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러시아를 가다
2. 상트페테르부르크 꺼지지 않는 불꽃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성과 이삭성당.

 

러시아도 4대강이 흐르고
운하도 있지만 ‘치수 목적’

지난해 11월 13일 점심 무렵 인천공항을 출발해 모스크바공항을 경유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니 밤 9시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숙소에 들어갔다. 밤 골목을 돌아다니려 했으나 장시간 비행에 지쳐 바로 뻗었다.

다음날 눈을 뜨니 7시. 한국에서 밤 9시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었지만, 여긴 러시아. 배가 고프고 조식이 궁금하기도 해서 바로 식당엘 갔다. 동지가 한 달이 더 남았다는데도 밖이 어두컴컴하다. 마치 저녁을 먹고 있는 느낌이다. 옆자리에선 폭죽을 터트리며 생일 축하 파티를 한다. 아침부터 대단한 열정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문 숙소의 조식이 제일 맛있었다. 러시아 음식은 전반적으로 짰다. 러시아에선 조지아 음식을 맛있는 음식으로 쳐주는데, 문제는 짜다는 점이다. 그나마 페테르부르크 음식이 덜 짰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어제 페테르부르크공항에서 숙소로 오면서 가이드 선생이 얘기해준 러시아 4대강 중 하나이자 페테르부르크의 젖줄인 네바강으로 나갔다. 과거 해군성이 금빛 첨탑을 뽐내고 있고, 돌아서니 이 도시의 랜드마크 이삭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네바강은 러시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라도가 호수에서 발원한 물이 발트해 핀란드만으로 흘러가는 길이 740km 물줄기다. 4대강 중 볼가강, 볼호프강, 드네프로강에 비해 짧지만 러시아인들이 귀하게 여기는 강이다. 라도가호수는 한국의 강원도가 담길 정도로 크고, 젖줄 역할을 한다.

페테르부르크 시내 곳곳에 운하가 흐른다. 치수 목적이다. 페테르부르크는 신도시로, 발원지인 라도가호수에 폭우가 내리면 네바강이 범람해 홍수 피해가 심했고, 이를 다스리기 위해 운하를 건설했다.

표트르부르크라고 하지 못하고
페테르부르크가 된 사연

페테르부르크는 제정 러시아 표트르(peter) 대제가 18세기에 건설한 유럽의 신도시다. 인구는 약 540만 명으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많다. 1위는 모스크바이고, 2위는 런던이다. 면적은 서울의 약 두 배이고, 18개 구로 구성돼있다. 북위 59도와 동경 30도에 걸쳐있다.

페테르부르크 지명은 표트르 대제 이름에서 따왔다. 표트르 대제가 1703년에 스웨덴과 전쟁을 위해 전진기지로 건설했다가, 1712년 모스크바에서 수도를 이전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명명했다.

도시 이름을 지을 때 표트르 대제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표트르로 하려했으나, 신하들이 살아 있는 왕의 이름을 사용한 전례가 없다며 반대했다. 그래서 표트르대제는 머리를 써서 기독교 성인 중 베드로가 있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지었다. 베드로와 표트르는 같은 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호텔. 이른 아침부터 생일파티가 열렸다.

 

2차 세계대전 종식 일등공신은
소비에트연방 ‘이견 없어’

네바강으로 가는 길에 광장이 보인다. 강가에 서있는 건물은 현재 에르미타쥐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러시아 고궁이고, 그 앞이 레닌그라드 광장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맞선 레닌그라드 전투에서만 100만 명이 희생됐다.

페테르부르크는 1914년 페트로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고, 1917년 10월 레닌이 이끈 러시아 10월 혁명(=볼셰비키혁명) 이후 수도를 모스크바에 내준다. 지명또한 1924년 레닌의 혁명과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레닌그라드로 바뀌었다가 1991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환원됐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로, 표트르 대제가 수도로 정한 후 1917년 볼셰비키혁명 전까지 약 200년간 러시아 수도로서 많은 문화예술 작품과 유산을 간직할 수 있었다. 도시 중심부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어 건물을 허물기는커녕 함부로 고칠 수 도 없다.

레닌그라드 광장은 독일 나치에 맞선 곳이기 전에 볼셰비키혁명의 주된 무대였다. 러시아 민중이 1917년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를 붕괴시키고 공화국을 탄생시켰는데, 10월 볼셰비키혁명은 2월 혁명으로 출범한 입헌민주당(카데트) 임시정부를 무너뜨렸다.

