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한국 산업화의 역사, 부평ㆍ주안 혁신 산단의 방향은 ③ 전자산업의 요람, 구미

<편집자 주>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인천엔 산업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최기선 전 인천시장 때부터 추진한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만 잘 되면 지역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처럼 위정자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지금으로 보면 정의당을 빼고 여야 모두 그랬다.

물론 미래를 위한 투자는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자유구역 중심의 경제정책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금까지 인천 경제를 이끌어온 산업은 뿌리산업이다. 그 뿌리산업이 가지고 있는 고용효과와 경쟁력은 절대 낮지 않다. 그럼에도 인천의 위정자들은 ITㆍBT와 금융업이 향후 인천의 먹거리라고 십수년간 목소리를 높여왔다.

대기업을 인천에 유치해도 고용효과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 갈수록 활동하기 힘든 기업체들은 다른 지역으로, 심지어 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 자리를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차지한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인천을 자립형 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 의존하는 도시로 만든다.

한국 수출산업의 일번지로 출발해 국내 최고의 도심형 첨단산업단지로 도약을 꿈꾸는 부평국가산업단지가 지정된 지 올해로 50년 됐다. 이에 <인천투데이>은 ‘한국 산업화의 역사, 부평ㆍ주안 혁신 산단의 방향’이란 주제를 가지고 10회에 걸쳐 보도한다.

박정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구미산단

[기획취재] 한국 산업화의 역사,
부평ㆍ주안 혁신 산단의 방향은

① 인천경제의 뿌리 부평·주안산단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상)
② 인천경제의 뿌리 부평·주안산단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하)
③ 전자산업의 요람, 구미
구미국가산업단지(이하 구미산단)는 박정희 정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구미는 박정희를 낳고, 박정희는 구미를 다시 낳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구미는 내륙에 위치해 있어, 편리한 교통망과 항만 등의 배후 시설을 갖춘 다른 지역에 비해 불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경부선이 지나고, 낙동강이 흘러 공업용수가 풍부한 것을 제외하고는 장점이 없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자신의 고향인 구미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해 일자리를 만들었다. 구미산단이 들어선 곳은 40여년 전만 해도 모래밭에 불과했다. 인구 2만명의 작은 농촌이었다. 이제 인구는 50만명으로 늘었고, 1960년대 100명 남짓했던 노동자는 10만명으로 증가했다. 2012년 5월 수출 3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시인 박목월은 1974년에 ‘구미공단’이란 시를 썼다.

‘우리는 금오산 기슭의/ 쓸모없는 낙동 강변 350만평을/ 땀과 슬기 단결과 협조로써/ 전자공업단지를 이룩하였다./ 이것은 보람찬 80년대로/ 행하는 하나의 디딤돌/ 하나의 전설/ 잘살기를 발돋움하는/ 민족의지의 표현 꿈의 실현/ 조국근대화의 우렁찬 고동/ 바꿔놓은 지도 위에/ 찬란한 태양이/ 영원히 빛나리라.’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는 1969년 6월 4일 구미산단 사업시행자 지정을 고시했다. 그 후 한국도시바(주) 공장이 준공됐다. 현재의 KEC다. 구미 출신의 재일교포 기업인 곽태석 회장이 일본 도시바와 합작해 세운 회사다. 1호 입주 기업인 KEC는 지금도 구미산단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구미산단은 지난 40년간 한국 전자산업의 성공 신화를 일궈낸 현장이다. 1970~80년대에는 전자(TV), 섬유산업이 중심이었다. 제일합성, 코오롱, 효성, KEC, 대한전선 등이 당시 구미산단을 이끌었다.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명분으로 전자산업단지 유치를 적극 추진한 덕분이다. 1단지가 조성되고도 단지 앞 도로는 비포장에다 자동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없었다.

정부는 1977년에 구미산단 2단지 조성을 고시했다. 그해 8월 삼성전자가 입주했다. 정부는 1979년엔 3단지 개발구역을 고시했다. 하지만 3단지 준공은 1995년 9월에나 이뤄졌다. 1983년에 국내 최초로 5인치 컬러TV가 구미에서 생산됐다.

