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52. 중구 대전집
1970년대부터 신포동 ‘명동’급 인기 누리던 주역
스지탕 맛 비결, 매일 ‘7시간’ 끓인 부지런함
‘신포 원도심 먹거리 특화거리’로 명소화 해야

인천투데이=이재희 기자│인천 중구에 온갖 중심 시설이 몰려있어 명동과도 비할 수 없는 도시 중심부로서 인기를 누렸던 시절, 대전집은 맛과 양, 가격의 균형으로 인천 애주가들이 문전성시를 이룬 곳이자 넥타이 부대가 많이 찾는 가게였다.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 오정희 여사는 홀로 인천에 올라와 1972년 중구 신포동에 ‘대전집’을 열었다. 현재 아들인 최재성 사장(58세)이 그 뒤를 이어 2대째 영업중이다. 올해로 개업한지 51년차다.

인천 중구 신포동 '대전집'.
인천 중구 신포동 '대전집'.

인천 중구 신포동 ‘명동’의 인기 누리던 주역

현재 인천 중구 우현로39번길 7에 위치한 대전집은 1970~1980년대 인천 중구 동인천‧신포동 번화가의 ‘명동’급 전성기를 함께 했다.

고 오정희 여사는 대전에서 인천으로 올라와 적산가옥을 주점으로 개조해 ‘대전집’이란 상호로 가게 운영을 시작했다.

최 사장은 “온 가족이 대전에서 있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어머니 홀로 인천에 올라와 가정부 일을 해 생활비를 보내고 가게를 운영했다”며 “남의 집에서 집안일로 벌었던 한푼 두푼이 모여 향후 장사밑천이 됐다. 그 덕분에 현재 대전집이 있는 중구 신포동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1960~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문화 중심지였던 중구 신포동을 회상하며 당시 많은 지역의 예술인들은 신포동 일대 선술집을 방문해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삶과 예술작품에 대한 논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전집은 다양한 메뉴와 훌륭한 맛으로 소문 나 배고픈 예술가들이 많이 찾아 ‘문인, 화가들의 아지트’라 불리기도 했다.

최 사장은 “당시 대전집에 이철명, 정순일, 김진안, 우문국 화백 등 인천의 여러 예술가들이 자주 들러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대전집 스지탕.
대전집 스지탕.

스지탕 맛의 비결, 매일 ‘7시간’ 부지런함에 있다

대전집의 대표 메뉴는 단연 스지탕(소힘줄탕)이다. ‘스지’는 힘줄을 뜻하는 일본어로 소 사태살에 붙어있다. 스지를 7시간 푹 삶아 양념하고 감자, 각종 채소, 육수와 끓여낸 것이 스지탕이다.

최 사장은 “맛과 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국내 곳곳의 스지탕 가게를 방문하고 맛을 보며 오랫동안 시행 착오를 겪었다”며 “대부분 가게의 스지탕은 어묵과 무, 유부를 넣고 끓여 단 맛이 많이 나는데,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 깔끔한 맛을 내고자 육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오랫동안 스지탕을 연구한 만큼 국내 스지탕 가게 중 대전집 만큼 맛을 내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최 사장은 대전집 스지탕 국물의 감칠맛을 내기 위해 매일 새벽 6시 이전에 일어나 장사를 준비한다.

대전집 녹두빈대떡.

최 사장은 “대전집 스지탕을 먹은 손님들이 강한 감칠맛에 조미료를 넣었을 것이라 의심하는 경우도 있는데(웃음), 버섯과 생각, 파뿌리, 멸치 등을 넣어 육수를 우려내는 것”이라며 “좋은 재료로 오랫동안 정성을 들이는 것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전집 스지탕은 ‘맞춤형’ 서비스로 손님의 기호에 맞게 제공한다. 손님의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 청양고추, 후추 등을 넣어 맵기를 조절하는 것”이라며 “스지탕을 더 맛있게 즐기고 싶다면 대전집 50년 전통 비법 소스에 스지를 살짝 찍어 먹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대전집은 스지탕 외에 두부전과 녹두빈대떡도 판매한다. 스지탕 못지 않게 많은 손님들이 찾는 가게 주력 메뉴이다.

대전집의 녹두빈대떡과 두부전은 다른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녹두빈대떡은 다진고기가 보이지 않고, 두부전은 두부 사이에 튀긴 고기가 패티처럼 들어가 있어 흡사 ‘두부 샌드위치’, ‘두부 버거’에 가깝다.

대전집 두부전.
대전집 두부전.

최 사장은 “대전집 녹두빈대떡의 특별한 점은 녹두를 맷돌로 직접 간다는 점과 다진고기를 하나도 넣지 않고, 식감을 위해 양파를 넣었다는 점”이라며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바삭함이 오래가고, 속이 편한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부전은 어머니가 사장이었을 때부터 있었던 메뉴”라며 “두부전 메뉴 탄생 비화는 당시 근처 회사원들이 술을 먹으러 가게를 많이 찾았는데,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술을 마시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어머니는 저렴한 가격에 회사원들이 술을 마시면서 든든히 먹을 수 있는 안주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대전집의 유일한 밑반찬인 짠무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나타냈다. 짠무는 소금에 절인 무를 썰어 소금기를 뺀 뒤 담그는 일종의 동치미로 '싱건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 사장은 “맛있는 짠무를 만들기 위해 무를 직접 텃밭에서 재배한다. 담근 후엔 집에 보관해 필요한 만큼만 가게에 가져와 손님들에게 제공한다”고 전했다.

대전집 최재성 사장.
대전집 최재성 사장.

‘원도심 먹거리 특화거리’로 국내 곳곳에서 찾는 명소 되길

대전집은 50년의 역사를 간직한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최 사장은 1997년 정부의 IMF 구제 요청으로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먹고 살기 위해 가게를 물려받게 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IMF 위기를 넘긴 후에도 크고 작은 위기는 많았다.

최 사장은 “인천 중구 신포동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인천 중심지라 할 수 있을정도로 번화가라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1997년 IMF 사태와 1999년 인현동 화재 참사,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가게에 어려움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아이들이 죽었던 1999년 인현동 화재 참사 이후, 중구 신포동 일대는 손님 발길이 끊겨 신포동의 많은 노포들이 문을 닫았다. 최 사장은 대전집 역시 제대로 매출이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 가게 운영에 어려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최 사장은 “이렇듯 대전집을 비롯해 1960~1970년대 신포동 일대에 문을 연 노포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함께 오랜 시간을 견뎌온 만큼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가게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 중구 신포동이 ‘원도심 먹거리 특화거리’가 돼 많은 사람들이 쫄면, 짜장면의 시초인 중구의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며 “서울과 부산 등 국내 각지에서 모두 찾아와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가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집 내부.
대전집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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