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언론 지원사업| 서해 최북단 백령공항이 가져올 미래⑤
중국 본토와 직선거리 불과 4km 타이완 진먼섬 서해5도 닮아
포탄 47만발 쏟아진 화약고, 지금은 평화관광·양안교류 교두보
진먼공항 연간 이용객 250만여명 A380 대형기종 이착륙 가능
숱한 양안관계 갈등에도 변치 않는 민간교류...남북관계 시사점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대한민국 섬 주민들은 오랜 세월 국경의 변방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그동안 육지와 달리 이동권에 제약을 받으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살아왔다.

연륙교가 없는 섬의 경우 대부분 육지를 오갈 때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천 백령도를 비롯해 울릉도·흑산도 등 국경 끝단의 섬을 오가는 여객선들은 기상악화로 인해 배가 뜨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더구나 백령면과 대청면의 경우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인접한 최북단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십년간 야간운항이 금지되는 안보규제까지 더해졌다. 남북분단 현실에서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3도 주민의 기본권 제약은 당연한 일로 치부됐다.

그러던 중 백령도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백령공항 건설사업이 지난 2022년 12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며 본궤도에 돌입했다. 이르면 2027년 개항이 목표다.

백령공항은 섬 주민의 이동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관광수요 창출과 향후 서해평화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이다. 게다가 인천시는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로서 백령공항 운영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백령공항에 대한 다양한 청사진이 현실화 되면 어떤 모습이며, 선결할 과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총 6편에 걸쳐 살펴본다.<기자말>

진먼섬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 개요.(사진출처 진먼여행 공식홈페이지)
진먼섬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 개요.(사진출처 진먼여행 공식홈페이지)

타이완 진먼다오, 한국 백령도와 역사·지리적 특성 같아

타이완 본토와 약 210km 떨어진 타이완의 대 중국 최접경지역 진먼섬(금문도, 金門島)은 행정구역상 진먼현이다. 중국 샤먼(廈門)과 거리는 불과 8km라 한국의 백령도와 지리적 입지가 비슷한 곳이다. 소진먼도(小金門島)는 샤먼과 더욱 가까워 직선거리가 겨우 4.4km다.

진먼섬은 중국 국민당을 이끌던 장제스(蔣介石)가 1949년 제2차 국공내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최후의 방어선으로 설정한 곳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1949.10.01.) 직후인 1949년 10월 25~27일간 벌어진 구닝터우(고령두, 古寧頭) 전투에서 중국 공산당은 진먼섬에 인민해방군 1만여명을 투입했으나 패했고, 진먼섬은 중화민국(타이완) 영토가 됐다.

1949년 진먼섬에서 발발한 구닝터우 전투 역사기념관.
1949년 진먼섬에서 발발한 구닝터우 전투 역사기념관.

이후에도 진먼섬을 두고 중국과 타이완 간 산발적인 교전이 벌어졌다. 1954년과 1958년 각각 1차·2차 타이완해협 위기로 충돌했다. 1958년 8월 23일부터 10월 5일까지 중국 인민해방군은 무려 포탄 47만여발을 퍼부으며 진먼포격전이 발발하게 된다.

타이완은 진먼섬을 지켜냈지만, 포격전은 1978년까지 20년간이나 지속됐다. 이로 인해 진먼섬은 타이완 중화민국 정부의 최전방 지역으로 섬 전체가 요새화됐다. 1949년 시작한 계엄령은 1992년까지 이어지고 군정이 이뤄졌다.

진먼섬 해변 상륙방지 장애물 너머로 중국 샤먼의 마천루가 보인다.
진먼섬 해변 상륙방지 장애물 너머로 중국 샤먼의 마천루가 보인다.

1987년부터 이어진 양안 민간교류 막은 건 코로나19뿐

이후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우편·통신, 무역, 상호왕래 이 세 가지를 통하게 하자는 삼통정책에 따라 진먼섬에 계엄령이 해제되고, 진먼은 양안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1987년 대륙에 친척·가족을 만나러 가는 타이완 사람들의 교류를 허용하면서 생긴 변화다. 한반도 남북관계로 치면 이산가족 왕래를 허용한 셈이다.

이후 중국과 타이완 정부는 수차례협의를 거쳐 2000년 12월 진먼섬과 마쭈열도 등 중국대륙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중국 통행을 하가했다. 이를 소삼통(小三通)이라 부른다. 이후 2008년부터는 양안 사이에 항공과 해운, 우편을 모두 개방하는 대삼통(大三通)이 열렸다.

