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끼리 이루어진 왕위 계승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377년 전인 647년 2월 20일 신라 선덕여왕(출생년도 미상~647년, 향년 60대 추정)이 죽자, 진덕여왕(출생년도 미상~654년)이 왕위를 계승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끼리 이루어진 왕위 계승이었다. 선대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은 한국 최초 여왕이었다.

신라 27대 왕이자, 한국 역사 최초 여왕인 선덕여왕 (사진제공 KBS 역사스페셜 유튜브 캡쳐)
신라 27대 왕이자, 한국 역사 최초 여왕인 선덕여왕 (사진제공 KBS 역사스페셜 유튜브 캡쳐)

선덕여왕이 왕위에 올랐던 시절, 신라는 문화적으로 꽃을 피웠다. 선덕여왕 시기의 문화재인 첨성대와 황룡사9층목탑, 분황사 모전석탑 등은 현대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또, 선덕여왕은 군사적 요충지(주요 거점 성)를 상실하긴 했으나, 불교사상 강화 등으로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 체제를 견고히 했다. 이는 김춘추(훗날의 태종 무열왕, 603~651, 향년 58세)와 그 아들인 문무왕(626~681년, 향년 55세)이 신라 삼국통일을 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덕여왕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 지나치게 불교사상에 의존해 현실정치를 외면했다는 지적도 있으며, 당태종 이세민(598~649, 향년 51)과의 사이가 틀어진 점, 군사적으로 무능했던 점 등의 부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아울러,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문무왕으로 이어지는 ‘후대의 성공으로 과대평가된 군주’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선덕여왕의 왕위를 이어받은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이자, 선덕여왕의 유언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진덕여왕은 당나라와 외교 관계를 개선해 본격적인 십자외교체제(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당의 동맹)를 구축했다. 또한, 비담(출생년도 미상~647)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권강화를 위해 집사부(기밀 사무를 관장하던 신라의 관부) 설치, 시위부(왕궁친위대) 개편을 진행했다. 

이에 진덕여왕 역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해 왕권과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진덕여왕 역시 당시 김춘추와 김유신(595~673, 향년 78세)이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진덕여왕의 대부분 업적은 이 둘에서 나온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편,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덕여왕은 외모가 매우 수려했고 키는 7척(171cm)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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