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언의 100년 전 빵이야기 ②

인천투데이=김다언 작가|빵을 처음 접한 조선인은 청나라 사신단, 일본 통신사절단, 러시아 접경지 주민 중 누군가일 가능성이 크다. 특별한 신분 때문에 해외 문물을 접한 개인을 제외하고 대규모 평민이 서구 식문화인 빵을 접한 시기는 1800년대 중후반이다.

김옐레나의 ‘1864∼1937년간 연해주 한인의 인구 변동과 경제활동’을 보면, 1864년부터 러시아 국립역사기록보관소의 공식기록이 남아있어 1882년에 이르면 연해주 한인 이주민이 일만 명을 넘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생활문화가 몸에 익은 연해주 정착민들은 본국 접경지역과의 무역이 필요했다. 따라서 조선의 두만강 유역 주민들은 러시아 문물이 익숙할 일이지만 교통이 원활하지 못한 탓으로 북방 접경지 문화가 조선 전반으로 알려지는 일은 철도가 놓인 이후에나 가능할 일이었다.

다시 빵으로 돌아와 1800년대 중반부터 정착한 연해주 조선인의 식문화에 ‘빵’이 있었다는 공식적인 기록이 필요하다.

러시아 빵행상 이야기가 담긴 시대일보 1924년 9월 13일자 갈무리.
러시아 빵행상 이야기가 담긴 시대일보 1924년 9월 13일자 갈무리.

1894~1897년 네 차례의 여행 후에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낸 지리학자 버드 비숍의 기록은 매우 세밀하고 넓은 지역에 이른다.

그녀는 1894년 2월 부산에서 여정을 시작해 청일전쟁이 임박한 제물포를 거쳐 만주,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광범위한 여행기록에 조선인 마을을 빼놓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 빵이 등장한다.

조선인 길잡이를 앞세우고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한인마을을 돌아보기 시작해 두만강을 건너 조선으로 가기 전 러시아 국경초소에 도착해 러시아 상사와 만남의 기록이 있다.

우리는 그 막사의 식량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ㅡ 검은 빵, 보리로 만든 오트밀 죽, 그리고 약간의 설탕을 곁들인 차, 검은 빵으로 만들어진 약간 발효된 빵, 건포도 설탕, 쉬넵주, 그리고 40도짜리 보드카.

여기에서 말하는 검은 빵은 호밀로 만든 갈색의 딱딱한 흑빵을 뜻한다. 흑빵은 러시아, 독일 등지의 전통 빵으로 거칠고 딱딱해서 통상 따뜻한 차나 수프에 곁들여 먹는다. 버드 비숍의 기록은 국경수비대 막사에서의 일이라 연해주 조선인의 삶은 아니라는 지적 또한 가능하다.

1927년 6월 19일 부산을 기점으로 조선인 부부로는 최초의 세계일주를 했던 나혜석의 여행기록은 이를 보완한다. 나혜석은 동년 7월 러시아 영토인 하얼빈에 도착 여러 날을 지내며 조선인 회장 집에서 식사도 하고 함께 송화강 등 관광을 했던 경험을 글로 남겼다.

하얼빈 일반가정은 9시쯤 일어나 빵 한 조각과 차 한잔으로 조반을 먹고, 12시부터 2시 사이에 대개는 소고기로 점심을 먹는다.

연해주 지역 조선인들이 나혜석의 기록대로 점심에 항상 소고기를 먹었다고 생각되지 않으나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한반도 주민의 삶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해주 조선인들의 삶도 점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삶을 못마땅하게 여긴 러시아의 입장은 이후 ‘고려인’의 비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압박에도 조선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애환은 간접적으로나마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서 느낄 수 있다.

“아하, 무사히 건넛슬가,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업시 건너슬가?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거문 순사가
왓다 갓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너슬가?“

소곰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노코
밤 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네 젓던 손도 맥이 풀녀져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깁허 가는데.

- ‘국경의 밤’(1925년) 부분

1920년대 들어서면 식민지 경성에서 러시아빵이 유행하게 되는데, 1902년생 김동진은 하바로브스크에서 중학교를 졸업 극동대학을 다니다가 가족은 블라디보스톡에 남겨두고 1923년 경성에 와서 러시아빵을 제조 판매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때나마 러시아빵 인기가 대단했던지 1924년 9월 13일 시대일보 기사를 보면 경성에 거주 러시아빵 행상 심씨 부부가 고양군에서 강도를 만나 돈을 뺐겼으나 범인을 체포했다는 내용이 있다.

시대적으로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고 냉장유통이 어려웠던 관계로 방물장수처럼 빵 역시 비슷한 판매방식이었던 모양이다.

* 김다언 작가는 치과의사이자 ‘꿈베이커리’ 이사이다. 저서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 ‘박인환, 미스터 모의 생과 사’ ‘박인환, 나의 생애에 흐르는 시간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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