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삼전도 굴욕을 선사한 청나라와 연합군 결성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370년 전인 1654년 3월 20일, 조선은 청나라군과 연합해 러시아군과 전투를 치렀다. 

‘나선정벌’은 조선 효종(1619~1659, 향년 39세) 시기 조·청 연합군이 만주 흑룡강(헤이룽강)과 송화강(쑹화강) 부근에서 두 차례 러시아군과 치른 전투를 말한다. ‘나선’은 러시아를 한자어로 음역한 것이다. 

나선정벌 원정로 (사진제공 국사편찬위원회)
나선정벌 원정로 (사진제공 국사편찬위원회)

당시 흑룡강과 송화강 부근에선 청나라와 러시아가 국경을 맞닿아 양국의 군사적 충돌이 잦았다. 두 국가가 국경을 마주하게 된 이유엔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또는 시베리아로부터 남하)이 원인이었다. 

원래 러시아는 서쪽(동유럽) 방향으로 세력을 팽창하려 했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폴란드-라투아니아 연방 등 유럽 강대국의 영향으로 이에 실패 후 동아시아로 눈을 돌린다. 

러시아는 그렇게 해양 진출이 가능한 연해주지역으로 남하하던 중,  청나라와 마주하게 되고 양국은 국경이 맞닿게 돼 국경 분쟁과 군사적 충돌이 시작됐다. 

하지만, 청나라는 당시 러시아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아직 명·청 교체기(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왕조가 넘어가던 시절) 상황이라, 명나라 잔당과 부흥파 군대를 강남(장강 이남 지역)에서 완전히 몰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와 국경 분쟁은 청나라에 까다로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러시아군의 총포는 청나라군에게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이로 인해 청나라는 조선에 조총부대 파견을 요청했다. 

조선은 청나라 요구에 따라 조총병 100명을 파견했다. 이에 조·청 연합군이 출정해 송화강 인근에서 러시아군과 전투를 치렀다. 조선 조총부대의 공격에 러시아군은 퇴각한다. 그렇게 조선은 1차 나선정벌에서 승전을 올렸다.

이후 1658년 5월에도 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부근에서 조선 조총군 200명과 러시아군이 격돌했고 러시아군이 피해를 받고 도망가면서 조선군이 다시 승리했다. 이것이 2차 나선정벌이다.

당시 조선에 있어 러시아 출정은 북벌론(북방 오랑캐를 물리치고 병자호란 치욕을 씻어 명나라와 의리를 지키자는 주장)을 외치던 효종에게 있어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삼전도의 굴욕을 선사한 청나라 요구에 지원군을 파병한 소규모 전투였지만, 조선 조총부대의 실전경험과 사격 전술 등을 시험한 무대였고 북벌의 희망을 꿈 꿀 수 있었다. 하지만, 나선정벌 이후, 북벌엔 사실상 진전이 없었다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