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만주 지배권을 잃어버린 날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98년 전인 926년 3월 5일 고구려의 후예이자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린 발해(698~926)가 멸망했다.

발해는 고구려가 나당연합군과 내분에 의해 패망(668)하자, 고구려 출신 장수인 대조영(출생연도미상~719)이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 세력을 규합해 동모산 일대(중국 지린성)에 세운(698) 한민족 고대 국가다.

발해 최전성기 선왕(생물연도미상~830) 즉위 시절 영토 (사진제공 교육부 공식 블로그)
발해 최전성기 선왕(생물연도미상~830) 즉위 시절 영토 (사진제공 교육부 공식 블로그)

당시 발해는 중국 왕조인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海東盛國, 동쪽의 크게 ·융성한 나라)’으로 불릴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발해 스스로 황제국을 칭했다.

발해는 무왕(출생연도미상~737) 때 장문휴(생물연도미상)가 군사를 이끌고 당나라 등주(산둥반도)를 공격하는 등 대국의 위엄을 보여줬다.

그렇게 고구려를 이어 중국 왕조와 당당히 맞서던 발해는 야율아보기(872~926, 향년 54세)가 이끄는 거란(요나라)의 침공(925)을 받고 불과 1년만인 926년 패망한다.

중국 통일 왕조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린 대국답지 않은 최후였다. 그렇게 우리 민족은 발해 멸망으로 만주 지배권을 상실한다.

발해 멸망 원인 중 하나는 거란 침공 이전부터 내부 분열이 극심해 결정적인 패망 원인이 되었다는 게 가장 유력한 정설로 꼽힌다.

백두산 폭발로 인해 멸망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백두산 화선 폭발 시기가 발해 멸망 이후라는 사실이 드러나 이 주장은 힘을 잃었다.

발해는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에 이어 만주 지역을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로 유지했다. 신라는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676)했으나,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분을 수복하지 못했고, 대동강 이남에 그쳤다. 

그러나, 발해 건국으로 고구려 영토인 만주 지역 뿐 아니라 오늘날 러시아 연해주에 해당하는 지역까지 강역을 확장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발해는 수도 상경에서 연해주방향, 육로 일본방향 해로, 신라방향 육로, 압록강을 이용한 남중국 방향 해로, 요동을 경유해 중국과 연결하는 육로 등 크게 다섯 갈래 물류망을 구축하며 번성을 구가했다.

또한, 발해는 고구려 문화와 정신을 계승해 우리 민족의 혼을 만주 땅에 심었다.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라고 했다. 당시 왜국 이나 통일 신라에 보낸 외교문서에서도 국호를 고려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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