영남 지역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면서 구미산단의 노동자는 1975년에 1만명을 돌파했다. 저임금에 힘입어 생산한 각종 전자제품의 수출이 용이했다. 이런 물적 토대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금성사는 1991년에 국내 최초로 TV 생산 5000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1990년대엔 삼성전자, 금성사, 대우전자, 오리온전기 등이 구미산단의 주력 공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2000년 이후 IT와 융복합소재 중심으로 발전

▲ 전자산업의 요람에서 ITㆍ융복합 소재 산업단지로 성장한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낙동강과 금오산을 끼고 있어 주변 여건이 좋다.<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TV 등의 전자제품을 생산해 전자산업의 요람으로 통했던 구미산단은 현재 대표적 IT산업 클러스트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엔 모바일 분야의 허브로 도약 중이다. 또한 국내외 대기업들이 2차 전지ㆍ태양전지 등 신에너지사업의 거점을 계속 설치하면서 구미산단의 발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대표적 기업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01년 휴대폰 생산 5000만대를 기록했다. 구미산단은 외국인기업 전용단지로도 지정ㆍ고시됐다. 1999년부터 2014년 사이 구미산단 전체 업체 수는 447개사에서 1923개사로 4.3배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이 10%를 넘는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업체 2085개가 입주해있다. 국내외적 경기 침체에도 불구, 구미산단의 공장 가동률은 81.3%에 달한다. 주력은 전기ㆍ전자와 섬유ㆍ의복이다.

하지만 구미산단도 고민이 있다. 섬유와 가전 등, 기존 주력 업종이 쇠퇴하면서 단지 내 대기업의 투자가 축소되고, 산단이 노후화됐다. 2000년 이후 삼성전자는 휴대폰 생산 거점을 중국으로 옮겼고,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LG디스플레이의 구미공장 투자금액은 파주공장의 58% 수준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미산단은 5단지에 해당하는 하이테크밸리산업단지를 조성 중이다. 여기다 최근 혁신 단지와 재생 단지로도 지정돼 또 다른 발전을 모색 중이다.

구미산단은 IT 융복합 지식기반산업 위주의 혁신적이고 창조적 복합공간으로 재창조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10년간 기업 500여개를 유치해 6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주요 사업으로 노동자를 위한 휴식 공간 제공, 부족한 주차시설 지원, 광평천 네트워크 활성화, U-시티 기반 구축, 복합 문화체육 공간 확충, 융복합집적지 조성 등을 추진할 전망이다. 특히 융복합집적지 조성 사업은 산단 내 유휴 부지를 활용해 신산업 입지 공간 창출과 연구ㆍ개발(R&D), 교육, 문화 등이 공존하는 복합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발전 가능성 많은 구미산단

▲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초기의 모습.
항만과 공항에 수도권을 배후지로 두고 있는 인천의 부평ㆍ주안과 남동국가산업단지는 현재 포화상태다. 공장을 신축하고 싶어도 수도권 규제와 함께, 높은 땅 값 등으로 인해 녹녹치 않다. 그렇다보니, 기업들이 인천을 떠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경제자유구역 땅 등을 헐값에 대기업들에게 제공하는 것과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다.

인천의 일자리는 제조업보다 3차 산업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산업구조가 개편되면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튼튼한 제조업이 밑바탕이 돼야, 경제력이 커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인천지역 국가산단의 상황은 심각하다. 더욱이 공장이 떠난 자리엔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베드타운’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부평산단 주변의 준공업지역은 공장과 주택가가 혼재하면서 여러 사회적 갈등까지 발생한다.

이에 비해 구미산단은 충분한 땅을 가지고 있고, 정치권 등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발전전망이 밝다. 구미산단은 현재 4단지까지 개발됐다. 현재 조성 중인 5단지의 분양도 얼마 남지 않았다. 5단지까지 합하면 구미산단의 면적은 총3103만 6000㎡에 달한다.

이런 구미산단엔 정치권의 지원을 받은 대기업 52개가 입주해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인천지역 산단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조성된 지 가장 오래된 1단지엔 대기업 30개가 입주해 있다.

또한 구미산단 1단지가 산업통상자원부 공모 사업인 ‘2014년 혁신 산단’과 국토교통부 ‘노후 산단 재생사업’ 대상지로 동시에 선정됐다. 혁신 산단 사업에 3년간 총1500억원, 노후 산단 재생 사업에 270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지역본부 관계자는 “구미산단 인근엔 금호공대를 비롯해 구미대, 한국폴리텍대 등이 있어 산학연도 잘 되고 있다”며 “예전 만큼 공장 가동률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구미산단은 계속 확장되고 있고, 새로운 기업들이 유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삼성전자의 TV 생산라인 모습.<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 1976년 금성사의 직원 단합대회 모습.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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