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76)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이번이 연재 마지막 편입니다. <편집자주>

인터넷 언론의 태동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6월에 한국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됐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구축된 초고속인터넷으로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급변했다. 전통적인 언론 매체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인터넷 언론이 우후죽순 등장해 영향력을 확대해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에 등장한 포털 사이트들이 언론사로부터 콘텐츠를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이후 포털이 한국 언론 지형을 장악하게 된 시초가 됐다.

인터넷 언론이 시대적 흐름으로 인식되면서 기존의 인쇄 매체들도 인터넷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주요 신문사들이 모두 인터넷에 진출했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창간하는 언론의 숫자는 급증했다. 이 시기에 창간한 인터넷 언론사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오마이뉴스>를 꼽을 수 있다.

오마이뉴스 사이트 갈무리.
오마이뉴스 사이트 갈무리.

<오마이뉴스>는 2000년 2월 22일에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창간했다.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론사 입사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거치고, 입사 후에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은 직종이 기자이다.

<오마이뉴스>는 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고, 기사를 작성해서 언론에 보도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창간했고, 성공적인 인터넷 신문의 사례가 됐다. <오마이뉴스>의 성공은 한국의 미디어 환경이 초고속인터넷을 기반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던 당시 사회 환경의 영향이 컸고, 외국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연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성공적인 언론이 됐다.

<오마이뉴스>는 특히 노무현대통령이 취임하며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터넷언론이 전통적인 언론과 대등한 수준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 언론의 성장은 또한 기존의 인쇄 매체들이 갖고 있는 언론으로서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던 시민들에게 적절한 대안 매체의 역할을 제공했던 것이기도 했다.

인터넷 언론의 장점 중 하나는 인쇄시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립에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고, 소수의 인원으로도 창간이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1인 언론사도 가능한 것이다.

설립이 손쉽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언론에 요구되는 엄정한 공정성과 윤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단점이자 한계이다.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작성한 기사는 부정확한 내용을 담을 수도 있고, 언론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기에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언론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세로 자리 잡았고 종이 신문을 기반으로 했던 언론사들도 미디어 환경이 변하며 현재에는 수입의 상당부분을 인터넷에서 충당하고 있다.

인천의 인터넷 언론

인천투데이 사이트 갈무리.
인천투데이 사이트 갈무리.

인천의 언론도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터넷 부분을 강화하고 있다. 처음부터 인터넷을 기반을 창간한 인천 언론으로 <인천뉴스>와 <인천in>이 있고, 종이 신문으로 출발했으나 인터넷 기반 언론으로 완전히 전환한 <인천투데이>가 대표적인 인터넷 언론이다.

2003년 8월 15일 인천 최초 인터넷신문으로 창간한 <오마이 인천>은 2004년 1월 1일 <인천뉴스>로 제호를 변경했다. 2005년 8월 25일에는 최초로 인천시에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했다.

2006년 4월 10일 기사 1만건을 돌파했고 2007년에는 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4년부터 연말에 올해의 봉사대상과 후원의밤 행사를 하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활동한 인사에게 상을 수요하고 있다.

2009년 12월 21일 창간된 <인천in>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지향하는 독립 언론으로, 시민주주 240명의 참여로 출발했다. 지역 언론에 오래 몸담았던 송정로 대표를 비롯해 독립적인 지역 언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출발했다.

인천 지역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고 있으며, 다양한 배경의 시민기자들의 참여로 색깔 있는 인천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최근 국내의 지역 언론사 인터넷사이트 순위 2위를 기록한 <인천투데이>는 2003년 창간한 주간지인 <부평신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평 지역의 소식을 다루는 언론으로 출발했으나, 2013년 <시사인천>으로 제호를 바꾸며 인천전역으로 취재 권역을 넓혔고, 2019년 제호를 다시 <인천투데이>로 변경하고 인터넷을 중심 기반으로 하는 언론으로 발전했다.

인천언론의 뿌리 계승

2013년 10월 23일 열린 ‘대중일보 창간 68주년 대토론회’에서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이 '경기매일신문' 지령 9000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2013년 10월 23일 열린 ‘대중일보 창간 68주년 대토론회’에서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이 '경기매일신문' 지령 9000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인천언론, 특히 인천 신문의 뿌리는 <대중일보>이다. 광복 직후 인천에서 창간한 최초 신문이다.

송수안이 주도적으로 창간한 <대중일보>는 이후 제호를 <인천신보> <기호일보> <경기매일신문>으로 변경했는데, 군사 독재정권의 강제적인 언론통폐합으로 수원에 본사를 위치한 <경기신문>에 흡수 통합됐다. 이후 <경기신문>은 제호를 <경인일보>로 다시 바꿨다.

<경인일보>는 원래 1973년 언론통폐합 후 <경기신문>으로 출발하며 창간호를 발행했다가, 1982년에 신문의 지령 기산점을 1960년 8월 15일 창간한 <연합신문>으로 바꿨다. 수원에 본사를 두고 있던 <연합신문>이 인천의 2개 언론사를 흡수 통합했기에 <연합신문>을 이어온 것으로 지령을 정한 것이다.

그러나 2013년 <경인일보>는 사고를 통해 9월 2일부터 지령을 1945년 10월 7일 창간한 <대중일보>를 승계하는 것으로 기산점을 바꿨다고 밝혔다.

<경인일보>가 지령 기산점을 <대중일보>로 바꾸자 인천지역의 언론인들과 여러 단체는 부당한 일이라고 비난하고 나섰고 토론회가 열리는 등, 한동안 논쟁이 있었다.

<경인일보>는 <경기신문>으로 창간할 당시 새로운 신문으로 창간했다가, <연합신문> 지령을 계승하는 것으로 바꿨다가, 다시금 뿌리를 <대중일보>로 바꾼 것인데, 인천의 입장에서는 수원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경인일보>가 인천 최초 신문인 <대중일보>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이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윤리적인 측면을 떠나서 법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경인일보>가 <대중일보>를 계승한다는 주장을 전적으로 부인하기도 어렵다. 즉 <경인일보>가 정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대중일보>의 후신을 자처할 타당성이나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이것을 법적으로 제지할 근거는 없다.

인천 지역의 언론과 시민사회가 그동안 아무도 <대중일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며, 결국 이 논란은 인천 사회의 역사 인식과 역량이 부족했기에 발생한 것으로, 지역 사회에서 스스로를 되짚어보며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연재를 마치며

인천 매체 변화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짚어보고자 시작한 연재였는데, 미디어 분야가 워낙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제한된 시간과 지면, 그리고 무엇보다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처음 의도에 못 미치는 부족한 연재로 마무리를 하게 됐다.

매체를 논하면 상당부분 신문 방송 등 언론을 떠올리게 되는데, 간판과 같은 옥외광고, 연극 등 공연 매체, 영화와 드라마와 같은 영상 매체, 그리고 그 이외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망라해 다뤄야 한다.

그러나 연재에서는 상당부분 언론을 위주로 다룬 측면이 강했다. 여러모로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은 향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정기적으로나마 보완해 나갈 생각임을 밝히며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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