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70)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와 탄압 하에서 한국 언론은 암흑기를 보냈으나, 극심한 언론 통제 하에서도 민주화를 위한 시민 사회의 요구는 꾸준하게 지속됐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은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돼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6·29선언은 대통령 직선제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를 보장하는 내용이었는데, 언론과 관련해선 언론 통제를 위한 법률인 ‘언론기본법’과 ‘프레스카드제도’를 폐지할 것을 선언했다.

또한 지방주재기자의 부활과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11월 11일에 국회는 언론기본법 폐지를 통과시켰다.

1987년의 6·29선언은 한국 언론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는데, 무엇보다 신문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언론 통제의 빗장이 풀리고 신문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자 중앙지는 물론이고 각 지방에서 신문과 잡지가 우후죽순으로 창간돼 단기간에 급격하게 숫자가 늘어났다.

6·29선언 이전에 32개에 불과했던 일간 신문은 약 1년 후인 1989년 5월에는 66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주간지는 201개에서 647개로 세배 이상 늘어났고, 월간지도 1203개에서 1934개로 늘어났다.

1987년 6·29선언을 하고 있는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KBS1 프로그램 오늘은 화면 갈무리)
1987년 6·29선언을 하고 있는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KBS1 프로그램 오늘은 화면 갈무리)

언론 자유화는 많은 신문이 새롭게 창간되는 것을 가능케 했고, 지면의 증면도 자유롭게 허용했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도 따랐다. 무엇보다 사이비 언론의 창궐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기사를 협박 무기로 삼아 금품을 뜯어내는 사이비 기자들은 기업체는 물론 개인의 비리까지 협박 수단으로 삼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이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자 프레스카드제도를 부활시키자는 주장까지 나오게 됐다.

직접적인 협박으로 금품을 뜯는 사이비 언론은 지속적인 단속으로 수그러들었으나, 이미 독재 정권 시절부터 언론 길들이기의 일환으로 실시한 당근과 채찍 정책 중 당근으로 이용됐던 언론계의 촌지 문화는, 민주화 이후 노태우의 6공화국 정권이 들어서며 관행처럼 굳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메이저 언론사의 언론인들은 월급보다 더 많은 액수의 촌지를 당연한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촌지 문화는 자발적 권언유착으로 이어졌고,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원인이 됐다.

1987년의 언론 자유화가 가져온 또 다른 부정적 측면은 자본과의 관계이다. 언론 자유화로 언론사의 숫자가 늘어난 것과 더불어 증면이 자유화되자 신문은 경쟁적으로 지면을 늘렸다. 1980년에 12면으로 발행하던 신문은 1988년에는 16면으로 늘어났고, 1990년에는 24면을 발행했다. 1994년에 중앙일보는 48면을 발행하기도 했다.

신문의 지면이 증가하면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났는데, 지면의 거의 절반을 광고로 채우거나 심지어 50% 이상이 광고로 채워지기도 했다. 광고 지면의 증가는 곧 신문사의 광고 수입의 증가로 이어졌는데, 조선일보의 경우 광고 수입의 비중이 80%를 상회하는 등 언론의 광고 수입 의존도가 크게 증가했다.

광고 수입 의존도가 심화됐다는 것은 곧 언론이 자본의 통제에 취약한 구조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것이 언론이 수행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데, 한국 언론은 독재 권력 하에서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다가, 언론 자유화가 이루어진 후에는 통제의 주체가 권력에서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적 취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언론 자유화 이후, 자본이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 직접 언론을 소유하는 방식과 광고를 통한 통제이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재벌사들은 광고대행사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광고로 언론을 통제했다.

1990년 통계에 의하면, 삼성·LG·롯데·두산·해태·한화·현대·태평양의 8개 재벌이 소유한 광고대행사가 업계 1위에서 8위까지 차지할 정도로 재벌 기업들이 광고 시장을 독과점했고, 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이 됐다.

언론이 자본에 종속된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독립언론을 세우려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있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한국 언론의 구조적 취약점이 됐다.

최근 대통령실이 MBC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광고를 언급한 것은 현대 한국 언론의 우울한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 순수하게 독자 구독료로 성공 운영 중인 독립 언론의 사례를 참고해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하겠으나, 이미 언론은 무료라는 독자들의 인식이 팽배하고 언론사의 광고 종속이 심화된 한국의 언론 환경에선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암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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