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망성쇠의 역사, 영원한 왕조는 없다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88년 전인 936년 1월 13일, 당나라를 끌어 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해 천년사직을 자랑하던 신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모든 제국은 내부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역사 격언처럼 신라 역시 그랬다. 이미 나라는 망조로 가는 길을 스스로 걷고 있었다. 왕족과 귀족들은 향락과 사치에 빠져 국정운영을 소홀히 했다. 자연스레 국가재정이 바닥나 강압적인 수취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기 시작했다.

경주 포석정(귀족들이 연회를 즐기던 곳),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죽인 곳 (사진제공 경주문화관광)
경주 포석정(귀족들이 연회를 즐기던 곳),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죽인 곳 (사진제공 경주문화관광)

아울러 36대 혜공왕(758~ 780) 즉위 이후부터 잦은 왕권쟁탈과 국사태만이 이어졌다. 신라는 37대 선덕왕(?~785) 즉위 이후 100년간 왕위가 10번 이상 바뀔 정도로 혼돈의 시기를 맞이하며 왕조의 막이 내려가고 있었다.

후백제를 이끌던 견훤(867~936)은 경주 포석정에서 신라 55대 왕인 경애왕(?~927)을 죽이고 경순왕(?~979)을 즉위시킨다. 신라와 고려의 우호관계 형성을 견제하는 동시에 백제 후손으로서 신라에 대한 복수였다.

하지만 경순왕 역시 친고려정책을 펼쳤다. 경순왕은 견훤의 보호국이 되느니 왕건(877~943)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결국 경순왕은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북방의 패자 고구려와 싸우고 기벌포와 매소성에서 당나라를 물리친 신라답지 않은 최후였다.

고려에 투항한 경순왕은 편한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마의태자(?~?)는 망국을 슬퍼하며 평생을 속세와 등지고 살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