중국 샤먼 우통여객부두에서 타이완 진먼섬 수이터우 부두로 향하는 여객선에 승객들이 타고 있다.
중국 샤먼 우통여객부두에서 타이완 진먼섬 수이터우 부두로 향하는 여객선에 승객들이 타고 있다.

이후 진먼섬 수이터우(水頭) 여객부두에선 중국 샤먼 우통(五通) 여객부두와 불과 30분이면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 운항하고 있다. 2001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입국이 전면 제한된 2021년 2월까지 이 항로를 이용한 누적인원은 2100만명을 넘었다. 연간 여객 수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19년에만 182만여명이 오갔다.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항로는 올해 1월 3년여 만에 다시 열렸다. 국제정세에 따라 양안관계가 급변하며 여러 정치적 갈등양상을 보였다 해도 민간교류를 막은 건 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킨 코로나19뿐이었다. 이를 보면 한반도 남북관계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진먼섬 해변과 이어진 자이산 갱도.
진먼섬 해변과 이어진 자이산 갱도.

포탄이 빗발치던 양안 분쟁지역 평화관광 명소로

진먼섬은 이제 역사·문화·전쟁·평화를 콘텐츠로 삼는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특히 진먼포격전 당시 군인들을 위해 담근 금문고량주와 대륙에서 날아온 포탄 파편으로 만든 식칼은 전쟁이 남긴 특산품이다.

요새화 전략에 따라 섬에 남은 갱도와 참호, 포진지는 현재 모두 관광자원으로 거듭났고, 곳곳엔 전쟁기념관과 평화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대표곡 월량대표아적심으로 유명한 가수 등려군이 묵은 진먼섬 영빈관.
대표곡 월량대표아적심으로 유명한 가수 등려군이 묵은 진먼섬 영빈관.

츠후(慈湖) 해안에서 눈앞의 샤먼을 향해 포를 겨냥하는 전차와 해변상륙을 막기 위해 설치된 장애물들이 자연경관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군사방어용으로 만든 전체 길이 500m에 달하는 자이산(翟山) 갱도는 바다로 이어지는 수로와 어우러져 자연동굴에 버금가는 경관을 보여준다.

우리에겐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 등의 노래로 유명한 가수 덩리쥔(등려군, 鄧麗君)은 진먼을 찾은 대표적인 유명인사다. 그의 아버지는 국민혁명군 군인이었으며, 국공내전 이후 타이완으로 넘어왔다. 이 때문에 덩리쥔은 수차례 진먼에서 위문공연을 했고, 당시 그가 묵은 숙소는 전시관이 됐다.

진먼공항 입구.
진먼공항 입구.

공군기지였던 진먼공항, 연간 250만명 이용 타이완 본토 매일 연결

이처럼 관광명소가 된 진먼섬을 타이완 본토와 이어주는 교통수단은 주로 항공편이다. 상이(Shangyi)공항이라고도 불리는 진먼공항에선 현재 항공사 2개(만다린항공·유니항공)가 타이베이·타이중·가오슝·타이난 등을 이어주는 항공편을 매일 운영하고 있다.

진먼공항은 활주로가 1개로 길이 3000m 폭 45m 규모로 A380 기종 같은 초대형 항공기도 이착륙할 수 있다. 김포공항 활주로 2개(3600m×45m, 3200m×60m) 규격과 비교해도 진먼공항 활주로는 꽤나 큰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타이완 교통통신부 자료를 보면, 진먼공항은 지난해 항공편 이착륙 횟수만 2만1093회, 여객수 156만4362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엔 이착륙 3만5008회, 여객수 254만3492명이었다.

진먼공항 활주로.
진먼공항 활주로.

진먼공항은 본래 상이공군기지였다. 그러나 진먼과 타이완 본토 간 항공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방부는 상이공항을 군민합동공항으로 전환했다. 이후 최초의 민간 항공노선은 1976년 9월에 공식 운항했다.

1989년 1월 타이완 민용항공국은 진먼공항을 정식으로 인수했고, 이후 진먼공항은 공식적으로 민간항공 전용 공항으로 거듭났다. 2008년 대삼통 정책이 시행된 후 양안교류 측면에서 진먼공항의 역할은 더욱 커졌고, 항공사들은 추가 항공편을 늘리기 시작했다. 진먼공항에서 타이완 본토로 가는 항공편 운항시간은 1시간정도 걸린다.

※ 이 기획기사는 2023년 인천광역시 지역언론 지원사업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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