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통권 120호 발간 기념 학술심포지엄
장석준, ‘자본주의 넘어 정의로운 전환’ 발표
“자본주의에 패배한 모든 사람과 함께 가야”

인천투데이=김현철 기자│“승리한 자본주의 역사에서 배제된 패배한 모든 사람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야 한다”

8일 새얼문화재단이 주최하고 <황해문화>가 주관한 ‘황해문화 120호 발간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장석준 ‘출판&연구공동체 신현재’ 기획위원은 예고된 다중 재난 극복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다중재난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등 세션 2개로 나눠 진행했다. 장 기획위원은 는 두 번째 세션의 두 번째 발표자로 참여했다.

아래는 8일 장 기획위원의 심포지엄 발표를 정리한 글이다. <기자 말>

장석준 기획위원이 황해문화 120통권 발간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장석준 기획위원이 황해문화 120통권 발간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등치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시장경제’와 동의어로 사용한다. 민간 기업들이 시장에서 벌이는 영리 활동이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체제를 곧 자본주의로 여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지적을 했다. 많은 시민들은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는 일단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가장 선구적으로 얘기한 사람이 프랑스의 페르낭 브로델이다.

페르낭 브로델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명확히 구별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시장경제에서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위에 군림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빨아들여 이를 지배하려는 독점영역으로 바라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사회과학자’라고 비판한 막스 베버도 자국의 자본이 확보한 경쟁 우위나, 독점으로 국가 간 체계에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국민국가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자본 축적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힘이라고 주창했다.

정리하자면, 자본주의는 경쟁 자본에 대한 차등적 축적으로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의 다른 모든 잠재·현재적인   자원과  요소를 동원해 전유하고 소모하는 체제이다.

다수 민간 기업의 존재나 시장 경제 작동을 전제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제조건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돌출하는 '자본-국가 결합체'가 사회 다른 부분을 지배하는 질서를 가리킨다.

따라서 탈자본주의는 결코 시장경제와 명령경제 중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일 수 없으며, 20세기 말 들어 문명의 유일 표준형이 된 '자본주의-대의민주주의 조합'이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 권력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시대의 과제이다.

이 요청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다중재난을 포함한 모든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 탈자본주의는 모두 패배했다”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탈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를 넘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에 남아있는 가능성을 다 소진하고 자본주의의 성과를 이어받아 자본주의가 양육한 주체들이 세상을 인수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성취는 상속하며, 그 한계를 극복해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시대를 넘어 ‘새 시대’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19~20세기 존속했던 자본주의에 저항했던 세력의 역사관이다. 이 역사관은 실패했다. 이것을 전제로 다시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역사 진보를 믿었던 19세기의 어떠한 사상가도 산업 활동의 부산물이 지구 대기를 변화시킬 줄 몰랐다. 예찬한 기술 발전에 따른 편리함과 안락함은 대부분 화석 연료를 사용한 결과였다.

그 부산물인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많아질수록 ‘생산력’보다 ‘파괴력’이라고 불러야 할 힘으로 반전한다. 즉 생산력은 파괴력을 수반한다. 새로운 사회가 자본주의의 유산을 상속한다면 당연히 파괴력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자본주의 등장 이후 가장 결정적인 위험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패배한 상황에서 넘어선다라는 말을 재정의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일은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자본가들이 극한까지 밀어붙인 기술 진보의 성과를 노동계급이 물려받아 물질적 번영과 자유시간을 평등하게 누린다’고 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역사를 거부하는 것”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말의 가장 강력한 그거가 됐던 역사관이 붕괴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말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역사관은 파시즘과 벌이던 투쟁의 가장 절망적 순간에 저술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저술한 논문인데, 벤야민이 마지막 자살을 결단하기 직전에 썼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20세기 초 위기가 끝나고 한참 후인 20세기 후반이 돼서 공개됐다.

이 글에서 벤야민은 ‘역사의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해 계속 역사의 천사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게 만드는 폭풍’으로 그린다.

앞 부분은 최근 몇 달 동안 벌어진 AI 개발 광풍을, 뒤 부분은 기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 글에서 ‘우리가 패배를 벗어나는 일, 즉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일은 이 역사를 겨부하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른 역사를 선포하자는 것이다.

벤야민의 역사관을 풀이하면, ‘현재가 우리의 미래와 연결할 유일한 개선이 아니라 우리가 선포하는 역사가 미래와 연결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주하는 현재와 다른 현재를 선포하자’는 것이다.

황해문화 통권 120호 발간기념 학술심포지엄. 

“패배한 모든 이들과 함께해야”

우리가 역사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선 이 역사에서 배제된 패배자로 지워진 모든 순간과 주체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가 마주한 현재와 다른 현재를 구성할자료는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순간’ 이라는 표현을 썻는데 지금 ‘순간’ 안에 자본주의 역사 내내 자본주의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자본주의가 묻으려고 했던 그 ‘시도’를 되살려 현재를 재구성해야 한다.

명확히 결론은 내자면 자본주의를 넘어설 주체는 자유로운 연합이어야 한다. 또 그 연합 주체는 대등해야 한다.

이 개념은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아 그람시가 ‘역사적 블록’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저항 주체에서 편집한 것과 연관한 실천을 종합한 블록이 필요하다.

탈자본주의 정치가 작동할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생활세계, 국민국가, 지구질서이다. 이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생활세계 측면에서 보면 6·8혁명 이후 세력, 이데올로기로서 페미니즘, 생태주의 등 시민사회 내 자주적 결사체가 존재하고 있고, 이들이 대안사회의 세포가 돼야한다.

국민국가 부분에선 20세기 말 중단한 급진적 개혁주의 정치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

지구질서 측면에선 새로운 국제주의 운동이 대두해야 한다. 10월 혁명 여파로 돌출한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연대 같은 진정한 국제주의적 주체가 등장해야 한다.

세 층위의 여러 실천이 자율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다른 층위와 자율적으로 연계하며 상호 연관을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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