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의 도화선, 2.8 독립선언서가 발표되다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2000만 겨레를 대표해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오늘로부터 105년 전인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 학생들이 일제의 중심부에서 한국의 독립을 외쳤다. 2.8독립선언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일본 유학생들 (사진제공 국가보훈부)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일본 유학생들 (사진제공 국가보훈부)

2.8 독립선언이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낭독한 사건이다. 

2.8 독립선언서 발표에 앞서, 당시 일본 유학생들은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 소식과 이 회의에 대한 국외 한인사회의 반응을 알게 된다.

당시 회의에선 미국 윌슨(1856~1924, 향년 67세) 대통령이 각 민족은 스스로 정치 조직과 운명을 결정하고 다른 국가나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뜻하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다.

이로 인해 일본 유학생들도 현 시국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본 유학생들은 ‘독립선언서’, ‘결의문’, ‘민족대회 소집 청원서’를 제작해 각국 대사관과 공사관, 일제 정부, 언론사에 발송했다.

그리고 1919년 2월 8일 도쿄에 있는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독립청년단’ 명의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일제 경찰은 강제로 모임을 해산을 시켰으며, 독립선언서 발표에 참가한 인원 27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2.8 독립선언의 소식과 독립선언서는 국내로 전해져, 3.1 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한다.

이렇게 2.8 독립선언은 일제강점기 최초로 일어난 순수한 학생운동이자, 3.1 운동 발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한국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사건이자, 큰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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