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손 꼽히는 무장, 척준경
파란만장한 무인의 삶을 살다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916년 전인 1108년 2월 5일, ‘고려제일검’ 척준경(?~1144년)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석성(함흥)을 회복했다.

당시 고려 윤관(1040~1111, 향년 70세)이 이끄는 별무반(여진족 담당 특수 군사조직) 소속 약 17만명은 진격 중 함흥 인근 석성에 도달했다. 그곳엔 여진족이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거세게 농성전을 벌였다.

드라마 도깨비 등장인물 김신(배우 공유)의 모티브가 된 척준경 (사진제공 드라마 도깨비 포스터)
드라마 도깨비 등장인물 김신(배우 공유)의 모티브가 된 척준경 (사진제공 드라마 도깨비 포스터)

윤관은 이에 척준경을 불러 성을 함락시키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척준경은 칼과 방패를 들고 홀로 성벽 위로 올라가 여진족 우두머리 3~4명을 죽이고 석성의 성문을 여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같은 척준경의 활약을 보고 사기가 오른 고려군은 기세를 올려 맹공을 퍼부었고. 고려군은 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다. 

척준경은 고려전기 때 이부상서(인사담당)와 참지정사(중서문하성 3번째 높은 관직), 문하시랑 판병부사(군사담당)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척준경은 어릴 적부터 가난하해 학문을 닦지 못하고 무뢰배들과 교유하다 후에 숙종(1054~1105, 향년 51세) 때부터 무관의 길을 걸었다.

이후 척준경은 윤관을 따라 여진 정벌에 참여해 무수히 많은 공을 세우며 무인으로서 권세를 누렸다. 그 뒤 인종(1109~1146, 향년 36세)의 묵인 아래 이자겸(?~1126) 제거를 위한 거사가 일어나자 그의 일파였던 척준경은 이자겸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인종은 고려 최고 무신이었던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고자 했다. 인종은 척준경과 이자겸 사이를 이간질했고, 척준경은 인종의 설득으로 이자겸 제거에 선봉을 맡아 난을 진압하지만, 반란 가담 죄로 인해 정지상(?~1135, 서경 출신 관료)의 탄핵을 받아 토사구팽 당해 유배 길에 오른다. 

그후 인종이 그간 전투 공로를 인정해 복권시켰으나, 얼마 후 사망해 파란만장한 무인의 삶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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