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임동윤 선생의 ‘부평의 지명 이해’ <8> - 산곡2ㆍ3ㆍ4동

도시의 토지구획정리는 시가지 계획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883년 개항과 더불어 인천에는 외국인들의 출입이 많았고, 그에 따라 계획적인 토지이용이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1909년 11월에 당시 경기도 부평군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토지측량이 실시됐다. 일제 강점기 때 실시된 현 부평구 토지구획정리 목적은 공업용지 조성(약 70%)에 있었다.

이후 1930년대 말 부평이 일제의 병참기지로 만들어지면서 토지구획정리가 됐고 대규모 공장들도 들어섰다. 부평(현 부평구) 최초의 공장은 부평 연와(煉瓦)·국산자동차 공장(1937)이었고, 1939년에 조병창(造兵敞)이 조성됐다. 그 이유는 부평은 철도 교통이 좋은 평지이고, 부평동에 인접한 부개·청천동 등은 공업시설 유치에 적지였기 때문이다.

산곡동은 구한말까지 ‘부평’의 중심지였던 계산동과 일제 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부평’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부평동 사이에 있는 지대로 볼 수 있다. 또한 부평동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토지이용과 지명 변동 패턴이 부평동과 거의 동일하다. 산곡동은 고려시대 이후 마장(馬場)으로 이용됐다는 기록이 있고, 일제 강점기에는 백마정(白馬町)으로 불리다가 해방 후 산곡동으로 됐다.

자연발생적으로 발달한 촌락은 산곡1동의 ‘뫼끝말’과 ‘장끝말’이었다. 1918년 지형도를 참고하면 산곡동 일대는 대부분 논과 밭으로 표시돼있기 때문에 그 외의 산곡동은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산자동차 공장은 현 미산초등학교 부지에 있었다. 이 공장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또한 1939년에 현 부평고등학교에 디젤자동차 공장이 조성되면서 부평이 자동차 공장이 입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또한 표와 같이 현 부평동과 산곡동에는 1950년대까지 많은 공장들이 입지해 공업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66년 청천·효성·갈산동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부평의 공업은 부평·산곡동에서 청천·효성·갈산동 중심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현 부평구 일대의 공업 입지 과정은 인구의 흡입 요인으로 작용했고, 그에 따라 전국에서 부평으로 인구이동이 이루어졌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관동조(關東組)는 금호아파트 앞 일대를 말한다. 1941년부터 단계적으로 조병창 확장공사가 이루어졌고 일본인 간또구미(關東組)의 현장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다. 광복이후 미 8군 에스컴이 조병창에 입지하면서 부평1동의 다다구미와 함께 이곳은 집창촌이 형성됐다.


호봉산(琥奉山)은 부평서중학교 뒷산으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50년대에 주변 사람들이 이곳에서 땔감을 가져갔기 때문에 산에 나무가 없어 ‘빡빡산’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1977년 이곳에 팔각정을 세우면서 ‘선포정’이라고 했고 산도 선포산이 됐다. 그러나 선포산보다는 호봉산이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구르지고개, 서산고개는 호봉산을 넘어 가좌동으로 가는 고개다. 구르지고개는 한국전쟁이후 소금이나 생선을 파는 봇짐 장사꾼들이 이곳을 넘어가면서 구르기를 잘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현재는 녹지공간으로 보존이 잘돼있고 주변은 주민들에 의해서 밭이나 주말농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화랑농장(花郞農場)은 산곡3동 370번지 일대를 말한다. <지명유래지 - 부평의 땅 이름>에는 “이곳은 예부터 인가 한 집 없는 첩첩산중인 으슥한 골짜기로 사람의 왕래가 전혀 없어 아무도 모르는 곳이며, 왜정 때는 그 동쪽 옆에 부평조병창이 넓게 자리 잡고 있어 이 근처에는 일반인의 통행을 엄금했으니 부평에 오래 살아온 토박이도 이곳이 어찌 생기었는지 전혀 모르던 곳이기도 하다”라고 쓰여 있다.

화랑농장은 상이용사들의 재활을 돕고자 만든 농장이다. 이곳에 인구가 급증하고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마을을 형성하게 됐고 ‘화랑농장’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노랑다리는 미군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리로 노란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붙여졌고, 가칭 부영공원은 미군이 이주한 후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임동윤 세일고 지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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