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㉑ 인천 중구 ‘도원철공소’
“담금질, 살아가며 단단해지는 우리랑 같아”
“사라져가는 대장장이‧‧‧ 명맥 이어갔으면”
인천투데이=서효준 기자│고열에 달궈진 쇠막대기가 나종채(70)씨의 손을 거치면 가위가 되고 호미가 된다. 담금질이 마치 세상으로부터 단단해져가는 인생사와 같다고 말하는 나 씨는 인천 중구 도원동 일대에서 55년째 대장장이로 살아가고 있다.
대장장이가 호미 하나를 만드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공장에서 담금질이 아닌 주물 방식으로 제작하면 수십 개 한 번에 만들어진다. 대장간이 주위에서 점차 사라진 이유기도 하다.
인천 중구 도원역 일대에 명맥을 잇는 대장간 4곳이 남아있다. 지난 27일 찾은 ‘도원철공소’의 노(爐) 역시 6~700℃ 고열을 뿜어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날은 영하권 날씨였지만 대장간 안은 따뜻했다.
나 씨는 55년째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다. 나 씨는 전라도 광주 출생이다. 1966년 15살 때 나 씨는 무작정 인천으로 올라와 도원동 일대에서 대장간 일을 배우며 대장장이 삶을 시작했다.
이후 1991년 지금의 ‘도원철공소’란 가게를 차렸다.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나 씨는 “대장간 일은 배움에 끝이 없어, 같은 호미라도 사람마다 원하는 길이가 다르고, 지역마다 모양세가 조금씩 달라 만들 때마다 새롭지”라고 말했다.
이어 “대장장이가 천직이니깐 50여년을 했지. 두드리는 대로 만들어 지는 게 너무 재밌었지. 사람들이 종이에 그려오는 것을 만들어 주다 보니 어느새 50년이 흘렀네”라고 전했다.
“잘 만드는 게 뭐냐고, 두드려 만들 수 있는 건 모두 만들지”
무엇을 가장 잘 만드냐는 질문에 나 씨는 “두드려 만들 수 있는 건 모두 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모두 달라. 같은 호미‧낫 등 농기구도 사람마다 원하는 길이가 제각각이야. 본인이 원하는 수치를 적어서 그려오면 그대로 만들어 주곤 해. 두드려 만들 수 있는 건 모두 만들 수 있지”라고 덧붙였다.
도원철공소는 나 씨가 직접 만든 각종 농기구들로 가득 차 있다. 가게를 구경하다 보니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장제 농기구와 차이점이 궁금했다.
이에 나 씨는 “담금질을 거쳐 만든 것하고 공장에서 주물로 찍어낸 것하고 차이가 커, 쇠를 불에 달궈 두드리면 그만큼 단단해 지거든 공장제하고 비교할 수 없지. 한 번 써본 사람들은 결국 다시 찾아와”라고 답했다.
“담금질, 마치 세상으로부터 단단해져가는 인생사 같아”
나 씨는 “담금질이란 게 참 재밌어, 쇠를 노에 넣어 붉게 달군 뒤 때리면 그만큼 단단해지거든. 세상을 살아가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우리랑 닮은 것 같거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품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게 담금질이야. 모양이 좋아도 제대로 담금질이 제대로 안 되면 부러지거나 찌그러져”라며 "살아가다보면 여러 일이 우릴 다그치잖아. 그 과정이 우리를 단단하게 하기도 하지만, 부러뜨리기도 하지 참 비슷한 것 같아”라고 덧붙였다.
“사라져가는 대장간‧‧‧ 명맥 이어갔으면”
나 씨는 점차 사라지는 대장간들을 보며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 씨는 “도원역 일대는 대장간 20개가 넘게 있었지. 이젠 4개 밖에 없어. 남은 사람들은 모두 7~80대 뿐이지. 우리가 죽으면 명맥이 끊어지겠지.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전했다.
이어 “수십 년 갈고 닦아 온 기술이 우리 대에서 끊기지 않았으면 해. 쇠를 두드릴 힘이 있는 한 (대장일을) 계속 하겠지. 다만 일을 그만 두기 전에 후계자를 찾거나, 기술을 남길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나 씨는 마지막으로 엿장수를 위한 가위를 만들어 보여줬다. 쇠막대기가 가위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