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⑳ 중구 ‘전원공예사’
인천 최초 조각공예사 운영... 후배 양성 힘써
“국내 각지서 목간판 주문 계속 들어와 뿌듯”

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간판은 가게의 첫인상이자 세상과 소통의 시작이다. 전원공예사 전종원(85) 대표는 54년째 인천 배다리 중구 율목동에서 누군가의 첫인상에 해당하는 목간판을 만들고 있다.

전종원 대표는 1968년부터 전원공예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구 차이나타운 한중문화관 현판, 인하대학교 팔각정 현판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목간판뿐 아니라 원목가구 조각도 제작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최근 인천 맥주 브랜드 ‘개항로라거’ 글씨체를 디자인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8일 전종원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기자말>

인천 최초 조각공예사 운영... 후배 양성 힘써

전종원 중구 전원공예사 대표.
전종원 중구 전원공예사 대표.

전 대표는 1963년 고향 전북 익산시에서 경기도 인천시로 올라와 동구 만석동 대성목재에 입사했다. 그는 대성목재에서 일하다가 1966년 경기 김포시 소재 한국가구로 이직해 목공예와 조각공예를 배웠다.

전 대표는 “대성목재 상무가 한국가구를 차리면서 같이 일하게 됐다. 거기서 목공예와 조각공예를 배우면서 앞으로 한국에 티크가구(티크나무 소재 원목가구)가 유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들었다”며 “그래서 한국에 조각공예를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후대를 양성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전 대표는 1968년 중구 배다리(율목동)에 전원공예사를 차렸다. 그는 인천에서 최초로 조각공예사를 운영했다. 당시만 해도 인천에 원목가구보다 자개장이 유행할 때였다.

그래서 그는 가구점을 돌아다니며 원목가구를 짜라고 설득했다. 전 대표는 “1968년만 해도 인천에 티크가구가 유행하지 않았다. 가구점을 돌아다니며 티크가구를 짜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운영 초기엔 인천보다 서울가구점에 티크가구 목재조각을 많이 판매했다. 그러다가 인천에 큰 가구점이 하나 둘씩 생기면서 티크가구가 인천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상황을 전했다.

이어 “집을 지으면 문이나 천장에 목재조각을 부착했다. 예식장마다 원앙 목재 조각이 들어갔고, 중국음식점에 용조각이 많이 들어갔다”며 “전원공예사가 서울, 인천의 대부분 목재조각을 공급했다. 직원 3명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30~40명을 고용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전 대표는 1980년대 후반 ‘전원공예사’가 위기를 맞았다고 했다.

전 대표는 “장사를 하면서 현찰보다 대부분 어음으로 대금을 받았다. 어음을 할인해서 받으니 이윤이 조금밖에 안 남았다”며 “또, 어음을 발행한 회사가 부도나서 몇천만원을 손해보기도 했다. 이때 굉장히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위기를 겪다보니 티크가구의 전성기가 지났다. 그래서 그때부터 직원들을 내보내고 혼자 운영하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54년을 이어왔다”고 덧붙였다.

“국내 각지서 목간판 주문 계속 들어와 뿌듯”

전종원 대표의 작업장.
전종원 대표의 작업장.

전 대표는 티크가구와 목재조각의 전성기가 지난 이후 목간판이 유행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1990년대부터 목재조각보다 목간판을 더 많이 제작했다.

전 대표는 목간판을 만드는 데 적게는 5일, 많게는 7일까지 소요한다고 했다. 그는 목간판이 재료구입-재단-대패질-사포질-도안제작-조각-락카 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일단 목간판을 만드려면 목재가 좋아야한다. 좋은 재료를 쓰려고 맞춤 자재를 특별히 주문한다. 특히, 향나무가 목간판 제작 하기에 좋다. 요즘 목재업 사정이 좋지 않아 구하기 어렵다”며 “목재 구매 후 재단하고, 대패질과 사포질을 해서 목재 표면을 아주 매끄럽게 만들어야 기초 작업이 끝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안을 제작해 간판에 붙여 조각한다. 목재가 비를 맞아도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마지막 단계로 락카 칠을 공들여 진행한다”며 “목간판 크기에 따라 제작 시일이 다르다. 큰 간판을 만드는 데 5~7일 정도 걸린다”고 부연했다.

전종원 중구 전원공예사 대표.
전종원 중구 전원공예사 대표.

특히, 그는 1950년대 서당에서 붓글씨를 배웠던 경험이 목간판을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전 대표는 “전에는 목간판을 붓글씨로만 썼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조각공예사들이 컴퓨터로 간판 글씨를 뽑아서 쓴다”며 “나는 1950년대 서당에서 붓글씨를 배웠다. 나는 원래 서예가가 아니니까 삐뚤삐뚤하게 글씨를 쓰는 데 손님들이 특이하고 좋아한다. 손님들은 똑 같은 컴퓨터 글씨 보다 개성이 있는 붓글씨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서당에서 배운 붓글씨 덕을 좀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 맥주인 ‘개항로 라거’의 브랜드 글씨체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개항로 라거'는 올해 중구 개항로 상인 연합체인 ‘개항로 프로젝트’가 개발해 출시한 인천 맥주이다.

아울러 전 대표는 국내 팔각정 현판을 본인이 대부분 제작했다며 너스레를 놓았다. 실제로 그는 중구 차이나타운 한중문화관 현판과 인하대학교 팔각정 현판, 남동구 만월산 팔각정 현판 등 수많은 현판을 제작했다.

전 대표는 “국내 팔각정 현판을 대부분 제작했다. 지금도 잘 걸려있는 현판들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다”며

그는 동구 만석동 삼광조선소에 30년 동안 배의 목간판을 공급하고 있다. 그는 배에 들어가는 목간판을 제작할 때 나무가 변질되지 않게 더 신경써서 락카 칠을 한다고 했다. 전 대표가 신경쓴만큼 전원공예사는 더 유명해졌다. 여수, 울산조선소 등 국내 각지에서 목간판 주문이 들어온다.

전 대표는 “배의 목간판은 배가 사고났을 때 물에 떠 사고 위치를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배에 들어가는 목간판은 변질되지 않게 더 신경쓰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목간판을 주문할 때 흐뭇하고, 내가 만든 목간판을 사람들이 보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전원공예사 이어갈 후계자 만나고 싶어”

중구 전원공예사 전경.

전 대표는 최근 <KBS> 6시내고향 프로그램 등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유명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유명에 연연하기 보다 가훈인 ‘더 열심히 일하라, 더 열심히 즐겨라’를 지키며 살고 있다고 했다.

전 대표는 “지난해 KBS 6시내고향에 출연해 프로그램 간판을 향나무로 만들어줬다. 그랬더니 너무 멋있다고 했다. 올해 2월 다시 한 번 촬영하러왔다”며 “이후 주문 전화가 많이 왔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가훈처럼 열심히 일하며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직 ‘전원공예사’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전 대표는 “아직 ‘전원공예사’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 자녀는 이미 다 컸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조각공예사 전망이 그리 좋진 않아 여기저기 권유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래도 내가 인천의 조각공예 창설자인 만큼 이를 이어갈 수 있는 후계자를 계속 찾고 있다. 후계자를 꼭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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