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 85주기
자수성가의 상징, 납북 협력에 힘 쓴 사업가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21년 전인 2001년 3월 21일 현대그룹의 정주영(1915~2001년, 향년 85세) 회장이 별세했다.

정주영 회장은 현대자동차와 현대건설 등 현대그룹의 창업자이며, 남북협력사업에 힘쓴 정치인이기도 하다.

쏘 떼을 몰고 방북한 정주영 회장 (사진제공 KTV 국민방송)
쏘 떼을 몰고 방북한 정주영 회장 (사진제공 KTV 국민방송)

정 회장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리 아산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정 회장은 막노동부터 쌀가게 배달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는 1934년 서울에 위치한 쌀가게 복흥상회에 취업 후 1937년경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다 일제의 쌀 배급제 선포로 인해 가게 문을 닫고 만다.

이후 정 회장은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운영했으나 이 역시 1942년 일제의 기업정리령으로 폐업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1943년 일본의 기업정리령에 의해 강제로 폐업당했지만, 그는 자동차의 모든 기능과 사업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정 회장이 여러 사업을 꿈꿀 수 있는 거름이 됐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은 광복을 맞이한다.

정 회장 1946년 서울 중구 초동 106번지 부근 미 군정청으로부터 불하 받은 200평(661.1m²) 땅에서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간판으로 자동차 수리공장을 재개했다.

현대자동차공업사는 이후 ‘현대(現代)’라는 상호의 뿌리가 됐다. 현대를 지향하며 발전된 미래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아울러, 1947년엔 현대토건사를 설립해 건설업으로도 진출했다. 1950년에는 두 회사(자동차공업사, 토건사)를 합병해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한국전쟁 이후 정 회장은 전후복구 사업에 뛰어들어 현대의 몸집을 크게 부풀렸다. 1967년엔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해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정 회장은 1970년대 중동 건설 호황이 왔을 때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해 현대를 국내 대표적인 건설사로 자리 잡게 하고 굴지의 국내 대기업으로 가는 길을 터놓았다.

정 회장은 1987년 일선에서 물러나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된 뒤, 1990년대부터 정치적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정 회장은 대북 협력사업과 관련해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정 회장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1998년 6월 16일 소 500마리와 함께 북측에 방문했다. 정 회장은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소 떼 방북’을 하였으며, 10월 방북 때는 북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기도 했다.

정 회장의 방북은 휴전 이후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건너간 첫 사례였다.

‘소 떼 방북’ 이후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남북 스포츠 교류, 이산가족 교류, 금강산 관광 등이 시작됐다. 이는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초석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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