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사건 14주기 진실 논란은 여전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4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경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평택 제2함대사령부 소속 천안함(PCC-772) 폭참 사건이 발행했다.

한국 정부 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천안함은 어뢰 충격의 여파로 반파됐다. 피격 약 6분 뒤인 오후 9시 28분 함미(군함의 후미, 뒷부분)는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피격 당하기 전의 천안함 모습 (사진출처 대한민국 해군)
피격 당하기 전의 천안함 모습 (사진출처 대한민국 해군)

천안함 주 임무는 북측의 고속정이나 간첩선의 남하를 저지하는 임무였다. 이로 인해 천안함의 대잠능력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발생 직후 천안함 피격 인근 지역에서 훈련 중이던 포항급 초계함인 속초함(PCC-778)과 백령도 해역에 있던 참수리급 고속정, 해경 함정에 의해 천안함 승조원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됐다. 그러나 나머지 승조원 46명은 실종돼 구출하지 못했다. 

우리 군은 실종된 승조원들을 수색·구출하기 위해 해군특수전전단(UDT)과 해군 해난구조전대(SSU)를 작전에 투입했다. 

실종자 탐색 작업은 피격 발생 다음 날인 3월 27일부터 4월 3일까지 약 7일간 진행했으며, 4월 3일 실종자 가족들의 작전 중단 요청 기자회견으로 인해 종료했다. 

이후 남측 정부와 국군은 수색 작전을 함체 인양 목적으로 전환했다. 4월 4일부터 약 10일간 진행한 함체 인양 작전 끝에 가라앉은 함미를 인양했다. 이 과정에서 함미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실종자 36명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침몰 29일째인 4월 24일 함수(군함의 앞부분)까지 인양했지만, 실종된 해군 용사 46명 중 6명은 아직 차고 캄캄한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용사 6명을 포함한 천안함 용사 46명은 4월 29일 제2함대사령부와 대전 현충원에서 치른 영결식에서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전사한 건 천안함 장병뿐만이 아니었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된 한주호(1958~2010, 향년 52세) 해군특수전전단 준위가 작전 중 잠수병으로 실신해 전사하고 말았다. 

한 준위는 작전 투입 명령이 없었으나 “자식 같은 아이들이 바다에 있다”라고 말하며 작전에 참여했다. 

또한,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돕던 민간어선 98금양호가 상선과 충돌해 금양호 승조원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고 말았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6.25 전쟁 이후 가장 많은 국군 장병 희생을 낳은 사건이다.

천안함은 비록 폭침으로 반파돼 침몰했으나, 칠흑 같았던 서해를 묵묵히 지켰던 해군 용사 46명의 기개와 숭고한 희생의 흔적은 아직 우리 바다에 꼿꼿이 남아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 14주기, 진실 논란은 여전

하지만 천안함 폭침 14주기가 됐음에도 대한민국 내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의 원인과 진상 규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천안함 사건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를 두고 일부에서는 조사 과정의 투명성과 결론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의문은 공개적인 논란으로 이어졌고, 사회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에 불복하며 추가 조사나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일부 정보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폭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출한 일부 인사의 경우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이다.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은 천안함이 좌초 후 충돌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신상철 전 위원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정부의 명예훼손 혐의 고소 재판은 약 12년간 걸쳐 이어졌다. 신상철 전 위원은 최종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앞서 얘기한대로 정부는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신 전 위원은 여러 증거을 제시하며 천안함이 좌초 후 충돌로 침몰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법원은 이러한 주장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즉, 이 재판은 천안한 폭침 사건의 진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재판이자, 천안함 폭침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 진실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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