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53. 계양구 ‘정시당’
10대부터 시계기술 배워... 시계기술 최고 ‘자부’
IMF 외환위기 ‘금모으기 운동'에서 금 검수 맡아
“금은방 화려한 시절 지나... 아름다운 마무리 고민”

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젊은 남자와 온 머리가 하얘진 어머니가 찾아와 본인이 30여년 전에 가게에서 예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의 예물을 하러왔다며 이렇게 가게를 오래하고 있다고 좋아했다. 귀중품 장사를 오랫동안 해서 손님들이 더 신뢰를 하는 것 같다.”

이는 1983년부터 40년째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서 금은방 ‘정시당’을 운영하고 있는 강희완(68) 씨의 말이다. 정시당은 계양구 계산동 973-8에 있다.

10대부터 시계기술 배워... 시계기술 최고 ‘자부’

강희완 씨는 1983년부터 40년째 계양구 계산동에서 금은방 ‘정시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희완 씨는 1983년부터 40년째 계양구 계산동에서 금은방 ‘정시당’을 운영하고 있다.

강희완 씨는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태어났다. 강 씨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를 갈 상황이 되지 않자 강 씨의 부모님은 강 씨에게 시계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다.

강 씨는 “16살 때 부모님이 당진 읍내에 있는 금은방에 시계기술을 배우라고 보냈다. 몸이 불편해 학교를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기술을 배웠다”며 “당진 금은방 2곳에서 시계기술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1975년에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시계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다 시계 공장이 인천 부평구로 이전하면서 부평으로 왔다”며 “현재 부평 세림병원 자리에 있던 ‘미카시계’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각지로 흩어졌는데, 한 번 모였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강 씨는 1975~1978년 시계 공장에서 일했고, 1983년 계양구에 ‘정시당’을 개업했다. 강 씨는 “정시당은 ‘바를 정’ 한자를 써 바른 시간이라는 뜻이다. 시간은 참 중요하다. 고객과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공장과 정시당 등에서 시계 수만개를 만들고, 수리했다. 시계기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게 기본 철학이다. 시계 수리도 손님이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인천투데이>가 강희완 씨를 인터뷰 하는 도중에도 손님 여러명이 시계 수리, 금 감정 등을 이유로 정시당을 방문했다. 한 손님은 “시계 고치러 다른 덴 안가고 여기만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금모으기 운동'에서 금 검수 맡아

강희완 씨가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강희완 씨가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강 씨는 금은방을 하면서 IMF 외환위기 때 있었던 ‘금모으기 운동’ 당시 금을 검수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강 씨는 “금이 들어오면 순금 여부를 확인했다”며 “하루에 금이 한 박스씩 들어왔다. 박스는 혼자 못 들고, 장정 두명이 들어야할 무게였다. 시민들의 힘이 모여 IMF 외환위기를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강 씨는 "금은방을 운영하다보니 도난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또, 요즘 경기 불황으로 40년 장사 중 가장 장사가 잘 안된다. 하지만 단골들이 있어 장사를 계속 하고 있다"며 어려움에도 오랜 기간 금은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를 말했다.

이어 “젊은 남자와 온 머리 하얀 손님이 본인이 30여년 전에 가게에서 예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의 예물을 하러왔다며 이렇게 가게를 오래하냐고 좋아했다”며 “손님들이 귀금속에 대해 잘 모르니 오래된 금은방을 신뢰한다. 대대로 찾아주는 손님들이 정말 고맙다”고 덧붙였다.

“금은방 화려한 시절 지나... 아름다운 마무리 고민”

정시당 가게 전경.
정시당 가게 전경.

강 씨는 금은방의 화려한 시절이 지났다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강 씨는 “30년 전엔 가족이 와서 예물을 고르면 루비세트, 사파이어 세트를 사갔다. 지금은 커플반지 정도 하는 추세다”라며 “40~50년 전엔 금은방, 양장점, 양복점 자리가 제일 비싼 땅이었다. 1980년대 잘되는 금은방은 저녁에 비료포대에 현찰을 담아갔다. 지금 그 화려한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끝으로 “자녀가 4명있는데, 금은방을 이어받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아쉽지만 어떻게 가게를 잘 정리할까 생각하고 있다. 가게를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잘 쓰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단골손님들이 눈에 밟힌다”는 고민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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