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언의 100년 전 빵 이야기 ①

인천투데이=김다언 작가|1924년 신문기사에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을 제목으로 뽑아, 어린아이가 굶주리고 있는 집안의 가장이 놋쇠대야 하나를 훔쳐 전당포에 맡긴 돈으로 쌀을 사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체포됐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 내용이다.

1924년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라는 제목을 뽑은 기사 갈무리.
1924년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라는 제목을 뽑은 기사 갈무리.

기사 제목으로 보아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쳤던 장발장 이야기를 당시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고 빵 역시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음식이었다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이자 상징적 인물인 장발장 이야기는 1914년 최남선에 의해 줄거리를 요약한 번역소설 ‘너 참 불쌍타’로 일찍이 소개됐으나 일반의 관심을 끌었던 시기는 1918년 매일신보에 ‘애사(哀史)’라는 제목의 연재소설로 장기 연재됐던 때일 것이다.

1918년 매일신보에 실린 연재소설 '애사' 예고 기사 갈무리.
1918년 매일신보에 실린 연재소설 '애사' 예고 기사 갈무리.

연재소설 ‘애사’에서 주인공은 장팔잔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사용했고 빵은 면포(麵麭)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등 근대 개화기의 표현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에는 낯선 표현이 많다.

1917년 신문에 연재됐던 이광수의 ‘무정’에도 빵이 등장하는데, 기차에서 먹은 도시락의 샌드위치 식빵을 처음 보고 구멍이 숭숭 뚫린 떡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있다. 마치 커피가 ‘가배’차, 코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소개됐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보면 맞겠다.

당시 신문 발행부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연재소설에 빵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장발장 이야기가 실린 사실로 미뤄 1910년대 후반에는 빵이라는 서양의 음식은 낯설지 않았고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던 상황으로 여겨진다.

다시 처음의 놋쇠대야를 훔친 이야기로 돌아가면 가장은 놋쇠대야로 1원 20전을 받아 나무 10전, 쌀 60전, 석유 5전, 소금 10전의 물건을 구입해서 처자식을 먹였다고 한다.

나무는 땔감, 석유는 전깃불 대신 호롱불을 밝히려고, 소금은 밥에 반찬으로 먹기 위해 샀던 것으로 보이니 집안의 곤궁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였던 가슴 아픈 상황이라서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압축 설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100년 전의 세계문학 전집 가격은 비쌌는데 통상 ‘엔본’이라고 말하는 한 권의 가격이 1엔(일제강점기 1엔은 1원)인 책을 지칭했다.

일가족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땔감까지 구입한 돈을 더해도 1원에 못 미치는 상황이니 당시 1원의 가치가 얼마나 됐는지 비교할 수 있고, 우리는 당시 신문의 연재소설이 궁핍했던 시절의 독서욕과 읽거리 충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 김다언 작가는 치과의사이자 ‘꿈베이커리’ 이사이다. 저서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 ‘박인환, 미스터 모의 생과 사’ ‘박인환, 나의 생애에 흐르는 시간들’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