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임동윤 선생의 ‘부평의 지명 이해’ <7> - 산곡1동

부평구 구성원은 서로 다른 출발점(고향)에서 현재는 도착점(부평구)만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는 이질적인 집단이 다른 도시 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이질성을 말하는 지명 중 하나가 ‘원적산’이다. 

원적산은 부평구와 서구에 걸쳐있는 산으로 녹지 공간이 적은 부평구에서 아주 귀중한 공간이다. 원적산(元積山·元寂山·圓寂山·怨積山·遠積山·鐵馬山[철마산])의 표기는 다양하다. <지명유래지 - 부평의 땅이름>에는 “이 산은 고려 때 문헌에 기록된 원적산(元積山·元寂山 165m)으로 많은 유적과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부평도호부 산천편에는 ‘元積山’으로, 또한 ‘부 서쪽 15리’에 있다고 기록돼있고, 『여지도서』·『부평부읍지』·『경기읍지』·『부평군읍지』등에도 元積山으로 표기돼있다. 또한『대동지지』에는 ‘圓寂山’으로 표기돼있다.

문헌상에서 怨積山을 찾을 수 없으나 <지명유래지 - 부평의 땅이름>, <옛 부평지역의 땅이름에 관한 조사연구> 등에는 “중종 때 굴포운하를 뚫지 못하여 원(怨)이 쌓여서 怨積山이 되었다”고 한 것은 해석이 잘못된 것 같다. 즉 원통산(怨通山), 원통천(怨通川)과 같은 맥락으로 怨積山으로 오기된 것으로 보인다.

鐵馬山산은 <지명유래지 - 부평의 땅이름>에 “1955년경 외지에서 이사 온 산곡동의 모(某) 인사가 이 산을 뚫어 인천과의 직통도로를 내면 산곡동은 물론 부평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자기 나름대로 ‘鐵馬山’이라고 했다”고 기록돼있다. 광복 이후 부평은 지속적으로 인구 유입이 있었다. 경제발전이 중요했던 시기에 조상들이 남겨준 부평의 지명들은 뒷전으로 밀렸던 것이다.

철마산은 토박이도 아닌 외지인의 개발논리에 의해 지명이 바뀐 사례에 해당한다. 이후 철마산은 약 50여년 동안 사용됐으나, 최근 들어 元積山으로 개칭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직 ‘철마산’을 더 많이 인지하고 있으며 사용하고 있다.

‘뫼끝말’과 ‘장끝말’은 산곡동의 원 마을이다. ‘뫼끝말’은 ‘뫼꼴말’·‘뫼꽃말’·‘뫼꼬지’·‘꽃밭골’ 등으로 불렀다. ‘뫼끝말’은 산곡동 배후에 있는 원적산 줄기 끝에 마을이 형성됐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뫼꼴말’은 여러 문헌 기록으로 보아 ‘뫼끝말’이 변음된 것이 아니고, 원적산 남쪽 골짜기와 북쪽 골짜기 사이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뫼골’이 ‘뫼꼴’로 되었고, 이것이 산곡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뫼꽃말’은 ‘뫼꼴말’이 변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산화촌(山花村)’은 뫼꽃말을 그대로 한자화해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 같다. 1918년 지형도를 참고하면 山花村은 뫼끝말 북쪽 마을로 표기돼있다. ‘뫼꼬지’는 뫼의 곶으로 뫼의 끝인 곶(串) 바깥에 해당한다. 즉 마을은 곶 바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곶밭’이 되었고 이것이 변음돼 꽃밭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꽃밭골’(花田[화전])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작전동에도 ‘화전(花田)’ 지명이 남아 있다. 모두 곶의 바깥이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그리고 인천 해안(경기만 일대)에는 곶과 관련된 지명인 ‘고잔’(곶의 안)이 많이 발견된다.

산곡동의 현 주민들은 ‘뫼끝말’ 같은 지명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산곡1동 원 마을 도로명에 ‘뫼끝마을길’이 붙여져 있다. 주민들 대다수는 ‘뫼끝말’ 지명의 의미와 유래는 모르고 있으며, 산곡동 토박이 조원휘(78)옹은 원적산에 꽃이 많이 피었기 때문에 산화촌(山花村)이 되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장끝말’은 ‘마장(馬場)’의 끝에 마을이 들어섰기 때문에 붙여졌고 ‘장끝고개’는 산곡동에서 가좌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현재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고개는 통행이 불가능하고 표지판만 있다. 일제가 조병창 확장 공사를 하면서 장끝말을 수용해 마을이 사라졌고 이후 현재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 앞은 거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유입 인구가 많아 주민들은 지명의 의미를 모르고 있으며 70대 토박이만 지명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밤재·밤나무골·밤나무고개·밤재뜰은 뫼끝말, 즉 마곡초등학교 남쪽 골짜기를 말하며, 사라진 지명이고 현재는 주택가가 됐다. 원적산 동쪽 줄기에는 아직도 밤나무가 많이 남아 있어 밤나무골이라는 지명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할딱지’는 산곡북초등학교에서 마곡초등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을 말한다. 즉 노인들이 언덕을 오를 때 숨이 차서 할딱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70대 토박이도 모르는 지명이다.

산곡1동과 청천1동 사이의 경계선인 하천이 ‘대교천’의 발원지 개천이다. 이 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산 중턱에 넓은 벌판이 나온다. 이곳을 ‘큰골(大谷[대곡])’이라 하고, 산곡동의 큰골이기 때문에 ‘꽃뫼초 큰골’이라고 붙여진 지명이다.

‘성안골’은 세일고등학교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성(城) 안과 같이 아늑한 곳이기 때문에 성안골이라고 했다. ‘양성골’은 이곳이 햇볕이 잘 드는 곳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는 모두 사라진 지명이고 토박이만 기억하고 있다.

                                                                          /임동윤 세일고등학교 지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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