은 이범진 공사와 이위종 지사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 전시하고 있는 자료들을 대한제국 공사 기념관을 지어 옮기는 게 총영사의 목표다.

총영사는 현재 건물 일부 매입 전 단계에 와있는 상태고, 임시로 현재 총영사 관저 꼭대기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외적으로 개방한 공간은 아니지만, 총영사관을 방문하는 손님들한테는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 손님이 많이 오고, 요즘은 특히 한류 인기를 타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범진 공사를 정작 한국에선 잘 알지 못한다는 게 씁쓸했다. 어쩌면 냉전 탓도 크다. 1990년 한ㆍ러 수교 후 1990년 대 중반부터 이범진 공사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 외교부가 러시아에 대사관과 영사관을 설치하면서 우리 외교의 역사이자 선배 외교관들의 역사를 알기 위해 대사관과 영사관 안에서 이범진 공사 조사 작업을 시작했다. 초대 상주공사관과 묘역 등을 찾아냈다. 물론 여기에 상트페테르부크르대학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과 러시아 정부의 도움이 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도시가 유적지이다보니 건물에 뭐 하나 붙이는 것도 까다롭다. 초대 상주공사 거주 표지석을 붙이는 일, 북부묘지에 순국비를 세우는 일 등이 러시아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한국에 굉장히 호의적이다.

이범진 공사의 차남 이위종 헤이그 밀사

이범진 초대 러시아 상주공사가 집무했던 공사관저 위치에 들어선 현재 건물.

대한제국은 1907년에 개신교 감리교회 지원을 받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ㆍ이상설ㆍ이위종 특사를 비밀리에 파견했다.

고종은 헤이그에서 러시아 니콜라이 2세가 소집하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 을사조약이 대한제국 황제의 뜻에 반해 일본이 강압으로 체결한 것을 폭로하고 파기하려고 했다.

이범진 공사의 차남 이위종 특사는 이준ㆍ이상설 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안 알려져 있는데, 당시 통역으로 따라간 특사다. 헤이그 밀사는 회담장에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 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어로 고종의 밀서를 읽었는데, 밀서를 읽은 이가 바로 이위종 지사다.

1940년대까지는 이위종 지사가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 이후 기록은 없다. 이 또한 우리가 찾고 기록해야할 역사다. 모스크바에 이위종 지사의 손녀가 살고 있는데, 그분도 잘 모른다고 했다.

이위종 지사의 아들이 이 지사와 이범진 공사 관련 러시아 자료를 영사관에 기증했고, 영사관이 국가보훈처에 보내 한글로 다시 정리했다. 그 자료가 지금 총영사 관저 꼭대기에 전시돼있다.

“인천시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시장 교차방문 추진”

권동석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가 이범진 초대 상주공사가 머물렀던 옛 공사관저 위치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이범진 공사 자료 전시실을 둘러본 뒤, 총영사가 준비한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식탁에 내 이름이 적혀 있으니 낯설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했다.

한국과 러시아의 우호관계 증진을 위한 외교관들의 노력들을 엿들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공공문화 외교로 분주하다고 했다. 외교를 외교관만의 몫이 아니라 문화와 접목해 민간까지 참여하게 해 그 폭을 넓혀 상호 이해와 교류를 더욱 증진하는 외교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영사관은 한류 행사를 종종 여는데, 국내 인기 아이돌 그룹이 아니어도 인기가 많다고 했다.

이야기는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로 이어졌다. 인천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이 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인천 광장이 있을 만큼 서로 친밀하다.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러일전쟁 때 인천 앞 바다에서 침몰한 바라야크함의 깃발을 러시아에 장기간 임대 전시한 데서 두 도시의 우정이 싹텄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내 인천광장은 지난해 생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입구 코틀린 섬 크론슈타트(Kronstadt)에 있다. 인천광장의 러시아식 명칭은 ‘인천(Инчон) 스크르베르(Cквер, 도심의 작은 공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인천은 서로 관심이 많다. 지난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 인천시를 방문했고, 인천시는 북한 남포와 함께 3각 협력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총영사가 2020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과 인천시장의 교차방문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영사관을 나오는데 피곤이 쌓인 전권세 부영사의 눈의 퀭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펼치는 각종 사업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내 한국 개관식 준비로 고생이 많았으며, 한ㆍ러 문화부 장관 업무협약 때도 고생이 많았다. 러시아 탐방을 마치고 왔을 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사진과 보도자료까지 챙겨주는 꼼꼼함과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꼭 한 번 다시 오라던 그의 눈이 아직도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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