입헌 임시정부가 들어섰지만 고달픈 민중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고, 볼셰비키가 이끄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임시정부에 대항해 봉기했다.

페테르부르크 앞바다 해군기지 섬 크론(감옥 용도로 건설했다가 병참기지화)에서 해군이 시내로 진군했고, 권력은 소비에트로 넘어갔다. 이때 주역은 레닌이 아니라 트로츠키였다. 트로츠키는 크론 섬에서 에르미타쥐궁으로 함포 사격을 가해 볼셰비키 혁명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훗날 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바뀌었을 때 독일 나치에 맞서 전쟁을 치렀다.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을 막아낸 일등공신은 소련(=소비에트연방)이다. 소련이 희생한 인구만 약 25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피해가 컸는데,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 데 소련의 공이 가장 컸다는 데 이견이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러시아와 소련 침공은 모두 실패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얼어 죽고 굶어 죽어 패전했고, 독일 히틀러도 소련을 침공했다가 참패했다.

페테르부르크 시내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추모공원이 있는데, 공원 가운데 담장으로 둘러싼 한가운데 꺼지지 않는 불이 있고 사방 출입구에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추모비 8개는 파리코뮌과 독일 사회주의 혁명,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등을 추모하는 것이고, 가운데 꺼지지 않는 불꽃은 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한국관 개관식.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내
가장 큰 게 한국관

산책을 마치고 숙소와 돌아와 카메라 등 취재장비를 챙겨 버스에 올랐다. 첫 방문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국립도서관. 지난해 11월 14일 오전 한국관 개관식이 열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내 한국관은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이 해외에 29번째 개관하는 도서관이고, 러시아에서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모스크바에 있다.

페테르부르크는 문화예술과 교육 등의 분야에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며 현실 정치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관계 인사를 배출한 도시라, 한국관이 두 번째로 들어섰다.

한국과 러시아는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내 한국관은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와 역사, 정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창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국립도서관은 한국 책 2만5000권 정도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별도로 한국관이 개장했다. 러시아는 한국에 굉장히 우호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국립도서관 안에 전에는 동양관이 있었고 일본이 가장 큰 공간을 차지했는데, 별도의 한국관 개관으로 한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문학의 나라 러시아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 ‘박경리’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박경리 동상.

러시아 대문호와 문학작품은 우리에게도 유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막심고리끼의 ‘어머니’ 등이 유명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의 어떤 작가와 작품을 좋아할까.

티호노바 페테르부르크 도서관 관장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가 유명하고 번역돼있다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는 박경리 선생 동상이 있다.

티호노바 관장은 소설가 한강의 작품도 유명하다고 했다. 최근 가장 많이 찾는 한국 작가는 악기 관련한 책을 쓴 김중혁 작가라고 했다.

러시아 젊은이들이 한국 문학작품과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한국학과는 정원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안에 박경리 동상은 2018년 세워졌다. 2012년 서울 롯데호텔 앞에 러시아 작가 푸시킨 동상이 세워진 것에 답례한 것이란다.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 말라’를 쓴 시인이다.

한류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페테르부르크 총영사관이 지난해 10월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코리아 페스티벌을 열었을 때 러시아인 약 2만5000명이 참여했다. 케이 팝(K-pop) 아이돌이 온 것도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였을 뿐인데 인기가 대단했다.

총영사는 “페테르부르크라는 곳이 한국과 굉장히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라며 “한국에 대한 호감과 한류 인기는 단지 케이 팝을 중심으로 형성돼있는 게 아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반을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한국관 개관식에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한국학과 학생 10여 명이 왔다. 정원이 15명가량이니 거의 다 온 셈이다. 2학년인 로스레아코프 표도르(19) 학생도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한국 문화를 두고 “한국 문화 중에서 ‘우리’라는 의식, 이 문화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아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봤다. 한국 책도 보고 있다. ‘춘향전’ 등 한국 고전 위주로 많이 읽었다”라며 “‘토지’는 아직 읽지 않았다. 하지만 박경리 선생이 어떤 분이고,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박경리 작가의 작품과 세계관을 배운다”라고 덧붙였다.(다음호에 계속) /김갑봉 기자

※이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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