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㉒ 인천 미추홀구 ‘국제열쇠’
"밤낮없이 출동··· 안타까운 사고 목격 자주해"
"범죄 가능성 있어 출장 나가면 탐정으로 빙의"
“열쇠가게 하나둘 없어져··· 폐업 고민하기도“

인천투데이=박소영 기자│“절망하지 마라. 종종 열쇠 꾸러미의 마지막 열쇠가 자물쇠를 연다” 18세기 영국 정치가 필립 체스터필드가 아들에게 들려준 교훈이다.

열쇠 꾸러미의 마지막 열쇠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자물쇠를 척척 따버리는 이가 있으니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국제열쇠’ 사장 엄창용(46)씨다. 엄창용 씨는 아버지 고 엄기정 씨의 대를 이어 국제열쇠를 운영하고 있다.

고 엄기정 씨는 열쇠가게가 잘된다는 친척 얘기를 듣고 1986년 '국제열쇠' 가게 문을 열었다. 2000년대 디지털 도어락이 성행하고 주변 열쇠가게가 하나 둘 문을 닫았지만 국제열쇠는 3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제열쇠 엄창용(46) 사장.
국제열쇠 엄창용(46) 사장.

밤낮없이 출동··· 안타까운 사고 목격 자주해

엄창용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장에서 잠깐 일을 했다. 하지만 적성과 맞지 않아 그만두고 1994년부터 국제열쇠에서 일을 시작했다.

문이 안 열려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동했다. 그 땐 디지털 도어락이 없었을 때라 전화통이 북새통을 이뤘다.

엄씨는 출장을 나가 문을 열어보면 예상치 못한 광경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한번 은 ‘나이가 많은 어머니가 전화를 안 받아 문을 따야 한다’며 불려간 곳에서 고독사 현장을 보기도 했다.

"범죄 이용 가능성 있어 출장 나가면 탐정으로 빙의"

가끔은 탐정으로 빙의해 고객을 의심해야 할 때도 있다. 범죄를 목적으로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엄씨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20대 때 한 남성이 문을 따달라고 해서 출장 간 적이 있었다. 알고보니 집주인을 스토킹하던 남성이었다”며 “그 때는 혈기왕성하던 때라 그 사람과 대판 싸웠다”고 말했다.

이어 “열쇠수리공 대부분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오래 일을 하면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은 척 보면 안다”며 “이젠 전화만 받아 봐도 알겠더라”고 웃었다.

열쇠수리공 사이에도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라며 조심해야 할 사례들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국제열쇠 엄창용(46) 사장.
국제열쇠 엄창용(46) 사장.

“열쇠 이용층 대부분 노인··· 출장비로 요구르트 받기도“

지금 열쇠를 사용하는 세대는 주로 노인층이다. 엄 씨는 요즘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연락을 받고 출장간 곳엔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어 돈을 받기 민망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엄 씨는 “한번은 2000원이랑 요구르트를 받은 적도 있다”라며 웃었다.

또, 문을 열지 못했을 경우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문을 열지 못하는 경우는 고객이 돈이 많이 들거 같다고 해서 수리를 멈추거나, 잃어버렸던 열쇠를 찾아오는 경우다.

엄씨는 “마음의 문빼고 못따는 문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고객의 요청으로 수리를 멈추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돈을 받지 않는다”며 “그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나”고 말했다.

국제열쇠 가게 모습.
국제열쇠 가게 모습.

“열쇠가게 하나둘 없어져··· 폐업 고민“

열쇠수리공도 전문 분야가 따로 있다. 금고 전문, 자동차 전문, 수리 전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워낙 열쇠 관련 수요가 없다보니 모든 분야를 통합해 운영한다고 했다.

보통 열쇠가게가 도장가게를 같이 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엄 씨는 10년 전과 비교해 국내 열쇠가게 중 60%가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국내는 물론 국제열쇠 주변 열쇠가게들도 대부분 자리를 떠났다.

엄 씨는 열쇠가게가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엄 씨도 폐업을 고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래도 엄씨는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곳을 지킬 때까지 지키다 더 이상 열 문이 없으면 그 때 다른 문을 열기 위해 떠날 것이라고 한다.

국제열쇠.
국제열쇠.

엄 씨는 “디지털 도어록은 보통 누구나 설치 가능하게끔 쉽게 제품이 나와 굳이 기술자가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며 “주로 열쇠 복제와 출장 등으로 수입을 보전했는데,  이젠 이같은 열쇠 수요가 줄어 수입이 많이 줄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만큼 디지털 도어록이 발달한 나라가 없다. 다른 나라를 보면, 디지털을 못 믿어 아직도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곳이 많다”며 “해외로 나갈까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천에 국제열쇠가 없어지면 안되는데’라는 기자의 아쉬운 말에 엄 씨는 “지킬 때까진 지킬 겁니다”라고 짧은 다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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