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㉘ 미추홀구 ‘화이트세탁소’
양복 재단사로 쌓은 기술 “옷 수선 내가 최고”
버텨온 동력 ‘신뢰’‧‧‧ “손님과 약속 가장 중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세탁소 지키고 싶어”

인천투데이=서효준 기자│사람들은 면접‧결혼식 등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면 사람들은 깨끗하게 세탁하고 깔끔하게 다린 옷을 입는다. 그러기 위해 세탁소를 찾곤 한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 37년 동안 세탁‧다림질‧수선 등 동네 사람들의 소중한 옷을 맡아 온 ‘화이트세탁소’가 있다.

화이트세탁소는 1986년 인하대학교 후문에서 문을 열었다. 이후 2002년 인하대 후문에서 조금 떨어진 용현1동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김학성 화이트세탁소 대표
김학성 화이트세탁소 대표

김학성(73) 화이트세탁소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재단사 일을 하고 있는 지인의 권유로 양복 재단을 배우며 옷과 관련한 일을 시작했다.

김 씨는 “고등학생 때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다.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남아있다. 몸이 좋지 않아 졸업 후 딱히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양복점에서 재단을 배울 기회가 생겼고, 그 인연으로 세탁소까지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세탁소를 운영하기 전 1973년 서울 종로5가에 양복점을 차렸다. 하지만 그해 군입대 영장이 나와 군대에 다녀왔다. 때문에 자연스레 양복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전역 후 김 씨는 쇠락해가는 양복점 대신 세탁소를 선택했다. 1977년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첫 세탁소를 시작했다. 하지만 집값‧임차비 등 경제적 여건을 이유로 1986년 인천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김 씨가 선택한 곳은 인하대 후문이었다. 김 씨는 대학교 근처가 다른 곳에 비해 양복 등 드라이클리닝 수요가 많을 것이라 판단해 인하대 후문에 ‘화이트세탁소’를 차렸다.

김학성 대표 보물 1호 미싱기. 김 씨는 1969년 양복 재단을 배울때부터 이 미싱기를 사용했다.
김학성 대표 보물 1호 미싱기. 김 씨는 1969년 양복 재단을 배울때부터 이 미싱기를 사용했다.

양복 재단사로 쌓은 기술 “옷 수선은 내가 최고”

김 씨는 “1980년대에 양복을 입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었고,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인하대 후문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양복을 주로 입는 게 학생 때가 아니라 취업 후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래도 인하대 후문에 자리를 잘 잡았다. 당시 양복 재단을 하며 갈고 닦은 기술이 가게가 자리를 잡는 데 한몫을 했다”며 “옷 수선에 자신 있었고, 옷을 잘 고친다는 얘기 입 소문을 타면서 단골손님이 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자리를 옮겼지만 그때 인연을 맺은 단골손님들은 수선할 일이 있으면 여전히 저희 가게를 찾는다”며 “우리도 자리를 옮겼지만 부평이나 남동구 등 거리가 먼 곳으로 이사간 손님들이 잊지 않고 찾아온다. 항상 고맙다”고 전했다.

다림질하는 김학성씨
다림질하는 김학성씨

버텨온 동력 ‘신뢰’‧‧‧ “손님과 약속 가장 중요”

세탁소를 운영하는 30여년 간 사연도 많았다.

화이트세탁소가 인하대 후문에 있던 1990년대에 면접 철이 되면 세탁소를 찾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부분 세탁을 맡기러 왔지만 조금 특별한 학생들도 있었다.

김 씨는 “면접하러 가야하는데 돈이 없어 양복을 사지 못한 학생들이 세탁소를 찾곤 했다.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양복 중 사이즈가 맞는 게 있으면 빌려주곤 했다”며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던 친구들이 면접을 보고와 웃으며 고맙다곤 했다”고 회상했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맡기지도 않은 옷을 내놓으라는 일, 세탁 후 건조시키려고 걸어둔 옷을 훔쳐가는 일 등 옷값을 물어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김 씨는 “지금은 옷을 훔쳐가는 일이 없지만, 과거 양복 등이 귀할 때는 옷을 훔쳐가는 일이 많았다. 옷값은 다 물어줬다”며 “손님이 세탁소에 맡긴 후 세탁소에서 발생한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억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손님과 약속이라 생각한다. 내가 한 번 손해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고, 손님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 같은 고집이 있어 지금까지 단골손님들이 찾는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화이트세탁소.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화이트세탁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세탁소 지키고 싶어”

고등학생 시절 앓은 늑골염으로 후유증이 있는 김 씨는 후유증으로 평소 숨쉬기가 편치 않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19로 마스크를 계속 쓰면서 더욱 힘겹다.

몸만 힘든 게 아니다. 화이트세탁소 역시 동네 곳곳에 생기는 코인세탁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영향으로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 탓에 세탁 물량은 더 줄었다.

어려운 상황에도 김 씨는 세탁소를 계속 지키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양복 재단을 시작으로 한 평생 수선‧세탁‧다림질 등을 하며 옷을 만지며 살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세탁소를 지키며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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