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73)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인천시민들이 지역사회를 향한 불만 중 하나가 TV 방송국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3대 도시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방송국이 없어서 TV 뉴스를 중앙 방송국에 의존하고 있기에 제한적인 지역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른 염원 중 하나가 바로 지역 방송국 설립이었다.

1994년 4월 9일, 정부는 지역 민영 방송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1994년에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4개 직할시에 지역 민방을 설립하고, 1996년까지 도청소재지 포함 도시 7~9개에 그리고 1996년 이후에 도시 10여개 내외에 지역 민방을 신설할 것이라는 발표였다.

지역 민방 설립 계획에서 국내의 직할시 중 유일하게 인천이 제외됐는데, 그 이유로 “기존의 모든 방송사의 가시청권지역으로 독립적인 민방을 두는 것은 기존 방송사와 주파수가 상충되기 때문”이며 “인천지역에서 지역 민방이 충분하게 독립할 수 없다는 판단도 고려 됐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즉 인천은 서울에 위치한 기존 방송국들의 전파를 모두 수신할 수 있는 지역이고 지역 민방이 독립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기에 직할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민방 설립을 불허했다는 설명이다.

방송이 갖고 있는 지역사회 역할과 의미를 간과한 것이었고, 인천지역사회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처사였다.

인천지역에선 당연히 크게 반발했다. 서울과 지리적인 근접성으로 여러 방면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느끼던 인천시민들의 입장에선 특히 자존심이 상하는 정부의 태도였다. 서울에서 내려 보낸 혐오시설은 인천이 받으며, 문화 시설 측면에선 철저하게 서울에 종속됐다고 느끼는 인천 입장에선 인천 방송국의 설립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방송국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방송국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인천에 독립적인 방송국이 생긴다면 서울 종속적인 인천의 상황이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따라서 방송국의 설립은 단순하게 언론사를 설립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지역 사회입장에서는 향후 도시발전의 향방을 좌우할만한 중차대한 일이었다.

이런 절박함을 바탕으로 1994년 5월 3일에 인천방송설립촉구 범시민대책협의회가 발족됐다. 대책협의회는 민방 설립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추진하는 한편, 관계기관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전방위 운동을 전개했다. 정치권에 대한 설득과 압박도 병행했다.

인천시민들의 거센 항의와 압력으로 결국 정부는 인천 지역에 민영 방송국을 설립할 수 있게 방향을 바꿨고, 1997년 10월 11일에 UHF 채널 21번의 주파수를 할당받아 동양제철화학이 대주주로 하는 itv 인천방송국을 개국하고 첫 전파를 송출했다.

이미 1995년에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1차 지역 민방이 설립됐고, 이후 1997년에 개국한 울산방송, 전주방송, 청주방송과 함께 인천방송은 제2차 지역민방으로 설립됐다.

인천방송은 인천시민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설립됐는데, 설립 조건도 다른 지역 민방과 완전히 다른 조건으로 차별을 받았다. 타 지역 민방은 프로그램의 자체 편성 비중이 31% 이상으로 설립 허가를 받았으나, 인천방송은 100% 자체 편성이 설립 조건이었다. 이것은 방송국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 조건이었다.

인천방송을 제외한 타 지역민방의 경우 자체 편성 비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은 SBS 서울방송의 프로그램을 재송출했다. 의무 자체 편성 비율이 있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SBS의 지역 네트워크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한정된 지역의 광고 시장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방송국을 운영해야 하는 지역 민방의 경우, SBS 프로그램의 재송출로 전체 프로그램 중 70%를 채운다는 것은 그만큼 프로그램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이는 지역 민방의 생존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또한 지역 민방이 SBS 프로그램을 재송출하게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원래 서울지역의 민방으로 허가를 받은 SBS는 별도로 지역 네트워크를 설립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한 셈이었으니, 사실상 지역 민방의 설립은 서울 지역 방송인 SBS를 전국 방송으로 허가 내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인천이 지역 민방 설립에서 제외된 것은 정부에서 내세운 논리인 서울 지역의 방송국들과 전파 수신 지역이 겹친다는 측면도 있지만, 같은 수도권의 민방으로 경쟁 방송국이 설립되는 것을 제지하기 위한 SBS의 반대 로비도 한 몫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인천방송은 당연하게 SBS의 전파를 중계할 수 없었고, 100% 자체 편성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서울과 경기지역을 방송권역으로 하고 있는 SBS와는 달리 인천방송은 인천 지역만을 가시청권으로 허가를 받았기에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시장만을 대상으로 방송을 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방송은 SBS에 이어 설립된 제2의 수도권 민방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고, SBS와 어깨를 나란히 할 방송국이라는 인식으로 견제의 대상이었다.

이런 인식 덕분으로, 수도권 제2민영방송국의 창립 멤버가 될 것이라는 기대 하에 출범 당시 SBS, MBC, KBS에서 인천방송으로 이직해온 인재들이 많았다. 이렇듯 인천방송은 인천 지역 사회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출범했지만, 곧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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