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향한 위험천만 비행
북한 사회 염증 느껴 귀순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41년 전인 1983년 2월 25일 북한 공군 조종사 이웅평(1954~2002, 향년 47세) 대위가 MiG-19(미그기)를 타고 남한으로 귀순했다.

이웅평 대위는 북한에서 김책공군대학(함경북도 청진시 위치한 군사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 공군 1비행사단 책임비행사로 복무하던 중, 1983년 전투기를 몰고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이탈주민이다.

당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이웅평 대위의 모습 (사진제공 한국정책방송원)
당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이웅평 대위의 모습 (사진제공 한국정책방송원)

이 대위의 귀순은 ‘라면 봉지’에서 시작했다. 이 대위는 북측 동해 연안에서 남한으로부터 떠밀려온 라면 봉지 하나를 발견한다. 그 라면 봉지에는 상품 안내와 식료품 분석표, 그리고 ‘변질된 제품은 교환 가능하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라면 봉지의 문구들은 이 대위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그 내용들은 이 대위가 북한에서 교육받은 남한 사회 모습과 매우 달랐다.

남한 사회는 작은 라면 하나라도 소비자를 생각했다. 아울러, 북한보다 가난할 줄 알았던 남한이 만드는 생산품들은 북한 생산품들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이 대위는 남한은 북한에서 알려진 ‘인민을 착취하는 가난한 자본 국가’의 이미지와 그 실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대위의 귀순 동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대위는 김일성 유일 체제와 선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이에 남한에 북한 사회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 주된 귀순 동기였다.

이 대위는 귀순 9일 뒤인 1983년 3월 4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북한에선, 당장 남한에서 북한을 침략할 것이라며 주민을 무장시키는 중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6.25 전쟁 역시 남한의 북침으로 발발한 전쟁이라며 사상교육을 하고 있다”라고 북한의 상황을 전했다. 

이어서 이 대위는 “2월 1일(1983년 2월 1일)부터 북한은 준 전시상태를 선포 후 선전 활동을 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 중”이라고 폭로했다.

전투기를 몰고 자유의 땅으로

이 대위는 탈북 당일 훈련을 위해 오전 10시 30분쯤 평안남도 개천 비행장에서 미그기에 탑승하고 이륙 후, 자신이 속한 편대를 이탈해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 대위는 자신을 추격하는 북한기들을 따돌리기 위해 저공비행 했다.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며 비행했고 시속 약 900㎞ 속력으로 남하해 남쪽으로 진입했다.

이에 국군 공군 F-5 전투기들이 이 대위의 미그기 요격에 나섰다. F-5 전투기를 본 이 대위는 귀순 의사를 밝히고, 우리 군의 유도에 따라 수원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이 대위는 미그기를 끌고 온 보상으로 보로금(공산 진영 군수품을 가지고 올 경우 지급하는 포상금) 약 15억을 받았다.

남한 귀순 후 이 대위는 북한 공군에서의 근무경력을 인정받아 1985년 국군 공군 소령으로 특별임관해 북한 관련 분야에서 근무했다. 1987년 중령으로 진급, 1996년 대령으로 진급했으나 2002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인터뷰를 진행 중인 이웅평 대위 (사진제공 KBS 역사저널 그날 유튜브 캡쳐)
인터뷰를 진행 중인 이웅평 대위 (사진제공 KBS 역사저널 그날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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