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75)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인천방송의 방송권역은 2000년 3월 2일을 시점으로 경기도 지역으로 확장됐으나, 경인방송으로 사명을 바꾸고 난 이후 인천 지역 방송으로서의 역할과 지역민들의 관심은 오히려 감소했다.

경기도로 방송권역이 확대되고 사실상 수도권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방송국을 지향하며 인천관련 내용이 축소됐고 이에 따라 인천 시민들이 경인방송을 외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송국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천 지역 시민단체들도 경인방송에 대한 기대를 접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2003년부터 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과 경인방송 노동조합 간의 노사 갈등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노조는 경영진이 약속했던 증자와 경영 개선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방송 제작 환경이 악화된 것에 대한 불만이 심했고, 여기에 박상은 사장이 자신의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방송을 이용하려 한다는 문건이 2004년 초에 자사의 뉴스로 폭로되면서 노사 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갈등이 심화되며 결국 2004년 10월부터 노조는 파업을 시작했고 이에 따라 방송 제작도 차질을 빚게 됐다. 12월 13일에 사측이 직장폐쇄로 파업에 맞서면서 노사 분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 와중에 간접광고 위반이 적발됐고, 방송위원회가 12월 21일에 경인방송의 재허가 추천을 거부하면서 결국 방송국이 문을 닫는 한국 방송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게 됐다. 방송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경인방송 이사회는 12월 23일 폐업을 결정했고, 12월 31일 방송을 끝으로 경인방송은 폐업했다.

이에 따라 인천시민들의 열망으로 어렵게 개국한 인천의 방송은 개국 이후 불과 7년여만에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정부가 방송국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은 언론통폐합 이후 최초의 사건으로, 한국 방송 역사에 기록된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 결정으로 정부가 언제든지 방송국을 폐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정부 또한 초유의 결정이 가져온 파장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종편 등 다른 방송의 재허가를 심사하는데 있어 위반 사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등, 이후의 방송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된 사건이었다.

비록 그동안의 파행으로 인천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경인방송이었으나, 상당한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방송을 하던 지역의 민영방송이 폐쇄됐다는 것은 인천에 대한 정부의 차별과 홀대로 인식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애초에 방송 인가부터 인천 홀대 문제가 불거졌고, 어렵게 설립한 방송국의 폐쇄라는 초유의 사태는 인천시민들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키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OBS 경인TV 본사.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OBS 경인TV 본사.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이후 인천방송의 라디오 전파는 지속적으로 송출했으나, TV 방송은 끝내 재개되지 못했고, 2006년 기존 경인방송의 가시청권을 승계한 방송으로 영안모자가 대주주로 참가한 컨소시엄이 ‘OBS 경인 tv’를 설립했다.

OBS는 부천에 방송국 본사를 두고 있으며, 허가 받을 당시 기존 경인방송 직원의 고용 승계와 방송국 소재지를 인천에 두는 것을 조건으로 허가 받았으나, 현재까지 이행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 인천 계양구로 방송국을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방송의 설립과 이후 경인방송으로 전환 그리고 폐업의 과정을 보면, 인천이 독자적인 방송국을 갖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상당부분 인천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후 경인방송을 승계한 OBS가 허가 조건으로 인천에 방송국을 위치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부천에 본사를 두고 있다가 마지못해 계양으로 옮겨오는 듯 한 태도에서 도시로서 인천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곧 경기도와 서울이라는 시장의 규모와 인천이 갖고 있는 시장 규모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인천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제는 큰 의미가 없어졌지만, 설립 당시 방송국의 존립 문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포인트였던 가시청권역에 대한 정부 결정이 비합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정하지 못한 것도 인천 지역 사회가 갖고 있는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 난시청 지역이 많은 한국의 지형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처음부터 인천 방송의 전파가 서울지역으로 월경하는 것을 불허하는 방침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차별적인 것이었다.

시청자들의 전파 주권을 감안한다면 더 많은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서울의 방송 전파가 인천지역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오듯이 인천의 방송 전파가 서울지역으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규제하고 제한하는 조건 자체가 비합리적이었다.

다양한 이해득실 관계가 얽혀있는 문제였고 인천방송의 무리한 포지셔닝(positioning)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인천의 방송이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게임의 룰을 강요당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방송의 설립과 실패 과정은 인천의 위상을 드러내는 일이었고, 인천시민들에겐 씁쓸한 기억을 안겨주게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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