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⑲ 동구 한양지업사
3대를 이어 1953년부터 한 자리 지켜
견본 아닌 제품 보고 직접 고를 수 있어
"초심 잃지 않는 가게 운영하고 싶어"

인천투데이=김샛별 기자 | 잘 정돈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크다. 멋진 여행지에 가지 않더라도 깔끔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한양지업사를 거치면 누구나 이런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인천 동구 금곡동에 위치한 한양지업사는 1953년부터 배다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양지업사는 현재 벽지, 장판, 매트 등 집수리와 관련한 물품을 판매하고 도배 등 시공도 하고 있다.

김정택 한양지업사 3대 대표. 
김정택 한양지업사 3대 대표. 

한양지업사의 3대 대표인 김정택(42)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평생 운영했던 가게를 2008년 물려받았다.

한양지업사는 1953년 처음 문을 열었다. 김정택 씨의 할아버지인 고 김인배 씨는 충남 예산에서 인천으로 올라 왔다.

김인배 씨는 목수 등 여러 일을 했지만 종이를 다루는 일에 매력을 느껴 지업사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창호지나 종이 등을 판매했다.

‘한양지업사’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김인배 씨가 자신의 붓글씨 선생님에게 받은 이름이다.

배다리는 인천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도입부였다. 가게가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의미에서 한양지업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2대 사장인 김종성 씨(72)는 1980년대부터 가게를 운영했다. 김종성 씨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해군사관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군대 제대 후 가게에 합류했다.

원래 한양지업사는 2층 규모의 목조 건물이었다. 하지만 2005년 화재가 발생해 가게와 제품들이 전부 불타 버렸다.

김종성 씨는 화재 이후 창고에서 남은 물건들을 판매했다. 좌절할 수도 있었지만 가족과 주민들의 든든한 지원에 다시 일어섰다.

이후 같은 장소에 건물을 새로 지어 한양지업사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견적을 낼 때 사용하는 대나무 자.
견적을 낼 때 사용하는 대나무 자.

무대 누비던 '밴드 보컬'에서 한양지업사 3대 대표로 

음악을 사랑하던 3대 사장 김정택 씨는 대학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다. 밴드 보컬로 무대를 누비던 그는 이제 가게 곳곳을 살피며 제품을 확인한다. 

김정택 씨는 “밴드를 하다가 처음 출근했을 때 긴 머리로 손님을 맞았다”며 “긴 머리가 멋있고 개성 있어 좋아하는 손님이 많았는데 머리를 자르고 출근하자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성 씨는 매일 아침 8시에 가게 문을 연다. 어머니인 이정옥(68)씨와 함께 도배 현장에 나가는 도배사에게 필요한 물건을 꼼꼼히 챙겨 보낸다.

가끔 현장에 직접 나가 시공 상황을 확인하기도 한다.

오후에는 주로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을 상담한다. 오후 4시가 되면 도배를 마친 도배사가 가게로 돌아온다. 이들과 하루 일과를 나누며 시공 상황을 공유한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한양지업사의 불은 오후 7시가 돼서야 꺼진다.

코로나19 이후 가게 찾는 발길 늘어 

김정택 씨는 최근 도배사를 부르지 않고 스스로 도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스티커만 떼면 손쉽게 붙일 수 있는 벽지들이 잘 나간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한양지업사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학교나 관공서도 그들의 공간을 새롭게 단장했다.

가게 영업 중 시공을 할 수 없는 가게들도 코로나19로 문을 닫았을 때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옷이나 신발처럼 벽지 역시 유행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꽃무늬나 패턴이 있는 벽지를 선호했다면, 요즘은 무채색 계열 벽지가 매출을 올린다.

최근 가장 많이 판매되는 스티커 벽지.
최근 가장 많이 판매되는 스티커 벽지.

장판을 고를 때는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장판은 두꺼울수록 좋다.

두꺼운 장판들은 아이를 키우는 손님이나 무릎이 불편한 손님에게 권한다. 두꺼운 장판은 층간 소음을 방지하고, 푹신하기 때문에 걸을 때 무릎에 무리가 적게 간다.

한양지업사는 보통 인테리어 가게와 다르다. 견본만 있는 인테리어 가게와는 달리 한양지업사에서는 직접 장판과 벽지를 보고 물건을 고를 수 있다.

가게 옆 창고에 포장을 뜯지 않은 벽지와 장판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벽지와 장판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 온 느낌이었다.

전시를 관람하듯 창고를 구경하자 이정옥 씨가 큐레이터처럼 설명을 덧붙였다. 물건을 정리한 창고가 아닌 ‘벽지·장판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없었다.

제품으로 가득 찬 한양지업사 창고.
제품으로 가득 찬 한양지업사 창고.

“지역 주민에게 봉사하고 초심 잃지 않는 가게 운영하고 싶어”

한양지업사는 한 장소를 오래 지킨 ‘터줏대감’인 만큼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오랜 시간 함께한 단골손님은 물론, 단골손님의 자녀들도 한양지업사를 찾는다.

한양지업사는 손님뿐만 아니라 도배사, 직원과도 긴 시간 호흡을 맞췄다. 이제 동료를 넘어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도배사들은 오랜 경력에 걸맞게 실력이 출중하다. 시공 이후 손님의 만족도가 높다. 한 자리에서 오래 일한 덕분에 손님들은 한양지업사의 제품과 시공 실력을 신뢰한다.

이 덕분에 인천뿐만 아니라 다른 수도권 지역, 심지어 지방에서도 시공 의뢰를 받아 도배사가 지방으로 출장을 가기도 한다. 

현재 한양지업사는 오프라인 매장만 운영 중이지만, 더 많은 손님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온라인 판매도 준비 중이다.

일을 하며 가장 뿌듯할 때는 역시 손님들이 만족할 때다. '지난번에 도배를 너무 잘해 줘서 또 왔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김정택 씨는 “단순히 이익을 내기 위해 가게를 운영하기보다는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준 지역 주민에게 봉사하며 초심을 잃지 않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김정택 한양지업사 3대 대표. 
김정택 한양지업사 3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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