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득공, 남북국시대 주창·발해 역사를 한국사로 편입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240년 전인 1784년 3월 25일(음력) 조선 실학자 유득공(1748~1807, 향년 59세)이 발해의 역사를 다룬 책 ‘발해고’의 서문을 작성했다. 

유득공은 조선 이전 왕조인 고려가 발해 멸망(926) 이후 그 유민들을 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가 발해 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것에 한탄하며 발해의 역사서 ‘발해고’를 편찬했다. 

유득공의 발해고 (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지용)
유득공의 발해고 (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지용)

발해의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 유득공은 중국 서적인 신당서와 구당서, 그리고 한국 서적 삼국유사, 삼국사기, 일본 서적 속일본기 등 사료를 참고해 교차 검증하여 발해고를 작성했다. 

발해고는 역대 국왕의 치세를 다룬 ‘군고’와 문무 신하와 학자의 업적 등을 다룬 ‘신고’를 포함해 지방 제도, 관직 체계, 문무관의 복식과 수도 상경(중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닝안시)의 형태 등을 다뤘다. 

이에 더해 발해의 특산물, 발해에서 사용한 칭호, 타 국가와의 외교 문서,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들이 세운 부흥국 '정안국' 등 총 9편으로 구성했다. 

발해고는 발해의 역사를 우리 한민족의 역사로 편입하는 데 크게 공헌한 사서이다. 유득공은 발해만을 다룬 역사서를 편찬해 발해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밝혔다.

이로써 유득공은 발해를 본격적으로 우리 역사 범주로 편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발해가 신라와 병립했던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창했다. 

유득공이 주장한 남북국시대는 현재까지도 사학계에서 사용하는 학술용어다. 이는 당시 우리 역사를 반쪽 통일신라에 국한하지 않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까지 확장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유득공의 주장대로 발해는 명백히 우리 민족의 역사이자, 그 영토(요동 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원)는 우리 민족의 고토다. 발해 시조는 고구려 유민 출신 대조영(출생연도 미상~ 719)이었으며, 건국 당시 주 지배계층은 고구려 출신 유민들이었다. 

아울러,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라고 했다. 당시 왜국과 신라에 보낸 외교 문서에서 국호를 스스로 고려라 칭했고 발해 국왕들은 자신을 ‘고려왕’이라 했다. 

문화 부분에서도 발해는 고구려와 매우 유사했다. 발해 수도 상경에서 발견된 연꽃무늬 기와, 석등 등은 고구려의 양식과 매우 유사했다.

또한, 발해 온돌 유적지 역시 발해가 고구려의 후손임을 증명한다. 온돌 난방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그 열기로 방바닥을 데우는 우리 전통 난방 방식이자 고구려의 독자적 난방 문화다.

발해 역시 이러한 온돌 유적지가 발견됐는데, 이는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는 후손이자, 우리 민족 역사의 한 부분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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