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한국 산업화의 역사, 부평ㆍ주안 혁신 산단의 방향은 ⑨ 서해안 시대의 희망, 군산산단

<편집자 주>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인천엔 산업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최기선 전 인천시장 때부터 추진한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만 잘 되면 지역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처럼 위정자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지금으로 보면 정의당을 빼고 여야 모두 그랬다.

물론 미래를 위한 투자는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자유구역 중심의 경제정책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금까지 인천 경제를 이끌어온 산업은 뿌리산업이다. 그 뿌리산업이 가지고 있는 고용효과와 경쟁력은 절대 낮지 않다. 그럼에도 인천의 위정자들은 ITㆍBT와 금융업이 향후 인천의 먹거리라고 십수년간 목소리를 높여왔다.

대기업을 인천에 유치해도 고용효과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 갈수록 활동하기 힘든 기업체들은 다른 지역으로, 심지어 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 자리를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차지한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인천을 자립형 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 의존하는 도시로 만든다.

한국 수출산업의 일번지로 출발해 국내 최고의 도심형 첨단 산업단지로 도약을 꿈꾸는 부평국가산업단지가 지정된 지 올해로 50년 됐다. 이에 <인천투데이>은 ‘한국 산업화의 역사, 부평ㆍ주안 혁신 산단의 방향’이란 주제를 가지고 10회에 걸쳐 보도한다.

일제의 쌀 수탈지 군산, 차별로 산업기반 취약

[기획취재| 한국 산업화의 역사, 부평ㆍ주안 혁신 산단의 방향은

① 인천경제의 뿌리 부평·주안산단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상)
② 인천경제의 뿌리 부평·주안산단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하)
③ 전자산업의 요람, 구미
④ 대한민국 1호 수출현장, 구로공단(상)
⑤ 대한민국 1호 수출현장, 구로공단(하)
⑥ 중소기업의 자존심, 반월·시화공단
⑦ 1970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수혜 도시 창원
⑧ 한국의 산업수도 울산
⑨ 서해안 시대의 희망, 군산산단
전라북도 군산은 인천과 근현대 역사가 비슷한 궤적을 밟아온 도시다. 하지만 인천은 수도권에 있으면서 도시가 급격히 팽창한 반면, 군산은 정권의 차별정책 등으로 인해 산업기반이 미약하다.

고려시대에 전국 12조창 중 하나였던 진성창이 만들어진 후 조선시대 7읍 해창에 이르기까지 과거 군산은 국가 재정의 중심이었던 세곡을 저장ㆍ관리ㆍ운반하는 기능을 수행한 물류 기지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엔 호남 지역의 쌀을 비롯한 농산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물류기지로서 쌀을 매개로한 산업이 발전했다. 대표적 산업이 정미업이다.

1930년대를 기준으로 군산엔 한 해 1만석 이상을 생산하는 대규모 정미소가 14곳이나 있었고, 그 중에서 5만석 이상을 도정하는 곳이 6곳에 달했다. 주조업도 이에 뒤지지 않아 해방 후 백화소주로 이름을 바꾼 ‘아사노하나 주조장’과 ‘이와모토 주조장’ 등의 주류 생산 공장이 운영됐다.

하지만 해방 후 군산의 산업기반은 무너졌다. 극심한 경제 침체로 인해 1980년 후반까지 경제적 낙후성이 심각했다. 박정희ㆍ전두환 정권 등은 정치ㆍ경제적 측면에서 호남을 차별했다. 이로 인해 호남엔 변변한 국가산업단지가 없었다. 영남에 비해 호남에 산업과 교통 등의 인프라가 열악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난 출향인이 늘어났다.

군산엔 1976년에야 지방공업단지가 겨우 지정됐다. 군산지방공업단지의 수용 능력은 금방 한계에 도달했다.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한 중국 때문이다.

서해안 시대의 희망, 군산산단

▲ 서해안 시대의 희망, 군산국가산업단지. <사진제공·한국산업단지공단>
군산지방공업단지 지정 후 군산시는 1979년 장자도ㆍ오식도ㆍ내초도를 연결하는 간척지 6.8㎢에 제2 공단을 세운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 혼란을 거듭해 이 계획마저도 실현되지 않았다. 현 군산국가산업단지(이하 군산산단)는 1978년에 지정됐다. 당초엔 전북 군산과 충남 장항을 잇는 광역 군장산업단지 조성사업으로 확대돼 1989년 2월 1단계 공사가 시작됐다. 군장산업단지는 당초 2021년까지 군산과 장항지역 해면 134㎢를 매립해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발 계획을 수차례 변경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로 인해 군산지역에만 산업단지(22.6㎢)가 조성됐다. 이름도 군장산업단지에서 군산산단으로 변경됐다.

