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단독정부 수립 반대 성명서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오늘로부터 76년 전인 19448년 2월 10일, 백범 김구(1876~1949, 향년 72세) 선생은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란 제목으로 남측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항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광복 1주년 기념 연설 중인 백범 김구 (사진제공 KTV 국민방송 유튜브 갈무리)
광복 1주년 기념 연설 중인 백범 김구 (사진제공 KTV 국민방송 유튜브 갈무리)

당시 시대적 상황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과 북 양측에 단독 정권이 들어설 준비가 진행 중이었고, 한반도 분단은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다.

당시 이승만(1875~1965, 향년 90세)은 정읍 발언(1946년 6월 전북 정읍에서 남측 단독 정부 수립 촉구) 등으로 남측만의 단독 선거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북측의 김일성 역시 공산주의 체제에 맞춰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 김구는 남측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남북협상을 위해 북측을 바링문해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1948년 4월)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한반도는 결국 완전히 분단되고 김구는 1949년 6월 안두희 육군 소위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김구는 한평생 민족과 조국을 위해 살았다. 일제 치하 시기 땐 조국 광복을 위해 살신성인했고 광복 이후엔 통일 한국을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다.

아울러, 김구 선생이 남북 분단에 반대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남북 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김구가 암살로 타계한 1년 후, 6.25 전쟁이 일어나 한반도는 해방 5년 만에 동족상잔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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