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필자는 지난 5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월 17일)을 맞아 성소수자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국제적으로 확립된 원칙이라는 글을 썼다.

성소수자가 직면한 혐오와 차별, 폭력을 인식하고,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존재임을 확인하며 성소수자와 친화적 시민들의 연대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인천시가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행정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6월 12일 인천시는 ‘퀴어 등 의견이 분분한 소재 제외’라는 ‘2023년 인천여성영화제사업’의 실행계획서 검토의견서를 첨부한 실행계획서 수정 요구 공문을 (사)인천여성회(이하 여성회)에 보냈다.

‘2023년 인천여성영화제 사업’은 5월 인천시 보조금심의위원회 심사로 최종 선정됐다. 그러나 5월 말 담당부서인 여성정책과는 영화제 추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퀴어 영화의 상영을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퀴어영화 상영 제외 요구는 사전 검열, 소수자 권리 침해

19회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이 '20023년 인천여성영화제 사전검열 갑질과 차별행정 자행하는 인천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19회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이 '20023년 인천여성영화제 사전검열 갑질과 차별행정 자행하는 인천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천시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여성회의 의견에 상영작을 검토해 보겠다며 실행계획서에 상영작 리스트를 함께 제출하라고 했다. 그 검토 결과가 바로 퀴어영화 상영 제외였다. 이는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사전 검열이며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명백한 차별행정이다.

이에 여성회는 인천시의 요구대로 상영작 리스트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며 애초 계획한 상영작 그대로 영화제를 치를 것이고, 인천시의 갑질과 차별행정에 대해 절대 묵과하지 않고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인천시의 차별행정 규탄에 연명한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단체 233개와 19회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회가 함께 영화제 사전 검열과 차별 행정을 자행한 인천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문에 인천여성영화제 상영작 ‘사전검열’은 차별행위이자 갑질 행정임을 천명하고 인천시장은 여성정책과장을 징계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인천시는 “이번 영화제의 퀴어 주제 상영작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견해차가 크게 상반되는 만큼 많은 시민이 공감할 수 있게 수정·보완을 요청했던 것”이라며 “영화제 지원금으로 공적 재원이 쓰이는 만큼, 상영작 리스트를 비롯한 영화제 세부 내용을 검토할 수 있다. 상영작 선정에 개입한 것은 아니며 검열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라고 했다.

또한 “동성애를 유행처럼 받아들여 잘못된 성 인식이 생길 수 있어 교육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갈등의 소지가 있다”라며 “동성애와 탈동성애 장르별로 1편씩 상영하자”라는 제안은 다수와 소수의 상호 존중이 이뤄지게 중재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사전검열이란 '언론, 출판, 보도, 연극, 영화, 우편물 따위의 내용을 사전에 심사해 그 발표를 통제하는 일‘로 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상영작 리스트를 검토하고 퀴어 소재 영화 제외의 의견을 낸 것은 사전검열이 분명하며 인천여성영화제의 자율성을 훼손한 것이다.

또한, 동성애를 보는 시민 의견이 달라 자칫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어 배제를 요구했다는 말 등은 같은 시민인 성소수자에 대한 명백한 혐오 발언이며 인권침해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당한 다양한 여성들의 인권과 존엄, 평등을 위해 애써야 할 여성정책과가 일부 시민은 대놓고 제외하며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인천시 명백한 차별 행위, 국가인권위 진정 제기할 것

인천여성영화제 관계자들이 7일 인천시청 본관에서 인천시의 사전 검열 등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
인천여성영화제 관계자들이 7일 인천시청 본관에서 인천시의 사전 검열 등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

인천시가 공문으로 ’퀴어 등 의견이 분분한 소재 제외‘라고 명시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의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중 ‘성적지향’에 대한 명백한 차별행위이다. 인천여성회는 이번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접수’하고 인천시의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를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인천시는 상영작 수정 없이는 예산 승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예산을 틀어쥐고 시민단체를 향해 행하는 명백한 갑질로 사업 주관단체인 (사)인천여성회를 동등한 사업수행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그동안 상호협력적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민관거버넌스의 구조를 무너트린 권위적인 갑질행정이다.

그동안 거버넌스로 인권을 비롯해 환경·여성·사회권 등 시민단체와 추진했던 사업과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참여로 만들던 성과가 지워지고 있다. 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인권과 다양성, 그것의 기본이 되는 민주주의와 참여의 정신을 훼손할 것이다.

인천여성영화제는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특징으로 문화적 소외를 겪는 인천 여성들이 모여, 함께 여성 영화를 보고 여성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시작됐다.

다른 시선으로 만든 영화로 지금껏 보지 못한 세상과 만나는 영화축제로 세대, 장애, 성정체성, 인종, 체제, 계급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이 담긴 영화를 상영했다.

그동안 18회 영화제를 진행하며 다양성영화 531편이 관객을 만났으며, 관객과의 대화(GV)을 하며 구조적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다양한 여성 의제에 대해 용기를 내 말하고 서로 연대할 수 있었다.

또한, 강연과 포럼으로 사회적 약자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고 지역의 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해 왔다.

‘환란의 시대:무너뜨리고 연결하기’는 19회 인천여성영화제의 슬로건이다. 슬로건 토론을 하며 시대를 규정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치열한 고민을 했는데, 차별과 억압, 혐오로 가득한 환란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제는 애초 계획한 대로 치러낼 것이다.

단체 233개의 연명과 십시일반 후원한 시민들의 연대의 마음으로 19회 인천여성영화제는 이 환란의 시대에 차별과 혐오, 반인권적 행정을 무너뜨리고 더욱더 단단하게 서로를 연결할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