군산산단은 서해안 시대의 전진 기지 조성과 국토의 균형개발 도모를 목적으로 조성됐다. 군산산단 개발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가 입주를 계획해 단지 분양은 일찍 끝났다. 대우차 협력업체들도 들어왔다. 대우차는 군산 지역의 자동차 산업을 태동시킨 주역이다. 당시 대우는 1조 30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건설하고 1996년부터 연간 30만대의 승용차와 1만 2000대의 상용차를 양산했다. 연간 2조 5000억원의 매출액과 6000여명의 고용창출을 달성하며 전북 지역에 자동차 산업을 성공적으로 태동시켰다.

이후 외환위기를 맞아 대우차가 2000년에 부도 처리되고 이듬해 GM에 매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한국지엠은 여전히 군산의 자동차 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군산시민들의 한국지엠 사랑은 남다르다. 군산산단 전체 생산액의 25%를 한국지엠과 협력업체들이 차지한다. 여기다 한국유리ㆍ기아특수강ㆍ동양제철화학 등의 입주는 군산이 공업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공단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도달하자, 2공단 건설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산산단이 영남 지역 국가산단에 비해 늦게 출발한데다 불리한 조건에서 분양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2공단은 2006년 준공하기까지 분양률이 22.9%에 머물렀다. 대기업이 참여한 실수요자 개발 용지를 제외할 경우엔 분양률은 1.4%로 떨어졌다. 사실상 버려진 땅에 가까웠다.

참여정부가 국민임대단지(16만 5000㎡) 조성을 시작으로 2005년 자유무역지역(125만㎡) 지정, 2007년 임대전용단지(100만㎡) 공급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폈다. 그럼에도 2007년 상반까지도 분양률은 38% 수준에 머물렀다. 다행히 그해 9월 현대중공업이 입주계약을 체결하면서 협력업체들이 대거 몰려 2008년 말 분양률은 97.5%로 뛰어올랐다.

현대중공업은 부지 54만평에 1조 2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의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갖추고 2009년부터 18만~25만 톤급 대형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또한 연간 600MW급 생산 규모의 풍력발전기 공장도 건설해 군산산단을 조선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고 있다.

군산산단은 늦게 출발했지만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2015년 8월 현재 총618개사가 입주해있고, 노동자 1만 5868명이 일하고 있다. 자동차ㆍ선박ㆍ건설기계 관련 업종이 전체 입주업체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지엠ㆍ현대중공업ㆍ두산인프라코어ㆍ타타대우상용차 등과 같은 대기업이 산단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2014년 단지 전체의 생산액과 수출액은 각각 6조 8825억원과 26억 달러를 기록, 지역 경제의 심장부로 자리매김을 했다. 향후 군산산단은 새만금 개발과 더불어 서해안 산업벨트의 중심축으로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군산시, 산단 지원에 적극 나서

▲ 하늘에서 내려다본 군산산단 모습.
하지만 풀어야할 숙제도 꽤 많았다. 우선 노동자들의 정주여건이 열악했다. 좋은 자연 여건과 편리한 교통망이 있지만, 이곳에서 일할 노동자들의 주거지역과 산단의 거리는 꽤 멀다.

출퇴근 거리가 20km 안팎이다. 대중교통이 거의 없어 불편을 겪었다. 버스 노선이 4~5개에 불과한데다 배차간격도 한 시간에 한 대 꼴이었다. 가장 가까운 동주민센터가 13km나 떨어져 있을 정도로 정주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산산단에 공동주택을 만들었지만, 준공된 지 2년이 경과해도 분양률은 70% 안팎이다. 가족단위 입주보다는 회사나 독신자들이 주로 입주해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산시와 산업단지공단, 기업체가 협력해 2011년부터 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5인승 버스 25대를 출퇴근 버스로 운영하고 있다. 여기다 군산시의 산단 지원 의지가 강하다. 근로자 공동 기숙사 지원이 대표적이다. 지자체가 보증금을 내주고, 기업체가 월세와 관리비를 지원해 인력난을 해소하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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