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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다. 부모님은 우리들의 생일을 따로 챙겨주시지 않았지만,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꼭 챙겨주셨다. 우린 그걸 똑같이 따라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드물게 주시던 용돈을 모았다. 선 물은 주로 스타킹과 담배였다.당시 아빠는 ‘솔’ 담배를 피우셨다. 이후엔 ‘88’로 바뀌었다. 하지만 선물은 뭔가 달라야했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10.0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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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면 엄마는 나와 언니에게 봉숭아물을 들일 건지 물어보셨다. 마당의 봉숭아가 시들어버리면 내년 여름까지 기다려야 하니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이라는, 권유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손톱에는 이미 초여름에 한차례 들인 붉은색이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봉숭아 잎사귀를 뜯어 엄마에게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9.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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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맘 때, 서산에 있는 개심사라는 절에 다녀왔다.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 있을 때였다. ‘몸이 힘들면 정신이 쉰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는, 하루 종일 무작정 걸을 계획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장장 다섯 시간을 걸어 드디어 절 입구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개심사 입구에 네모난 연못이 있었다. 숨을 좀 고를 겸 연못가 의자에 앉자 기가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9.1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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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난 ‘교양의 여왕’이었다. 예의가 바르거나 상식이 풍부해서가 아니다. 대학시절 선택한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전공 필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학점을 ‘교양’ 과목으로 채운 것이다. 문학ㆍ지구과학ㆍ아동심리ㆍ일본문화ㆍ호신술ㆍ에어로빅 등, 종류도 다양한 이 과목들은 내게 앎의 즐거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공으로 무너진 학점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도 공헌했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8.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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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남자친구가 가사에 ‘안개’가 들어간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했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가 목청을 높여 마지막 부분을 불렀다. “비틀거릴 내가 안개꽃은 어디에”라고. 원래 가사는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이다. 장난을 친 것이긴 하지만 그는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8.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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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맘 때였다. 무척이나 뜨거운 날이었다. 한낮을 지나자 소나기가 굵은 빗방울을 쏟아냈다. 하지만 비는 금세 그치고 쨍한 오후 햇살이 다시 도시를 가득 메웠다.나는 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 이마에는 땀이 가득했다. 이 더운 날, 쉬라고 있는 방학에도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가 안쓰러웠다. 맘같아선 ‘오늘 같은 날은
교양
심혜진 기자
2014.08.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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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엄마와 둘이 여행을 떠났다. 점심때가 지나 경주에 도착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기엔 시간이 빠듯해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불국사와 석굴암에 이어 안압지까지 둘러보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경주에서 첫날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웠다. 조금이라도 경주를 느껴보고 싶어 숙소가 있는 경주역까지 걷기로 했다.한참 걷다보니 배가 고팠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8.0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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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50ㆍ사진) 공인노무사 사무소의 이름은 ‘태일’이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전신인 창간독자인 김영미 노무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꾸준히 보지만 특별히 할 말은 없는데 어쩌죠? 지면이 16개고
인터뷰
김영숙 기자
2014.07.2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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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를 찍는 것 같다. 도망가는 것은 모기, 쫓는 것은 나이다. 산 근처에 살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은 좋은데, 밤만 되면 죽자 사자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아주 괴롭다. 안타깝고 화나게도, 나는 모기를 잘 잡지 못한다. 눈앞에서 흔들흔들 춤추듯 도망가는 모기가 도대체 어느 위치에 있는 건지 순간적으로 분간이 잘 안 된다. 아마도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7.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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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에 남는 영화를 봤다. 지난주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한 ‘퍼스트 댄스’(감독 정소희)라는 영화다. 한 커플의 결혼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예비부부에서 부부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름다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찼다.영화의 압권은 유대교 방식으로 진행한 결혼식 장면이었다. 미국의 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후파’라 부르는 작은 천막이 설치됐다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7.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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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쓴 글을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가 있을 때, 글 쓰는 사람은 신이 난다. ‘단 한 명의 관객만 있어도 무대에 오르겠다’는 말은 연극배우한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정보의 쓰나미’ 속에서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선택받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하다. 내게는 열혈독자가 있기 때문이다.지난주 그 열혈독자를 만났다. 대
교양
심혜진 시민기자
