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합군, 평양성을 되찾다
육지에서 오랜만에 들린 승전보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431년 전인 1593년 2월 6일, 임진왜란 시기 조선은 명나라와 연합해 당시 왜군이 점령 중이었던 평양성을 탈환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 향년 42세)가 이끌던 왜군은 부산성, 동래성(부산), 충주(탄금대) 등 주요 방어 거점을 차례로 격파하고, 수도 한양을 점령 후 피란길에 오른 선조를 추격해 평양까지 진격한다.

평양성탈환도 (사진제공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평양성탈환도 (사진제공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왜 수군은 이미 상륙해 평양성에 도달한 왜 육군과 상황이 달랐다. 조선 바다는 왜놈들이 넘보지 못하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향년 53세) 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왜 수군은 이순신 장군을 상대로 연전연패 당해 제해권을 내준다. 이로 인해 왜 육군은 제해권을 장악한 조선 수군의 해상 봉쇄로 식량과 무기 등 각종 전쟁 물자 보급로가 막혔다. 

그렇게 고니시가 이끌던 왜군은 군수물자 보급이 끊겨 전선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되자 평양성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1549~1598, 향년 49세)이 이끄는 명나라군 5만명과 조명연합군을 꾸려 평양성 탈환 공세에 나선다. 조선군은 훗날 징비록을 남긴 관서도제찰사 서애 류성룡(1542~1607, 향년 64세)이 지휘를 맡았다.

평양성 탈환 전투는 조명연합군 병력 약 5만5000명, 평양성에서 농성 중이던 왜군 병력 약 1만5000명이 맞붙는 대전투였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조명연합군은 마침내 왜군을 물리치고 평양성을 탈환한다.

왜군은 이 전투에서 병력 약 5000명 이상을 잃었고 조명연합군 역시 이와 비슷한 병력(5000~6000명) 손실을 입었다. 

이렇게 평양성 탈환은 이제까지 후퇴만 계속하던 조선이 전세를 역전하는 주요 계기가 된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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