2014.07.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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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은 없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바다로 향한 길을 걷고 있었다. 바나나우유와 과자들이 길가에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며칠 나와 있었는지 겉포장은 햇빛에 바래버렸다.그 중 분홍색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새것이었다. 바로 옆에 아이돌 그룹의 사진첩도 있었다. 만드느라 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였을 것이다. 쪽지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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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7.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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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선글라스가 있다. 작년에 햇빛이 강한 지역으로 여행을 가느라 마련한 것이다. 용돈에 비해 꽤 비싼 값을 치렀으니 선글라스가 닳도록 써야하는데 그 여행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사용을 못했다. 몸에 뭔가 달고 다니는 것을 몹시 귀찮아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선글라스는 햇빛이 점점 세지는 요즘 같은 때, 눈부심을 덜어주는 요긴한 물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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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6.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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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아기일 것 같던 조카가 올해 초등학생이 됐다. 언니는 생애 처음으로 학부모가 됐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이번 선거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교육 방향은 물론 복지와 학교 행정, 조카의 학교생활, 그리고 학부모로서 자신의 역할까지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들이 죄다 신도시로 가버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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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6.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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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줄멸이라는, 낯선 이름의 물고기가 있다. 우리나라 해안에서 자라는 물고기다. 보름이나 그믐이 되면 색줄멸은 밀물을 타고 떼 지어 바닷가로 몰려든다. 그리고 저마다 바닥이 움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산란과 수정을 하기 위해서다. 할 일을 마친 색줄멸은 곧장 썰물을 따라 바다로 돌아간다. 자신이 낳은 알을 돌보지 않고 도망가는, 매정한 물고기라 생각하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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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6.0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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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올해 열네 살 된 조카가 있다. 조카의 새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볼 때면 포도가 생각난다. 특히 동그랗고 촉촉한 까만 코에선 달콤한 포도즙이 베어 나올 것 같다. 조카 이름은 리치, 사랑스러운 요크셔테리어 강아지다.리치와 나는 4년 정도 함께 산 적이 있다. 그 무렵 나는 바빴고, 리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늘 리치가 걱정됐다. 잘 챙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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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5.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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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사나운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황급히 배를 타고 근처 작은 섬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뽕 할머니는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헤어진 가족이 그리웠던 할머니는 날마다 용왕님께 기도를 드렸다.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바다 위에 내릴 테니 건너가라’고 말했다. 다음 날 과연 바다가 둘로 갈라지면서 무지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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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5.2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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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재밌어졌다.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도 봤고,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도 봤다. 볼 때마다 큰 소리로 웃는다. 새로 시작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한 회도 빠짐없이 챙겨볼 작정이다.어젯밤에도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하는 ‘코스모스’를 보고 늦게 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원고를 마감해야한다. 하지만 한 글자도 못 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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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5.1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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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그랑블루’(감독 뤽 베송)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나는 영화가 개봉한 지 십여 년이 지난 후 이 영화를 비디오로 봤다. 바다를 사랑한 두 친구가 더 깊이 잠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내용이었다.영화는 경쟁심에 불타던 친구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잠수를 강행한 끝에 목숨을 잃고, 이에 상처받은 주인공 역시 깊은 바다 속으로 한없이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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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5.0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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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21일 째 미역국을 먹고 있다. 같은 음식을 이렇게 오래 먹다니, 대기록이다. 유산 후에도 출산과 똑같이 몸조리를 해야 한다기에 끼니마다 꿋꿋이 국을 데운다. 큰 솥으로 하나를 넘게 먹고도 아직 질리지 않은 걸 보면 먹성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집안에만 있은 지도 21일이 됐다. 아, 17일 째 되던 날엔 짧은 외출을 했다. 이것만 빼면 완벽한 운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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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시민기자
2014.05.01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